전화벨이 울렸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 걸까?
방금 전에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씻기고 자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찰나였다. 아이의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서 친정집 근처에 들렀다가 아빠 병원에 다녀오시는 엄마를 만나서 저녁식사를 하고 막 들었왔다. 아빠가 많이 안 좋으시다며 엄마는 힘들어하셨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친정아빠는 암 환자다.
작년 봄 축구하는 아이와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있을 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병명은 혈액암이라고 했다. 몇 개월째 건강이상으로 큰 병원을 옮겨 다니며 검사를 하고 정확한 병명을 못 찾아서 고생하고 있던 시기였다. 등산을 좋아하시는 친정아빠는 발을 삐끗하셨는지 붓기가 가라앉지 않았고 건강검진 결과 이상소견이 나온 지 수개월이 지난 후였다.
"발이 아프면 등산을 가지 마셔야지 왜 가셔, 그러니깐 아프시지! 운동한다고 무리 좀 하지 마세요."
"아니야 많이 안 걸었어 그런데 계속 아파"
다정하고 따뜻한 말 못 하는 난 못된 딸내미였다. 말이라도 이쁘게 하지 진짜 어디서 이렇게 못돼 먹었는지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기운과 함께 후회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 병명을 알았다는 생각과 함께 평지에 서 있는 두 발이 무중력 상태로 떠다니는 듯한 느낌으로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울고 계셨다.
"네 아빠 불쌍해서 어떡하니, 암이란다. 4개월에서 길면 6개월이래. 어떡하지 네 아빠 불쌍해"
"아...... 아빠가 암이라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하자고 했고 그렇게 아빠는 1년 6개월 정도의 투병생활을 하셨다. 치료 중간에는 호전되셔서 일상생활도 가능하셨고 아들과 축구도 하고 같이 외식도 하며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오신 듯 보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시간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신약도 항암치료도 끝내는 아빠를 붙잡을 수 없었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밤을 못 넘길 거 같다고 가족들이 급하게 오셔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아이 옷을 입히고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이와 잠시 병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남편이 먼저 들어가서 아빠를 뵙고 왔다. 함께 도착한 언니와 형부 조카도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침착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어, 많이 안 좋으셔."
힘겹게 마지막을 견디는 아빠를 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언니가 아이 둘을 케어해 주고 형부와 남편은 일단 돌아가서 대기하다가 다시 오기로 했다. 난 엄마와 병원에서 같이 있기로 했다. 며칠은 더 견디실 거라고 생각했었다.
12시가 넘어가고 병원은 조용한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아빠는 연명치료도 거부하셨고 늘 입버릇처럼 자다가 조용히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힘겹고 긴 사투 끝에 편안하게 잠드셨다. 의사가 왔고 모니터를 확인하고 사망선고를 내렸다. 엄마는 고생했다며 편안하게 가라고 아빠의 손을 어루만져 주셨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난 주저앉았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병원에서는 장례식장으로 옮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며 잠시 나가서 있다가 들어오라고 했다. 휴게실에 가서 창밖으로 보이는 밤의 조명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빠진 호흡으로 힘겨워하시던 아빠는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너무 편안한 모습이었다. 간호사들이 아빠의 옷을 단정하고 깔끔하게 정리한 후 다시 들어오게 했다. 엄마는 아빠의 모습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너무 편하게 자고 있는 거 같다. 아기가 자듯이 자고 있네 그렇지?"
"너무 힘드셨어, 지치셨을 거야. 이제 좀 편하게 쉬시겠네"
아빠 혼자 오롯이 감내 해야 했던 힘겨운 시간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가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