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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 Mar 12. 2024

이성 스위치는 빨리 켜진다.

아빠는 평온해지셨다. 한바탕 폭풍이 몰고 간 것처럼 황폐해진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다시금 이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래도 혼자 외롭게 가시지 않고 평생을 찰떡같이 붙어 있게 했던 부인 그리고 당신과 너무 비슷한 성향이라서 매사 부딪혔던 고약한 딸내미가 함께 있었으니 그래도 덜 외로우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집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벨이 울림과 동시에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야...... 아빠 방금 돌아가셨어......"

"......"

"괜찮아 마지막에는 편안해지셨어......"

"응...... 엄마는?"

"옆에 계셔. 언니도 일단 추스르고 있어 조금만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알았어"


그리고 우리 자매의 이성 스위치는 바로 켜졌다. 장례식장을 먼저 정해야 했기에 집에 있는 언니와 형부 그리고 남편이 서로 재빨리 연락하며 장례식장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결정했다. 아빠를 모시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 병원비 수납 그리고 병원에 있던 짐을 챙기는 일까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했다.


엄마는 기운이 빠지셨는지 아빠 곁에서 잠시 앉아서 쉬겠다고 하셨다. 간호사들이 말끔하고 편안하게 아빠가 떠날 수 있는 채비를 해주셨다. 슬픔에 빠져 있을 가족들을 생각해서 인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셔도 된다고 조용하고 진중한 어조로 이야기해 주는 간호사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있었던 병원에서의 퇴원 수속과 수납을 위해서 난 병원의 이곳저곳을 바쁘게 다녔고 그 시간 동안 아빠를 모시고 갈 차량이 도착했다. 현실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뚜벅뚜벅 짐을 챙기고 주치의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조용한 새벽의 대학병원에서 주치의와 간호사들이 나와서 조심히 가시라며 정중하게 인사를 해주셨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차량의 앞자리에 기사님과 나 그리고 엄마가 나란히 앉아서 출발했다. 새벽 3시가 넘은 가을밤의 공기는 서늘하고 차갑게 엄마와 나를 감싸 안았다. 서울 도심을 지나 고속도로를 향해 내 달리는 차에는 아무 말 없는 세 사람의 적막한 공기만이 감돌고 있었을 뿐이다. 기사님이 얼마간의 침묵 끝에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해야 할 일들과 과정 그리고 비용에 대한 간략한 안내를 해주셨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족을 보낸 사람들의 옆에서 운전하던 기사님은 익숙한 듯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친정아버님 이시죠? 올해 어떻게 되세요?"

"일흔 둘이세요. 너무 빨리...... 가시네요."

"편안해 보이셨어요. 이제 편안하게 쉬실 겁니다. 지금 병원에서 출발해서 장례식장에 도착하는 동안

신호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어요. 경황이 없어서 모르셨죠?"

"아, 그랬나요 몰랐네요. 뭔가 현실감이 없어서요"

"고인이 된 분들 모시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데 이승에 미련이나 한 많은 분들은 모시면 새벽시간에도 그렇게 신호에 걸리고 빨리 갈 수가 없는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장례기간 동안 가족분들 건강 잘 챙기시고요. 인사드리고 가겠습니다."


기사님이 위로하기 위해서 으레 하시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짧은 대화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빠는 영안실에 모시고 장례식장으로 들어온 엄마와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형부는 미리 도착해 계셨고 여러 가지 수속하는 일들을 챙기고 계셨다. 긴장하고 있는 끈이 슬쩍 풀렸는지 장례식장에서 하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머지 일들은 형부가 정리하셨고 장례식장의 차가운 바닥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현실을 마주하려 애쓰고 있었다.


새벽이 밝아왔고 가족들이 도착하고 본격적으로 장례준비에 들어갔다.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는 그 시간 동안을 온전히 다른 여타의 일들에 집중하며 조문객을 맞이하고 오랜만에 뵙는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 지인들을 통해서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덤덤하게 지낼 수 있었다.


바쁘게 흘러가는 그 시간이 오히려 상처를 조금 덜 아프게 만들어 주는 거 같았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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