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는 조문객들에게 연락할 수 있는 장례식장 위치과 연락처 그리고 발인날짜가 적혀 있는 안내문을 문자로 발송해 주었다. 일단 가족들과 친척분들께는 엄마가 연락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아빠의 친구분들께는 차마 엄마가 먼저 연락하기 힘들어하시는 거 같아서 내가 연락을 하기로 했다.
아빠의 친구분들 중에 익숙한 성함의 친구분들께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성함,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 오셨던 아빠의 고등학교 친구분들이셨다. 어린 시절 친구분들이 집에 놀러 오시면 귀엽다고 용돈도 주시고 몇 학년이냐며 매번 물어보던 아저씨들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분들이었다.
장례식장에서의 바쁜 일들을 우선 처리하고 나니 오전 9시가 되었다. 전화를 해도 괜찮은 시간대인 것 같았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에 쿵 내려앉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 성근아!"
전화기에 저장돼 있는 아빠의 성함을 확인하시고 전화를 받은 아빠의 친구분은 "이 시간에 웬일이야" 혹은 "여보세요"라는 일상적인 말은 가뿐하게 건너뛰셨다. 다정하고 반가운 말투로 그리고 아주 친근하게 이미 떠나간 오랜 친구의 이름을 부르셨다. 고등학교 그 시절 함께 뛰어놀고 웃고 떠들던 친구를 부르듯이 말이다. 아빠 친구분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반가운 존재로 있던 아빠의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순간 목이 메여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음...... 흠 흠...... 안녕하세요"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김성근씨 둘째 딸입니다."
여기까지의 몇 마디 끝에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신 친구분이 황급하게 말씀하셨다.
"네, 네, 무슨 일이에요. 잠시만요. 잠깐만요. 이거 티브이 소리 좀 줄일게요.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가......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왜..... 아니 이게 무슨......"
"많이 아프셨어요. 장례식 관련된 안내문자 이 번호로 보내드릴게요."
"알았어요. 내가 친구들한테 연락할게요. 아니 하...... 아니......"
후에 엄마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다. 아빠는 정말 극소수의 몇 분을 제외하고는 투병 소식을 전혀 알리지 않으셨다고 한다. 치료를 받으면서 몸 상태가 괜찮으실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모임도 나가셨고 그러다가 병세가 악화되면서는 사정이 있다며 모임을 못 나가신 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한동안 아빠 친구분은 어떠한 말도 못 하셨다. 아빠 친구분이 다정하게 부르셨던 아빠의 성함 그 한마디에 참고 있던 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통화를 간신히 마치고 그리고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슬픈 소식을 전해야 하는 내 전화에 그렇게 밝은 목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불러대던 그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고 있었다.
한순간의 대화로 아빠의 오랜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몇 십 년간을 공유해 온 추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오랜 친구를 먼저 보내야 하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셨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비로소 나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전화기로 부고를 알리기 위해 전화를 하며 마음이 너무 아려왔다. 내 번호로 전화를 하면 받지 않은 실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아빠의 핸드폰을 통해 전화를 드렸고 그때마다 한탄과 애통한 목소리로 쉽게 말을 잇지 못하시던 친구분들과 지인분들의 목소리에 내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그렇게 장례식장에 아빠의 친구분들, 친척들, 가족의 지인들 그리고 내 친구들 많은 조문객들이 와주셨다. 한분 한분 감사했고 아빠가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며 그렇게 아빠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 줄 그런 좋은 분들이 아빠 곁에는 많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