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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지경과 자동기술법>

by 김도형

클래식 음악을 듣다 보면 연주자의 표정을 함께 보게 된다. 우리는 음악을 ‘연주한다’고 표현하지만, 때로는 ‘연기한다’고도 말한다. 이는 연주자의 표정과 몸짓이 단순한 연주를 넘어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감정을 실어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는 온전히 몰입하여 작업에 희열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나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을 통해 그런 모습을 목격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나마 퍼포먼스 예술이나 실시간으로 창작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곤 한다. 이때 예술가들은 마치 자신을 잊은 듯한 상태, 즉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미술에서는 이러한 몰입의 순간이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나 오르피즘(Orphism)의 자동기술법(Automatism)과 같은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작품 속의 자유로운 선과 강렬한 에너지는, 작가가 작업하는 동안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창작에 몰두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치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미술에서 무아지경의 순간이 아닐까.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항상 내가 하는 모든 작업에서 무아지경에 이르고 싶다. 그만큼 집중하여 온 마음을 쏟아붓고,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의 희열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작업을 향한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오는 성취감이야말로, 내가 예술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아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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