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고래 Apr 03. 2023

차 한 잔 앞에 놓고 묵은 생각을 했다

찻잔에 머무는 여린 녹차색


 차 한 잔 앞에 놓고 묵은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산다. 과거의 기억에 갇혀 사는 사람, 현재가 전부 인양 코앞에 닥친 시간에 헉헉대는 사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불안, 혹은 적당히 부풀려진 희망으로 지금을 놓치고 사는 사람,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명상하려고 앉았으나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보고자 시작한 마음공부였다. 괴로움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판단의 옳고 그름을 고집하지 않으면 괴로울 일이 없다는 논리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힘들었다. 머리로 이해를 했다고 해도 이미 굳어있는 습관은 어느 한순간 알아차림의 행동으로 쉽게 바뀌지 않았다.   

   

 실망이라는 것은 무언가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충족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고 미움은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의 모습을 한번 굴절시켜 바라보는 것이다. 그냥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무관심의 한 방편일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으로 이입시키지 않은 상태, 그 현상만을 보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 때문에 한바탕 진을 뺐다. 논에 모를 심을 때 달라붙는 거머리처럼 떼어 내도 기를 쓰고 달라붙어 신경을 곧추서게 했다. 오늘 명상도 집중하지 못하고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끌려다녔다.  


  그중의 하나가 최소화한 삶에 대한 것이었다. 한동안 잘 실천하고 있었는데 잠시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애써 비워버린 공간들이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눈에 거슬리는 상황에 이르자 아차 싶었다. 마치 무엇에 휩쓸려 버리듯, 마치 지난여름에 본 영화 제목처럼 태풍이 지나간 듯했다.  


 기계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세워놓으면 먼지가 쌓이고 새로운 기술에 밀려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폐가전의 순서를 밟게 된다. 사람의 뇌도 마찬가지다. 뇌의 구조와 기능 속에는 제각기 맡은 임무가 있다. 그 기능을 잘 쓰면 활성화되고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그럼 나는 과연 얼마나 이 기능들을 잘 활용하며 살고 있는지 혹여 퇴화의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늙는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적인 부분이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인데 머리로 먼저 늙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 삶의 강약을 조절하려고 했다.      


 비워버린 공간에 대한 순서도 마찬가지였다. 쌓아놓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쌓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했었다. 설령 이러한 깨달음을 거쳤더라도 항상 순간에 깨어있지 않으면 또다시 같은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참 힘든 명제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정쩡한 하루가 다 지나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