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끄적끄적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생에 리셋 버튼이 없거니와 한 번 살아가기 시작하면 인생은 그야말로 후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남이 대신 살아주는 것 또한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오로지 나의 책임, 나의 의무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나의 책임'에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하던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의무'에는 나를 낳아준 부모 또는 나와 결혼을 한 상대방과 그의 결실이 된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건 내가 지켜야 하는 것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 등등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걸 누구나 이해를 하고 대신해주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윌-E'에서 나오는 로봇들의 로맨스가 아닌 인간들이 생각이 났다. 거기에 나온 인간들은 인류 멸망 후 우주로 가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학의 발전으로 게을러진 인간들이 점점 비대해지고 팔과 다리가 짧아진 채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부유하는 기계를 타고 다니며 걸어 다니지도 않는다. 물론 양보를 해서 걸어 다니기 귀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정도면 아예 살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긴 하다. 그리고 아무리 영화라지만, 얼마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게을러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습 같았다. 물론 화자도 게을러질 때가 좀 있긴 하다. 그렇지만 걸어 다니기 귀찮다거나 이런 식의 생각과 상상은 없었던 것 같았다.
해봤자 피곤에 지쳐 있어서 그냥 집으로 순간이동 하고 싶다는 정도? 그런데 그건 걸어서 귀찮다기보다는 몸의 피곤이 제일 먼저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화자가 말을 하고 싶은 건 영화에서 나오는 인간들의 삶에 과연 나라는 것이 존재할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자가 생각하기에 거기에는 그들의 자신인 나라는 존재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 처음 나로 살아간다는 것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무작정 지키고 책임지면 나로 살아간다는 뜻일까? 그건 아닐 것 같다. 나로 살아간다는 건 일단 내 안에 나 자신이 존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존재를 해야 한다는 건 무언가를 선택을 하는데 앞서 남의 주관이 아닌 나의 주관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드라마에서 어떤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무슨 정신병동에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다룬 드라마였는데 다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 나 지금까지 엄마 말대로 살아왔어. 근데 그거 알아? 나 카페에 가서 내가 먹고 싶은 커피 하나도 주문 못해. 그게 맞아?" 이런 대사였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이 여성의 어머니는 그때까지 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가만히 보면 알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화자가 볼 때는 이 여성에게는 나라는 주체가 없이 하라는 대로 하는 로봇처럼 살아왔다. 부모 또한 그것이 자식의 성공의 길이라 생각을 했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 넘쳐나도 나라는 주체가 없는데 그것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다 언젠가는 이 드라마의 여성처럼 시한폭탄처럼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화자도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건 한편으로는 나의 주체성을 찾아간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올바른 나라는 주체성을 찾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