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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쁘띠


새해가 밝았고 한 동안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썼다고 해야겠다. 이제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고 글에 집중해볼까 한다.

벌써 작년 12월 , 연말에 큰 참사가 있었고 그 뉴스를 접하고 보면서 하루하루 함께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는 기분이란.. 어떤 말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거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내는 것도 참으로 쉽지가 않은데 어떻게 준비도 없이 가족을 또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면 남은 인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그러한 소식들을 들으면 늘 드는 마음은 한 가지이다. 내 가족에게 잘하자. 후회 없이 매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보내자. 하지만 사람은 늘 간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이기에 , 언제나 그랬듯이 며칠 못 간다. 물론 하루 끝에 자는 아기를 보며 새롭게 다짐은 무한대로 하는데 항상 실천이 어렵다. 현실에 맞닿으면 철저히 무너지는 한 낱인간에 불과하다. 남편과도 여전히 다투고 싸우고 아이와도 전쟁을 치르는 삶 속에서 나만 혼자 이상을 먹고사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그들은 전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엔 더욱 으르렁대는 본성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1년을 보내며 가장 좋아했던 날들이 가장 불편하고 싫은 날들로 바뀐 사람이다. 바로 명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돌아왔었고 약 2주 전부터 나는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고 몹시 불편함에 휩싸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미리 모든 일들을 머릿속으로 얼추 생각은 하는 편이다. 남편의 직업상 명절도 명절 같지가 않다. 다른 휴일보다는 그래도 조금 쉴 수 있지만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언제나 대기조처럼 연휴를 보낸다. 그러나 시댁은 그런 걸 알면서도 아마 명절에 못 본다면 서운해할 것이다 시댁뿐 아니라 모든 부모들과 친척들은 그럴 것이다. 자식이 , 손주가 보고 싶을 테니.

그런데 과연 며느리가 보고 싶어서 기다려지는 시댁이 얼마나 있을까?


남편은 본인의 본가 가는 것을 불편해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좋아하지 않으니 그도 불편한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남편은 올해도 안 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얼굴은 비추고 인사는 하고 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말했고 , 그는 내 의견에 다 따르겠다고 했다. 우리는 설 명절 한 주 전에 시가를 찾았다. 시아버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시어머님은 근무 중이셔서 집에 안 계셨다. 시누이 또한 출근을 했을 시간이라 오히려 좋았다. 나는 정말로 딱 시부모님만 뵙고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이를 데리고 갔고, 시누이와 마주하기 싫었다. 우리 세 식구는 시아버님이 깨실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시어머님과 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어머니 저희 다음 주는 못 오게 될 것 같아 , 미리 찾아뵈려고 왔어요. 문이 잠겨있는데 아버님이 주무시는 것 같아요”

“(비밀번호를 알려주셨다)”

“점심은 먹고 왔니?”

“네~어머니 퇴근하시면 얼굴 뵙고 인사드리고 가려고요. 저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몇 분 뒤 또 연락이 왔다.

“우리 00 이도 같이 왔니?”


나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기 싫었다. 그저 머릿속엔 역시나 손주뿐이구나. 내가 왔고 내가 둘을 데려온 것인데 굳이 저렇게 물으셔야 하나 싶었다.

맞다. 나도 참 예민하게 굴었다. 옆 집 아주머니가 ‘우리 00 어디 갔어요?’라고 해도 기분이 아무렇지 않은데,, 시어머님의 저 말이 거슬렸다. 그냥 시댁이 이제는 다 싫은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한 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또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다른데 있다.

시가에 도착하자마자 남편과 싸움을 시작했고, 내 입장에서 너무나 괘씸하고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화가 많이 난 상황이었다.

싸운 이유는 한 가지였다. 나는 시부모님께 미리 연락을 드리지 않고 왔다. 이유는 시아버님이 언제나 집에 계시는 걸 잘 알고 있고, 시어머님도 퇴근하시고 집에 곧장 오시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항상 그래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서프라이즈로 찾아뵙는 것을 더 좋아한다. 계획형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나는 그렇다. 그게 문제가 된 적도 사실 없었다. 하지만 시가에 도착했을 때 시아버님이 주무시고 계셨기에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5분 정도 밖에서 기다렸는데 거기서 남편은 짜증이 났던 것이다. 연락을 하고 왔어야 했다고 내게 말을 했고, 나는 받아쳤다.


“네가 연락하기 싫다며 나보고 알아서 다 하라며, 그래서 내가 다 나름 계획해서 온 건데 뭐가 짜증이 나는 건데? 정 연락이 중요했으면 본인이 하면 되는걸 왜 나한테 난리야? “

본인이 연락도 하기 싫다며 모든 걸 나한테 떠맡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구시렁대며 불평을 하고 짜증을 내는데 갑자기 열이 확 오르며 나는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기껏 생각해서 인사드리려고 그래도 마음 가다듬고 왔는데 , 하는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아버님이 주무시는데도 나는 큰 소리로 대놓고 남편에게 똑바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 아니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고,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한대서 따라왔으면 그냥 따르면 되지 이제 와서 계획형인데 아무것도 안 알려줬다고 난리 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부터 시작해서 , 계획형이라는 사람이 한 번도 계획해서 계획대로 사는 꼴을 보지 못했는데 무슨 계획형이냐며 비판했고 시가가 안 그래도 불편한데 별 것도 아닌 걸로 이렇게까지 태도를 보일 일이냐고 했다. 남편은 또 내 말에 나름 반박을 했다. 시어머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며 그럴 줄 알았으면 일이라도 가지고 왔을 거라고. 나는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좀 지나 남편은 짜증 낸 것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구시렁대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시어머님의 메시지가 왔던 것이고 나는 참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칭얼대고 나가자고 난리를 치고, 남편이란 놈은 소파에 앉아 눈 감고 가만히 있기만하고 속이 터져 나가 버리는 것 같았다. 마침 시아버님이 일어나셨고 나는 인사를 드렸다. 아들인 남편은 아빠를 봤는데도 인사를 안 하고 눈만 감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더 열이 받았다. 그리고 한 번 더 확신했다. 이 집안은 정말 문제가 있는 집안이고 콩가루 집안 같다면서 말이다. (감정이 격해져서 더욱 그런 것도 있었다)

시아버님 식사 하시는 것까지 나는 기다렸고, 아이를 보게 해 드렸고 나는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되어 시어머님께 문자를 했다.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고 나가자고만 보채고 감기 기운도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연휴 지나고 시간 되면 한 번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형편이 좋지 않아 좋은 선물은 하지 못했어요 이번엔 ~ 작지만 맛나게 드세요” 그리고 나는 아이를 챙기고 남편에게 가겠다고 하고 나왔다. 남편은 그제야 그래도 엄마 보고 가야 하지 않냐고 하길래 필요 없다고 참을 만큼 참았고 이제 와서 그러냐고, 집에 갈 거라고 했다. 거기서 2차전이 시작되었다. 앉아서 눈만 감고 있던 사람이 집에 가는 건 또 싫었나 보다.

나는 폭발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기다리기 싫다고 해서 빠르게 오려고 한 것도 있고 아이도 힘들어했고 아버지 봐도 아는 척도 안 해놓고 뭘 어쩌란 말이냐며 쏟아냈다. 남편도 쌓아놓던 감정이 터졌다. 시댁 얘기 그만하고 싶다며, 나에게 그런 상처 얘기를 그만 좀 하라고 말을 했다.

나는 꿋꿋하게 받아쳤다. 따지고 보면 나는 틀린 말은 한 게 아닌데, 남편의 감정적인 태도로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고 생각하니 더 열이 받았을 뿐이다. 남편의 태도 하나로 이렇게까지 큰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도 화가 났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도록 우리는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또 하나의 문이 닫혔고 더 멀어졌을 뿐이다.


남편은 자기감정이 다 가라앉혀졌는지, 슬금슬금 내게 와서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절대 자기는 시댁 편이 아니라며 어쩌고 저쩌고..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감정대로 말이 바뀌는 사람에겐 진심이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나는 시댁 식구들에게 ‘진심’을 ‘마음’을 주었다. 그런데 그 대가가 상처였다. 그래서 그만 얘기하고 싶어도 이런 일들이 생기면 또다시 꺼내게 된다. 뒤끝이라면 뒤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기에 나는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남편은 절대 중간역할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감정대로 하는 사람일 뿐이다. 물론 시댁보단 나를 선택할 거라는 확신은 어느 정도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나는 언제나 보이는 행동과 말, 이런 게 훨씬 중요한 사람이다.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어머님이 보내신 답장이었다.


“그래 편한 시간에 오렴. 00이 같이 오렴. 00이 많이 보고 싶다”

나는 읽고 그 말에 대답도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오로지 내 아이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다. 선물을 나름 챙겨서 가져가도 고맙다는 인사가 없는 사람들이다. 기본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들인 남편도 기본 태도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음을 한 번 더 깨달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싸웠어도 내 감정과 마음이 무너졌음에도 끝까지 기다렸다가 얼굴을 뵙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가 나오고 싶으면 나와버렸다. 한편으로 속이 시원했고 스스로 조금 업데이트된 느낌을 받았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은 거구나 그리고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때로는 눈눈이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인드가 필요하기도 하구나 강하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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