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애가 이상해졌어”
시누이에게 직접 들은 것만 3번이 넘는다. 그 얘기는 결혼하기 전에는 괜찮았는데 결혼 후 동생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소리로 들리는 건 나뿐인 걸까?
그 얘기를 하는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말과 행동이 아니라 말과 말이 다른 사람이었다. 입버릇처럼 내게 말하던 건 “나는 동생 없고 조카랑 올케만 있어요”
아니요. 너는 조카만 계세요.
속으로 외쳤다. 생각 없이 필터 없이 내뱉는 말들이 많았다. 상대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저 본인 위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얘기하는 듯해 보였다. 남편과 싸우고 나면 나는 친구에게도 쉽게 얘기를 안 하는 편에 속했다. 내 얼굴에 침 뱉기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누이에게는 대놓고 욕을 아니 팩트를 말했을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남편 욕은 시댁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팩트 전달을 했다. 물론, 정말 큰일이 있었을 몇 번만 그랬고 자잘하게 싸우고 난 것들은 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마 시누이에게 남편 얘기를 하지도 않았을 거다. 우리는 관계와 교류가 없었을 테니까. 내가 그렇게 얘기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들도 자신의 아들이 동생이 어떻게 나를 대하고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한 두 번 듣고, 남편을 욕했다. 누가 봐도 남편이 잘못이라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도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어도 편들지 못했을 것이다. 속으로는 달랐을지라도 적어도 내 앞에선 나보다 더 날뛰기도 했다. 반 정도 통쾌했다. 그래봤자 소중한 아들, 어쩔 수 없는 핏줄인 동생이지만 나는 아니다. 철저히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인 남이었다. 그들이 먼저 그렇게 느끼게 했고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인지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되고 싶었던 나는 그 마음을 모두 내려놓게 되었다. 특히나 시누이의 그런 히스테리들을 겪으면서 더 마음을 지울 수 있었다.
시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애가 이상해진 거라고 내게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정말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언제나 대화를 할 때면 “나는” 우주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나도 나의 얘기를 할 줄 알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과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지, 듣고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친구도 아니고 그렇게 가까운 교류를 했던 것도 아닌데 왜 본인은 그렇게 자기 얘기를 해대며 들을 귀는 없는지 도통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나는 대화가 정말 중요한데 그것마저 나랑 맞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내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건 절대 숨기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시누이도 나에게 미안해하길 바랐고 부끄러워하길 바랐다. 어쨌든 모든 교육의 시작은 가정에서 비롯되니까.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키우셨길래 이런 아들이 자랐을까 (좋은 부분도 분명 많지만 단점이 유독 더 두드러지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반면교사 삼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로 내 아들을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고 , 다정한 아들로 제대로 키우겠다고. 그래서 더욱 남편과의 부부싸움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있어 제대로 올바르게 키워내고 싶어서 남편부터, 나부터 바르게 부부관계를 단단히 맺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시부모님은 정말 딸을 오냐오냐 키우신 듯했다. 독불장군처럼 집에서 행동하는 것도, 제 멋대로 조카에게 사랑이랍시고 집착을 하는 것도, 상대는 배려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본인은 이해받고 배려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 욕심 정말 못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자기 치장에만 관심이 있고 헛된 것들을 쫓아 살아가는 듯한 보이는 그런 모습에 내가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물론 나도 시누이를 100프로 모른다 그녀의 어떤 한 부분만 보고 이렇게 멋대로 판단하는 거 일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건 나와의 관계 맺음에서 그녀가 보여준 행동으로 나는 생각하고 느낀 것이다. 대화를 할 때도, 서로 마주하는 시간들에도 그녀는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나야 하고 가장 예뻐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녀는 그저 나와의 관계는 조카를 위한 수단, 그거 하나였을 것이고 그녀의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모든 언행들이 나를 불편하고 괴롭게 했다. 나와 내 아이에게 밥 딱 한 번 사준 것 가지고 아직도 생색을 내고, 자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밥을 사주겠냐며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아이 생일엔 연락 한 통도 안 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물질을 바라서가 아니고 그놈의 연락이 늘 문제인 집안이다. 예의가 없다. 그러면서 혹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하면 ‘올케가 불편해할까 봐, 조카 예뻐도 덜 예뻐하는 거라고’ 할 사람이다. 300프로 확신할 수 있다. 그 정도의 그릇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는 잘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가 탑재되어 있는 사람과는 관계를 더 이어 나갈 수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해야지만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척하는 그런 사람. 나는 끝내기로 결심했다.
시누이는 끊임없이 조카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나는 그만하고 싶었고, 더 이상 내 새끼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모든 연락에 무응답으로 반응을 보여주었다.
sns로 오는 모든 연락들과 댓글들에 반응하지 않았다. 요즘 말로 읽.씹 해버렸다. 읽고 씹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시누이도 반응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내 새끼에게도 , 나는 정말로 좋았고 편해졌다. 내가 그걸 진작에 받아주지 말고 끊어버릴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떤 일상도 구경하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고 그냥 각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누이뿐만 아니라 시댁에 대한 관심도 줄여가고 마음이 내켜서 했던 모든 행동들을 멈춰버렸다. 더 이상 그 마음이 내게 남아 있기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며느리는 며느리라서 해야 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지 같은 한국의 어떠한 풍습 때문에 더 이상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나의 일상을 구경하고 지켜보기도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모든 것들에 무관심으로 여전히 반응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적어도 시누이만큼은 내가 더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사실 내가 시부모님에게만 남편의 아내로서 역할을 하면 되지, 시누이에게 무언가를 해야 할 의무도 없다.
나는 관계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마음을 전부 떼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