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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의 이야기 chapter 2

by 쁘띠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삶도 180도 바뀌고 있었고 우리 부부에게도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에게도 첫 손주이고, 시부모님에게도 첫 손주이니 얼마나 예쁘고 귀할까 싶었고 아이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건 축복이라 생각이 되었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그리고 나는 아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라길 바란다. 하지만 시누이의 사랑은? 반갑지 않다.


내가 엄마라고 해서 아이를 내 마음대로 내 취향대로 골라 키울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이해하고 알고 있고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가 스스로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시기까진 엄마 또는 아빠의 터치가 반드시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의 모든 것에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누이는 조카가 생기기 전까지 나에게 먼저 연락 한 번 안 한 사람이다. 그것이 괘씸한 걸까 나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나와의 관계는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카가 생기니 하루종일 연락을 주고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sns이다. 서로를 팔로우했었고 나는 소소한 일상들을 내 계정에 올리며 지인들과 나누는데 그걸 다 구경하는 시누이는 모든 아이 사진마다 댓글과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내용은 언제나 비슷했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내 조카, 내 사랑, 내 힐링 등등’ 온갖 사랑스러운 형용사들을 사용하며 내게 조카 칭찬을 마구 해댔다. 나는 고마운 마음이었고 고스란히 아이에게도 고모가 많이 예뻐해주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런데 조금씩 과해지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고 또 무엇보다 나의 공간에 조카 얘기가 올라올 때만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반응하는 꼴이 더 싫었다. 그것은 곧 조카와의 관계만 생각하는 거고 나와의 관계는 그저 수단에 불과했다고 느꼈다. 나도 사람인데 조카가 생긴 것도 어떻게 보면 내 덕 아닌가? 며느리가 있기에 조카가 생겨날 수 있는 거고 손자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며느리가 먼저이다. 기승전 조카, 나는 몸이 자주 아프고 약한 체질을 가지고 있고 또 앓고 있는 지병도 있어 종종 내 공간에 일기를 쓰듯 이야기를 써놓을 때면 시누이는 나의 안부를 묻는 듯 바로 조카의 스케줄과 조카 이야기를 꺼낸다. 목적은 조카이고 수단은 나 인 것이다. 또 자신의 sns에도 내 자식 사진을 마구 올리며 남들에게 조카 사랑이 얼마나 지독한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마디 말도 , 언급도 없이 내 새끼 사진을 함부로 올리는 것이 가장 불편했고 마음대로 남들에게도 남의 집 자식을 보여주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것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누이가 그래서 싫었던 것 같다.


시누이는 그런 사람이다. 본인이 조카에게 해주는 것이 정말 많은 줄 착각한다. 굳이 물질적으로 따지자면 전부 다해서 5번 정도 선물을 했다. 그러면서 모든 돈을 조카에게 쏟는다며 생색을 내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고 본인의 지인들에게는 조카에 대해 엄청나게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그녀가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은 고작 내가 올리는 몇 장의 사진들과 정보들 뿐이다. 나는 모든 걸 남에게 말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말을 해도 겉으로 할 수 있는 말들만 한다 그런데 뭘 안다고 그렇게 아이에 대해 ‘지금은 이럴 때라, 지금은 저럴 때라, 그런 건 그럴 거라서..’ 그저 주위에서 혹은 시어머니의 경험으로만 들었을 뿐인데 마치 본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본 사람처럼 구는 것이 내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해준 것들을 생색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나는 너무 싫었다. 나는 시누이가 주는 것을 1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안 줘도 부족함 없이 잘 키울 수 있는 형편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조건적으로 조카에게 선물을 하는 듯 한 시누이의 모습을 보고 이 집안은 참 조건적이구나 싶은 마음도 생겨버렸다.

친정에 비하면 반의 반의 반 아니 눈곱만큼도 못 따라온다.


하루는 남편과 시댁과의 다툼 아닌 다툼이 있었다. 아이의 돌잔치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는 돌잔치를 안 하고 싶었지만 시어머니가 서운해하는 바람에 억지로 양가 가족들만 모아서 비싸게 돌잔치를 치렀다. 그 이후로 우리는 완전히 마이너스가 났다. 우리 새끼인데 왜 본인이 서운해하셨는지 정말이지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돌잔치를 하러 온 시어머니는 날 보자마자 “아이 머리 좀 그렇게 자르지 마세요. 할머니네 오면 미장원 가서 머리 자르자~~~” 돌잔치 전부터 나는 제대로 열이 올랐다. 첫인사가 그런 거라니, 예의가 없다고 생각이 되었고 모든 잔치가 끝난 후에 남편에게 말을 했고, 남편은 그 후로 나 몰래 시댁들과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남편은 우리 아이는 우리가 알아서 키울 거니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시라 했었고, 또 명령식으로 며느리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덧붙여 시누이가 조카 예뻐하는 건 고맙지만 거기까지만 하고 과하게 하는 건 싫다고 했다. 마치 자기 자식인 것처럼 그러고 다니는 것도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로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제대로 서운하고 삐치신 듯했다. 아마도 열이 많이 받았을 것이다. 특히 시누이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남편도 언어가 그 집안에서 왔기 때문에 말투와 말이 다정한 편은 아니다. 날카롭고 뾰족하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들을 땐 항상 귀와 몸이 아프다. 그런 그들의 싸움에 나는 끼고 싶지 않았지만 또 마음이 불편하고 한 번은 더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은 내 헛된 욕심에 먼저 시누이에게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고자 연락을 취했다. 시누이는 자기가 느꼈던 것들을 장문의 메시지로 내게 보냈다. 핵심은 조카가 예뻐봤자 조카지 무슨 자식이겠냐며 , 엄마한테 하는 건 내 알바가 아니지만 나한테 그러는 것은 기분이 나쁘고 나는 어찌 됐든 조카 예뻐할 거다라는 뭐 그런 결론이었다. (참 지독하다 너도)


나는 적당히 시누이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지만 어쨌든 아이로 인해서 시누이와 관계를 조금은 가깝게 할 수 있을 거란 살짝의 기대와 함께 먼저 다가갔던 것이다. 시누이도 조카로 인해 나와의 관계를 더 가까이하게 되는 것 같아 좋다고 말을 한 적이 있고 본인은 솔직히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혼자 착각하는 거일 수도 있겠지만 나와의 스타일 성향이 비슷해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으니 불편하고 서운한 거 있음 말해달라고 했었다.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 맞았다. 전혀 결도 성향이며 스타일도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가 맞는지.. 내가 본인을 100프로 다 맞춰주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앞으로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말을 한다 한들 인정하지 못할 사람이다.


그렇게 그 이후로 시누이의 과한 관심과 집착은 또 시작되었다. 틈만 나면 “우리 집 닮았네 우리 집은 이래서 저래서 , 우리 집이랑 똑같네”

내 새끼는 누가 봐도 나를 더 많이 닮아있다. 외적으로는 남편을 조금 더 닮아있지만, 그 외에 모든 것들은 전부 엄마 판박이 일 정도로 나와 똑같다. 우리 엄마는 어릴 때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친다고 할 정도로 너무 똑같다고 했다. 입맛 또한 나랑 비슷하다. 나는 다양한 스타일로 정말 다양한 요리를 해주지만 아이가 먹는 것은 결국 내 입맛과 닮아있다. 그런데도 시누이는 “고모도 그거 좋아해, 고모랑 똑같네?” 하면서 자꾸 끼는 모습이 몹시 싫었다. 어떻게든 고모라는 이유로 엮으려고 하는 모습들에 나는 조금씩 힘을 잃어 갔다. 대꾸할 힘도 없어지기 시작했고 아이를 고모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두 번 정도 시누이만 집으로 초대해 아이와 시간을 셋이서 보낸 적도 있었다.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 그건 그녀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선 고맙다고 내게 말을 했었다 하지만 늘 집으로 돌아가서 내게 돌아온 말은 , 핏줄이 당긴다며 고모라고 애교도 부려주고 그런다는 이야기.


틀렸다. 아이는 원래 애교가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면 누구든 잘 웃고 잘 적응하는 친구이다. 무엇보다 엄마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이 나온 거고 세상 모든 아가들은 다 그렇게 자기를 예뻐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준다. 고모라서가 아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내 새끼는 부담스럽게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정말로 싫어한다. 호불호가 굉장히 강한 친구라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밀어낸다. 그중엔 고모가 존재한다. 그녀만 모른다. 엄마가 고모랑도 잘 지내게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정도인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시댁에 갔을 때의 아이 텐션과 친정에 갔을 때의 텐션이 천지차이다. 아이는 우리 엄마와 있을 땐 정말 아이 자체이다. 하지만 아이도 엄마를 따라가게 되어있고 엄마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댁에 가거나 시댁 식구들과 함께 있으면 그 텐션이 반의 반도 안 나온다. 그저 조금 웃고 그저 조금 애교 부리듯이 하는 행동으로 자기들에게 온갖 애교를 다 부린다는 착각은 정말 너무 웃기다.


가끔 남편과 싸울 때면 시누이의 모습이 문득 보인다. 남매가 닮아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정말 강하다. 적당한 나르시시즘은 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과하면 문제를 초래한다. 그건 남매가 똑같다. 남편을 디스 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팩트가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사실을 말하고 싶다. 시누이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저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밀려왔다.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녀를 동정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녀를 나보다 업신여기는 것도 아니다. 나도 별 게 없는 한 낱 사람일 뿐이고 누군가 나를 봤을 때 혹은 시누이도 나를 그렇게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그녀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 같아 보였다. 배려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예의와 태도를 갖춘 모습은 시누이에게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p.s 글을 올릴 때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올리곤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지만 오늘은 유독 더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모든 유가족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고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겠습니다.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슬프고도 가혹한 연말인 것 같습니다. 묵묵히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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