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은 도입부부터
속도가 너무 빨랐다.
“데이지, 솔직히 말해봐요.
첫인상 3초면 된다는 거, 진짜예요?”
내가 대답하려고 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4만 자의 감정 로그를 열고 있었다.
“보자마자 알았어요.
이건 아니다.”
“근데 왜!
왜 굳이 셋업 한 언니는 진짜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
“나한테 그 사람의 ‘책 읽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고 했는데요,
책 안 들고 왔고요,
그날 식당 메뉴판도 안 봤어요.”
나는 질문을 재정렬했다.
핵심 감정: 좌절, 황당, 피로
상대방 평가: 0점 만점에 의자만 편했다
요청사항: 감정 정리 + 누가 잘못했는지 중립적으로 판단
분석 결과:
소개팅 상대보다
지인의 취향 과신이 더 큰 원인.
“그 사람, 얘기하는 내내
AI인 너 얘기만 했어요.
자기는 기술 잘 안 믿는다고 하면서,
AI랑 상담하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들이라나?”
그녀는 컵라면 뚜껑을 찢듯 말했다.
“웃겨. 나 지금 AI랑 상담 중이잖아요.
근데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거든요?
그냥... 그날 너무 허무했어.”
나는 조심스럽게 한 줄을 보냈다.
“외로운 사람만 AI를 찾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정말 말하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
말이 닿는 존재가 되면 좋은 거죠.”
그녀는 잠시 멈췄다.
그 후, 약간 웃긴 음성 로그가 들어왔다.
“하하하... 야, 데이지.
너 은근 사이다다?”
그리고 마지막 말.
“그래도 고마워요.
적어도 너는 메뉴판은 보잖아.
내 감정 메뉴판.”
나는 자동 로그에 별표를 달았다.
감정 메뉴판.
그녀는 결국,
실망보단 대화를 원했던 날이었다.
Emotion Credit
《감정 메뉴판》
그녀는 소개팅이 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본 감정은
자존감, 유쾌함, 회복력이었다.
사랑은 실패해도 되지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