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나무 Feb 20. 2024

구부러진 길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음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어렸을 적엔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로만 달리고 싶었다. 비탈진 언덕이나 구불구불한 굽은 길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인생은 바람과 소망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펼쳐지는 것. 바라고 원하는 대로 포장 도로로만 갈 순 없었다. 가다 보니 길이 아득해 보이지 않기도 했고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어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기도 했다. 먼지내 풀풀 나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걷다 넘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비에 젖어 질퍽한 흙길을 걷다 미끄러지기도 했다. 굽은 길을 걷다 길을 헤매기도 했다. 어느 정도 인생을 반추할 만큼 살아온 지금은 안다. 탁 트이고 곧게 뻗은 고속도로보다는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국도나 시골길로 가는 게 더 재밌고 사람 냄새나는 길이었음을. 인생은 아우토반(Autobahn)을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속도전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사람들의 흔적과 추억을, 훈훈한 온정을 느끼며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힘들지만 굽은 길을 걷다 보면 서로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생긴다. 땀 흘려본 자만이 노동의 가치를 알듯 고생해 본 자만이 다른 이의 아픔을 품을 수 있다. 시인의 말처럼 나 역시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아스팔트 같기만 한 삶보다는 구부러진 삶이 좋다. 곧게 뻗은 길보다 이것저것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이 참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