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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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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심리스 Aug 30. 2021

사진을 보다가

너의 순간을 아낌없이 껴안고싶은 욕심.

나는 아이의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한다. 그보다 더 좋아하는 일은 내가 찍어놓은 아이의 사진을 다시 보는 일이다.


아이를 키우며 새롭게 주어지는 나의 책무들.

나의 일상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일은 참으로 지루하고 힘들며 고되지만


"그 중에서 그래도 가장 즐거운 일이 뭐예요?"

누군가 물으면

"아이의 순간을 사진에 담고, 그걸 돌려보는 일이요."라 답할 것이다.


온 종일 에미 모드, 수발 모드로 일 한 뒤에는 적어도 육퇴 후에 아이 사진은 안 보는게 정상이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가 퇴근을 했는데 직장 사진을 보지 않듯이 육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긋지긋한 일상 속 조금은 내 자유를 찾고 싶은 그 소중한 시간은 일상을 벗어난 다른 행동을 해야 위안이 되는 법인데 육아는 좀 다르다.


하루 육아를 마치고 퇴근을 한 뒤 샤워를 한다.

샤워 후에 옷을 갈아입고 누워서 아이 사진을 돌려보며 웃는다. 하루 종일 봤으니 질릴 법도 한데 다시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한다.


밥먹는 것, 간식 먹는 , 웃는 , 옹알이를 신기하게 하는 , 점점  걷는 , 미끄럼틀에 올라가는 

다양한 타이밍의 다양한 아기의 모습이 나의 자유로운 밤을 다시 행복에 젖게 한다.


“이거 정말 잘나왔어. 너무 귀여워.”

왠지 사진을 나처럼 좋아해줄 것 같은 친정 톡방에 공유한다.


‘너무 귀엽다~’

소리를 듣고 싶은 것도 있고 즐거운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이 감정을 가족과 공유하고픈 마음도 있다.  


이렇게 사진을 좋아하는 일은 가끔은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귀여운 장면의 모습을 찍고 그 사진을 다시 보느라 자기를 봐달라는 아이의 매달림을 건성으로 답한다.


(엄마 나좀 봐봐 이거 봐바)

아이가 계속 매달림 매달림- 내 눈은 여전히 휴대폰이다.

“잠깐만 엄마 이것 좀 보고. 네 사진 너무 귀엽다!”

애는 내팽겨치고 애 사진을 보고 웃음을 짓고 있다.


아이가 말을 한다면 어이없어하며 내게 한 마디 날릴 것 같다.

(엄마 나 귀여운 채로 여기 있는데 왜 거기만 보는 거야. 여기 나 있잖아!! 직접 보라고 !)


아-완벽한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오늘 아침, 문득 아이폰의 오늘의 추천 사진이 뜬다.

그 속의 훨씬 어린 아이의 사진을 보며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정말 많이 컸어.

어쩌면 나는 사진으로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순간을 멈춰서 눈에 담고 또 담고 싶은 마음인지 모른다.


육아 노동 속에 파묻혀 아이의 예쁨을 그 때 온전히 느끼지 못했으므로 그걸 온전히 꼭꼭 씹어 음미하고 싶은 걸지도.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나 아닌 존재의 사진을 이리도 내 것처럼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다.


그런 존재가 내게  .

그래서 내가 그것을 담아내고 

아끼고 사랑하며 기뻐하는 .


모두가 신기하고 놀라우며 감사한 이다.


예전의 나는 내 사진 찍는 걸 그리도 즐기는 사람이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릴만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댔다. 내 프로필에는 내 예쁜 사진이 담겼다.


이제 나는 애 사진 찍는 걸 그리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내 프로필에는 아이의 예쁜 사진이 담긴다.

그렇다고 내가 내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를 돌보느라 그 때만큼 화장하고 꾸미기가 쉽지 않으며 이제는 찍어도 그리 예쁘지 않아서 아이 사진을 올리는 이유도 있지만?)


이제는 아이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그 귀여움이 나에게는 기쁨이고 자랑스러움이어서. 내가 그래도 이렇게 아이를 잘 키우고 살아간다는 즐거운 마음이어서 아이를 담게 된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라는 나태주 시집 제목대로 아이의 사진을 보는 나의 눈은 아마도 꽃을 보는 눈빛과 유사할 것이다. 즉각적인 행복을 전해주는 그 미소가 나의 지난한 일상에 위로를 던져준다.


천천히 크라는 말이 정말 이해 안가는 사람이었는데 작고 귀여운 딸의 모습을 다시 보며 놀랄 때는 그 말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그래.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더 많이 담고 더 많이 눈에 넣고 기억하고 싶다.


사무치게 사랑하는 소중한 아이의
매 순간을 껴안고 싶은 욕심.


오늘도 그 욕심으로 사진을 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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