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고 있지만 여전히
‘그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지~ 나는 이쁘지도 않고, 말도 잘 못하고,,내가 뭐라고 ?
난 자격증도 없고? 전공도 아니고?‘ 라며 고민 할 때
누군가는 자기의 특별함을 조금씩 쌓아서 돈 벌 궁리를 한다.
그러나 꼭 알아야 될 것이 있다.
1가지 방법 명확한 루트가 없단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조차도 과거에는 확실한 길만 고집했다.
IMF를 겪는 나의 진로선택의 중심은 ‘안정’이었다.
첫번째 경영학과은 연봉높은 은행원
두번째 유아교육과는 여자가 취업하기 쉬운 유치원교사
세번째 안정의 끝판왕 공무원
네번째 전문직이 되고 싶어 도전한 검사
안정적으로 보이는 곳으로만 선택했다.
진로 선택이 내 기준이 아닌 남의 기준으로 맞추려고 하였기에 선택 마다 삐걱거렸다.
그래서 마지막 도전은 완전히 생각을 바꿨다.
나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시작했다.
‘ 뭐할 때 행복하지? 어떤 사람으로 남고싶지?’
처음부터 어떤 뜻을 가지고 성인진로전문가가 되려고 ? 전혀 아니다. 직업명 자제도 없었다.
‘성인이 무슨 진로 고민해? 그냥 직장다니던 거 다녀야지
진로상담은 초중고 때 하는 거지‘ 가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나 역시도 소수에 사람들이 고민이라 생각했다.
자꾸 주변에서 이상한 돌연변이 같다고 하니까
현재 그 길을 10년째 걸어 왔다.
호기롭게 내일을 찾겠다고 나왔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단기 알바와 판촉행사도 다녔고 과외 학습지 교사를 병행했다.
짠내나게 허접했던 시기였다.
틈틈이 진로관련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했고 사람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진로에 관련된 교육이라는 교육은 다 들었다. 우리나라와 해외 진로논문을 다 찾아서 읽었다.
시간은 남았고 할 게 그것밖에 없었다. 이 후 깨달은 것들을 정리하고 무료상담을 했다.
그걸 바탕으로 무료소책자를 만들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입소문이 났다.
전국에서 대전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나는 지방출신이다)
감당이 안 될 만큼 커지면서 현재 나는 서울에서 자리잡았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 아이덴티티)을 발견, 활용, 방향을 정해주는 일을 하는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잘하는 무언가와 좋아하는 그 것과 접점이 만나면 지속성이 생긴다,
잘하는 일이 꾸준히 쌓아가면 경쟁력이 된다.
아무도 모르고 직업명 조차 없었던 일이 실력이 오르고 남에게 얼마나 큰 가치를 줄까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 하다 보니 맨땅에 천막하나 없던 나의 커리어가 하나하나 쌓아지고 있었다.
처음엔 보잘 것 없던 나의 집에 울타리도 쳐졌다. 벽돌 쌓았다.
지금은 작은 마당 있는 단독 주택 정도 된 거 같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꿈을 이루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돗자리 필 용기인거 같다.
나의 인생에 꿈이 사라 졌다면?
현대판 주인과 종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집을 지어 살아가고 싶은 분께
용기 한스푼을 주고 싶다.
돗자리 한번 펴 보자고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