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by 다자이 오사무
그동안 눈팅만 해온 '인간실격' 책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얇은 두께가 맘에 들어 읽기 시작했으나 읽는 내내 얇은 두께에 비해 매우 두꺼운 감정과 생각들이 솟구쳐 마지막장을 넘기기까지 많은 수고가 들었다.
속된 말로, 읽다가 정신병 걸릴 것 같았다.
사실, 작가 즉 서술자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실격은 인간의 불안전함과 불안, 내면의 고통과 타인과의 어려운 관계형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요조는 부자집안 태생에 머리도 좋고 심지어 핸섬 남이다. 이런 완벽한 조건남이 어쩌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연약한 자아를 가지게 되었을까. 선천적인 DNA의 문제인 걸까, 아니면 성격형성에 트리거가 되었던 어렸을 겪었던 나쁜 경험 때문인 것일까.
왜,
인간은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인가.
불안은 무엇이고 왜 생기며 이를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나.
(인사이드아웃 2에 불안이라는 새로운 감정 등장에 반가우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다.)
마흔이 되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마주치게 되면 쏜살같이 도망치다가 오기가 생겨 붙잡고 늘어져 보기도 한다. 불행 중 다행(럭키비키!)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점은 나름대로 이를 대처하는 노하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분명 예전에도 동일하게 느꼈을 감정이지만, 이제 이 감정을 객관화하고 분석하여 날려버리려는 시도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형편없는 사람은 형편없이 대하자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걱정하지 말자
차분하게 소소한 것에 집중하자
답신이 없는 메시지나 카톡은 안드로메다로 투척
욕먹어도 어쩔 수 없지(오래 살고 좋네)
그래도 계속 나를 옭아맬 땐, 아 어쩌라고(X10번)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요조에 자꾸 나를 투영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일절 관심도 없지만 가면을 쓰고 의도적으로 친한 척 잘 지내는 척한다. 그러다 그 가면이 벗겨지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 혹은 혹시 내 정체가 들통날까 봐, 그래서 미움을 받을까 봐..
요조의 내적 갈등은 매우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받거나 소외감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경험들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서, 책은 우리가 가진 내면의 불안과 고통을 직시하게 만든다.
항상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며, 긍정적 관계형성에 매달리는 허구적이며 소비적인 노력들.
예전 마음 상담 치료 중 의사가
"왜 너를 괴롭히는 감정과 고민 중에 너는 없느냐, 주체가 나가 되어야 한다. 타인은 있지만 내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타인에 대한 공포와 시선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느라 수많은 시간을 정신적 노동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불안, 강박, 걱정 이런 감정을 이제 좀 편안하게 바라보고 싶다.
인사이드2에 등장하는 '불안이'도 결국은 나의 자아를 이루는 많은 감정들 중에 하나인 것처럼, 이것 역시 결국은 나를 완성시켜 주는 정체성의 부분인 것이다. 그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도망 다니고 피하는 대신 빠져도 금방 헤어날 올 수 있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성장해 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마흔은 이런 노력을 기르고, 내면의 힘으로 다른 것을 껴안을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