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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May 09. 2022

너의 시간과 마음을 함께 한다는 건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우연 당근 마켓에서 구매한 중고 명화 전집이 시작이었다. 처음 책을 가져왔을 때만 해도 시들하더니 현진이는 어느 순간부터 책 속의 작품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품의 밑에 작게 적힌 미술관 이름들을 보며 나도 미술관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다 말했고, 그래서 후다닥 검색해 찾은 곳이 멀지 않은 곳에서 하는 모네 전시회였다. 현진이는 처음 가보는 미술관이 정말 기대된다며 며칠 전부터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디데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현진이는 첫 미술관에서 즐겁고도 진지하게 그림을 감상하고 중간중간 자리한 체험존에서 꼼꼼하게 본인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현진이는 첫 미술관 관람이 아주 만족스러웠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다른 전시회를 찾거든 꼭 시 한 번 데려가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현진이가 기다려온 첫 경험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 나 또한 행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기꺼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진심으로 기뻤다. 현진이가 즐거워하던 그 순간, 나도 현진 같은 마음이었다. 우린 함께 즐거웠다.


나는 현진이에게 그런 엄마이고 싶다. 현진이가 좋아하는 걸 기꺼이 함께 하는('해주는'이 아니라 '함께 하는'이 키포인트이다.), 진이가 함께 하고 싶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아주 당연하게 함께 하는 그런 엄마. 그리고 나는 그런 바람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내게 엄마로서의 롤모델을 묻는다면 딱 한 사람, 나의 엄마다. 육아만큼은 후회 없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엄마만큼 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돈이 많아하고 싶은 걸 다 해주거나 배움이 깊어 잘 가르치던 엄마는 아니었으나, 엄마는 늘 나와 함께 했다. 한참 책 읽기에 빠져 둘이 배낭 하나씩 매고 헌책방에 가 책들을 잔뜩  짊어지고 돌아와 늦은 밤까지 함께 책을 읽던 기억, 작은 키가 싫다는 내 말에 저녁마다 같이 학교 운동장에 가서 줄넘기랑 농구를 하던 기억, 한자 공부를 하고 서로 쪽지시험을 내주며 대결하던 기억,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늘 내 옆에서 채점을 해주거나 책을 읽으면서 조는 나를 깨워가며 내 옆자리를 지키다 내가 잘 때야 엄마도 안방으로 돌아가던 기억. 모든 나의 어린 시절에 엄마는 그렇게 엄마의 젊었던 시절 대부분을 나에게 내어줬다. 내 어린 시절의 무수히 많은 부분에 엄마가 함께 했던 기억들은 내가 기꺼이 사랑받을만하고 귀한 사람이라는 믿음의 뿌리가 돼주었다. 게다가 모든 함께의 순간, 나는 엄마에게서 단 한 번도 귀찮음이나 의무감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마음까지도 나와 온전히 함께였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이걸 해주기엔 좀 귀찮은데, 오늘은 알아서 놀아줬으면 따위의 마음이 생길 때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딸이 서른 중반이 넘도록 여전히 자신보단 딸이 먼저인, 딸의 마음을 제일 중요하게 여겨주는 엄마게 고맙고 미안하다. 대가 없이 나에게 주는 끝없는 마음이 존경스럽다. 엄마의 인생을 좀먹어버린 딸에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엄마가 진심으로 위대하게 느껴진다.

지금껏 그래 왔듯 나의 육아는 늘 엄마를 떠올리며 열심일 테고 엄마만큼 예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려 하겠지만, 나라는 엄마는 나의 엄마만큼 대단할 자신이 없다.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는 오늘도 엄마가 나를 대하던 그 마음과 같이 나의 아이들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육아의 모든 순간을 엄마가 되었기에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닌 엄마가 되었기에 누릴 수 있는 기쁨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다 큰 아이들에게 효도로 돌려받아야 하는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진심으로. 나는 나의 엄마에게 자식을 키우는 것이란 그런 것이라 배웠고, 그런 나의 엄마를 아주 많이 닮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를 더 괜찮은 엄마로 만들어주고 있는 과거의 엄마,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아낌없이 본인의 모든 것을 내어고 있는 지금의 엄마에게 고맙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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