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함께 쓰기로 정한 주제는 오늘 공원에 놀러 가 신나게 논 이야기였으나, 나의 글은 찬사에 가까운 아들 자랑이 될 예정이다. 더 이상 겸손은 미덕이 아니며 사실에 입각한 내자랑은 자만으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자식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이상하게 적당한 선에서 겸손의 미덕을 지켜가며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한 내 아들 자랑을 할 예정이고, 아무리 겸손하려 애쓴다 해도 내 아들이 하는 달콤한 말들은 그 어떤 칭찬의 표현을 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다. 나는 오늘 아들 덕분에 녹아버리다 못해 하늘하늘 하늘로 날아가버릴 뻔했다. 달콤한 내 아들 덕분에.
공원으로의 외출을 위해 내가 옷장문을 열고 옷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사실 나는 패션센스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날씨만 겨우 맞춰 편한 티셔츠에 청바지 정도를 골라 입는 편이다. 오늘도 날이 꽤 따뜻해 보여 편하게 흰 티셔츠에 검정 슬랙스를 입으려는데, 현진이가 오랜만에 본인이 옷을 골라주고 싶다고 했다. 검정 바지 말고 엄마한테 어울리는 예쁜 옷을 골라주고 싶다고. 그리고서는 몇 안 되는 치마 두세 벌을 한 번씩 입어보게 하고는 앞모습 옆모습까지 꼼꼼히 봐주더니, 잔잔한 꽃무늬긴 있는 긴치마를 최종 선택했다. 그리고 옷을 입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 이 드레스 입으니까 정말 예뻐! 너무너무 예쁘다! 엄마가 정말 예뻐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엄마만 졸졸 따라다녀야겠어." 녹음을 못 한 게 한이다.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재잘재잘 달콤하게 쏟아낸 말들이 더 많았을 텐데 오히려 내가 기억을 미처 못하고 줄여낸 게 이 정도다. 막 사랑에 빠진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여자 친구에게 하는 멘트가 아닌, 겨우 일곱 살 난 아들이 엄마에게 던지는 멘트가 이렇다니. 하늘에서 엄마에게 내려오기 전 설렘 열매를 먹고 자란 천사가 아니었을까.
사실 그간 현진이가 해온 달콤한 멘트들을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아직 잠자리 분리를 하지 않아 다 같이 자는데, 현진이가 아침에 나보다 먼저 눈을 뜨면 내 입술에 뽀뽀를 하곤 '잘 잤어?'라고 말하며 나를 깨운다(남편도 이렇게는 안 한다!). 뜬금없이 엄마는 너무 예뻐, 사랑해 라는 말을 하거나(세수만 겨우 하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을 때에도), 가끔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정말 반한 듯한 얼굴로 오늘은 더 예쁘다고 말해준다(남편은 '괜찮네' 정도가 최고의 칭찬인 사람이다). 멋있고 자상하고 훌륭하지만 표현에는 아주 취약한 아빠와 예민하고 날카로운 엄마 사이에서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아들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 걸까. 너는 정말로 나에게 오기 전 따뜻하기만 한 어느 천국에 살고 있던 천사가 아니었을까. '달콤' '설렘' 이런 단어들이 이렇게나 찰떡인 일곱 살 남자아이가 또 있을까. 물론 그런 아이들은 찾아보자면 많을 수 있고 그래서 나의 말들은 지나친 찬사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진심이다.
알고 있다. 현진이가 자라면 현진이의 그 달콤한 멘트는 내가 아니라 현진이가 사랑하는 여자 친구, 그리고 아내에게 향할 거라는 걸. 그리고 현진이가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부터, 나는 '미래 며느리 남편'을 키우는 중이라고 쭉 생각해왔다. 그래서 나의 스윗한 꼬마 남자 친구를 결국엔 떠나보내야 하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렇게 녹아버린다. 녹다 못해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해져 하늘을 훨훨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아들의 어린 시절에 했던 달콤한 폭격들이 모두 엄마에게 향했다는 사실이 나중에도 벅차고 기쁠 것 같다.
그리고 현진이에게 배운다.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혹은 나의 아이들에게도 내 벅찬 사랑을 이렇게 절제 없이 표현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무리 큰 사랑이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만큼이나 해맑게 나의 사랑을 필터 따위 없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한 번이라도언제든 어디에서든 내 사랑을 거르지 않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래서 현진이에게 배운다. 표현해야 사랑인 것을, 표현해야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