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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May 16. 2022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자

달콤해, 따뜻해, 설레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원래 함께 쓰기로 정한 주제는 오늘 공원에 놀러 가 신나게 논 이야기였으나, 나의 글은 찬사에 가까운 아들 자랑이 될 예정이다. 더 이상 겸손은 미덕이 아니며 사실에 입각한 내자랑은 자만으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자식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이상하게 적당한 선에서 겸손의 미덕을 지켜가며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한 내 아들 자랑을 할 예정이고, 무리 겸손하려 애쓴다 해도 내 아들이 하는 달콤한 말들은 그 어떤 칭찬의 표현을 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다. 나는 오늘 아들 덕분에 녹아버리다 못해 하늘하늘 하늘로 날아가버릴 뻔했다. 달콤한  아들 덕분에.


공원으로의 외출을 위해 내가 옷장문을 열고 옷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사실 나는 패션센스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날씨만 겨우 맞춰 편한 티셔츠에 청바지 정도를 골라 입는 편이다. 오늘도 날이 꽤 따뜻해 보여 편하게 흰 티셔츠에 검정 슬랙스를 입으려는데, 현진이가 오랜만에 본인이 옷을 골라주고 싶다고 했다. 검정 바지 말고 엄마한테 어울리는 예쁜 옷을 골라주고 싶다고. 그리고서는 몇 안 되는 치마 두세 벌을 한 번씩 입어보게 하고는 앞모습 옆모습까지 꼼꼼히 봐주더니, 잔잔한 꽃무늬긴 있는 긴치마를 최종 선택했다. 그리고 옷을 입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 이 드레스 입으니까 정말 예뻐! 너무너무 예쁘다! 엄마가 정말 예뻐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엄마만 졸졸 따라다녀야겠어." 녹음을 못 한 게 한이다.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재잘재잘 달콤하게 쏟아낸 말들이 더 많았을 텐데 오히려 내가 기억을 미처 못하고 줄여낸 게 이 정도다. 막 사랑에 빠진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여자 친구에게 하는 멘트가 아닌, 겨우 일곱 살 난 아들이 엄마에게 던지는 멘트가 이렇다니. 하늘에서 엄마에게 내려오기 전 설렘 열매를 먹고 자란 천사가 아니었을까.




사실 그간 현진이가 해온 달콤한 멘트들을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아직 잠자리 분리를 하지 않아 다 같이 자는데, 현진이가 아침에 나보다 먼저 눈을 뜨면 내 입술에 뽀뽀를 하 '잘 잤어?'라고 말하며 나를 깨운다(남편도 이렇게는 안 한다!). 뜬금없이 엄마는 너무 예뻐, 사랑해 라는 말을 하거나(세수만 겨우 하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을 때에도), 가끔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정말 반한 듯한 얼굴로 오늘 더 예쁘다고 말해준다(남편은 '괜찮네' 정도가 최고의 칭찬인 사람이다). 멋있고 자상하고 훌륭하지만 현에는 아주 취약한 아빠와 예민하고 날카로운 엄마 사이에서 이런 말과 행동을 는 아들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 걸까. 너는 정말로 나에게 오기 전 따뜻하기만 한 어느 천국에 살고 있던 천사가 아니었을까. '달콤' '설렘' 이런 단어들이 이렇게나 찰떡인 일곱 살 남자아이가 또 있을까. 물론 그런 아이들은 찾아보자면 많을 수 있고 그래서 나의 말들은 지나친 찬사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진심이다.


알고 있다. 현진이가 자라면 현진이의 그 달콤한 멘트는 내가 아니라 현진이가 사랑하는 여자 친구, 그리고 아내에게 향할 거라는 걸. 그리고 현진이가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부터, 나는 '미래 며느리 남편'을 키우는 중이라고 쭉 생각해왔다. 그래서 나의 스윗한 꼬마 남자 친구를 결국엔 떠나보내야 하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이렇게 녹아버린다. 녹다 못해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해져 하늘을 훨훨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아들 어린 시절에 했던 달콤한 폭격들이 모두 엄마에게 향했다는 사실이 나중에도 벅차고 기쁠 것 같다.


그리고 현진이에게 배운다.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혹은 나의 아이들에게도 내 벅찬 사랑을 이렇게 절제 없이 표현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무리 큰 사랑이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만큼이나 해맑게 나의 사랑을 필터 따위 없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한 번이라도 언제든 어디에서든 내 사랑을 거르지 않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래서 현진이에게 배운다. 표현해야 사랑인 것을, 표현해야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음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정말로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부럽다.

미래의 며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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