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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Aug 19. 2022

내 아들의 여자 친구

낯설고 어린 여자를 대하는 어른 여자의 자세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현진이 친구가 생일을 맞아 키즈카페를 대관하고 여러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작년부터 서로 마음이 맞아 아주 잘 지내던 여자 친구였다. 거기서 더 나아가 둘은 작년부터 결혼하겠다는 애정표현을 서슴없이 서로에게 쏟아대는 사이다. 현진이는 키즈카페에 가는 날 아침부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 집안을 날뛰며 다녔다. 평소 키즈카페 가기 전 현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자면, 아무래도 '여자 친구와 함께'인 키즈카페라 그리도 신이 난 모양이었다.


물론 남녀로서의 마음이라기보다는 쿵짝이 잘 맞는 좋은 친구라는 느낌이겠지만, 남자 친구와는 결혼하겠다는 말이 없는 걸 보면 확실히 '결혼'이라는 제도의 의미를 아주 모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결혼 이야기를 서슴없이 할 때마다 상대 여자 친구 부모님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생겼더랬다. 아직 일곱 살 어린아이 라지만, 그래도 '결혼'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남발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두 아이는 선물이나 편지도 곧잘 주고받고 사랑한다는 말도 쉽게 잘 나누곤 한다. 자존심 따위의 망에 거를 필요가 없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표현에 나는 종종 감동을 받지만, 어쩐지 결혼이란 말은 과연 남발해도 되는 것인가 남모를 고민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이라는 단어는 주책맞게도 나에게 자꾸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게 만들고야 만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애정표현의 단어인 '결혼'이, 나에게 와서는 현실 어른의 때가 묻어 탁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결혼 타령이야 어린아이들의 귀여운 애정행각이고 현진이를 좋아해 주는 현진이의 여자 친구 또한 사랑스럽고 예뻐 죽겠지만, 장성한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여자 친구를 데려오면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 친구를 맞이하게 될까.


지금의 마음대로라면 나는 내 아들 손을 잡아준 낯선 젊은 여자를 두 팔 벌려 안아줘야 한다. 내 육아의 목표는 이전에도 말했듯 '후회 없이 사랑하고 미련 없이 독립시키는 것'이다. 립한 자식이 홀로 서있는 길에 사랑하는 누군가가 손을 잡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내 자식에게도 굉장한 행운이다. 그러니 나는 내 아들과 함께 해줄 낯선 젊은 여자를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봐줘야 한다.

 

또한, 먼 미래에 만날 그 아이를 나는 아주 귀히 여겨줘야 한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이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귀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귀하듯 남의 자식 또한 귀하고, 내 눈에 내 자식이 최고인 만큼 다른 부모의 눈에는 그들의 자식이 가장 잘나 보이게 마련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라도 비교를 한다거나 재본다거나 하는 마음을 갖는 건, 귀하게 키운 남의 집 자식에 대한 굉장한 무례라고 생각한다. 래서 나는 벌써부터 생각날 때마다 남편에게 나의 이런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곤 한다. 나중에 딴마음 먹지 않으려고. 지금의 다짐을 깡그리 잊은 채 미련 많고 경우 없는 어른 여자가 되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나는 먼 미래에 다 자라 독립한 소중한 두 자식들의 만남을 두 팔 벌려 환영해줄 생각이다. 너희들끼리 행복하게 잘 살라고 기쁜 마음으로 손 흔들어줄 생각이다. 래야 한다. , 잘할 수 있겠지?




일곱 살의 결혼 이야기에 참 멀리도 갔다. 내가 시부모가 되는 먼 미래까지 다녀오다니 말이다. 키즈카페에서 현진이와 여자 친구는 다른 엄마들 눈에도 유난히 띌 만큼, 한 몸인 듯 꼭 붙어 다녔다. 리고 집에 돌아온 현진이는 난생처음으로 몇 장에 걸쳐 일기를 썼다. 어떤 신나는 곳을 데려갔어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정말로 행복했나 보다.


현진이가 좋아하는, 현진이를 좋아해 주는 예쁜 여자 친구야. 너의 생일에 현진이를 행복하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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