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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Jul 21. 2022

내가 대신 아파줄게

부모의 아픔과 자식의 아픔, 그 사이의 나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아주아주 신나는 날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내려온 시골 할머니 집 마당에 커다란 수영장을 설치했고, 오전 내내 신나게 수영한 후 한 숨 푹 자고 일어난 아주 기분 좋은 오후였다. 후에도 입어야 하니 햇볕에 말려두겠다고 마당 빨랫줄에 걸어둔 수영복 티셔츠가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현진이는 자고 일어나자마자 수영을 해야겠다며 마당에 걸려있던 수영복을 냉큼 걷어다 입었다. 머리를 집어넣고 양팔을 집어넣자마자 갑자기 현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명을 렀다. 놀란 편이 소매 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순식간에 내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커다란 벌레 한 마리를 끄집어내 바닥에 냅다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벌이었다! 우연히 빨래 속에 들어간 호박벌이 옷을 걷어다 입는 내내 소매 속에 용캐도 숨어있다가 내 아들의 팔뚝을 두 이나 쏘고는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바닥에 던져진 호박벌을 잡으려다 엄마도 손가락에 한 방을 쏘여버렸다. 이 모든 일들은 1분도 안 되는 찰나에 일어났다. 


물론 내 아들이 한 방 더 쏘인 게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어찌 됐건 그 짧은 순간 나는 미안하게도 엄마를 보지 못했다. 엄마의 '앗 따가워' 소리도 었고 물론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냐고 스치듯 물어보았을 뿐, 내 눈에는 빨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작고 통통한 팔뚝과 패닉 상태의 내 새끼 얼굴만 보였다. 어린아이가 벌에 쏘여 사망했다는 기사를 옛날 어디에선가 봤던 기억이(이 기억이 참인지 상상 인지도 잘 모르겠다) 떠오르며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나는 벌 근처에도 안 갔는데 온몸이 벌에 쏘인 것보다 아픈 것 같았다.


다행히 현진이는 튼튼했고 호박벌의 독은 그리 강력하지 못했던 듯 병원을 다녀오는 사이 금세 붉은 기도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몰아쳤던 폭풍은 그렇게 빠르게 잠잠해졌다. 그리고 나는 조금 민망하고 많이 미안했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같이 다쳤을 때, 이렇게까지 한 사람에게만 내 모든 신경이 쏠릴 수 있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삼십 년이 넘도록 함께 해온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을, 겨우 칠 년 차 부모의 마음이 이렇게도 손쉽게 이겨버릴 수 있다는 사실 민망스러워졌다. 리고 내가 방금 경험한, 감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경이로웠다. 그러니 우리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겠지.  늘 부모의 거대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내가 어느새 엄마가 되어, 그 순간 마의 딸이 본인의 만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던 것을 순리라 여겼겠지.




부모가 아프면 걱정되고 속상하고 미안하고 안쓰러 마음이 체한 듯 가슴에 얹힌다. 안 아팠으면 좋겠고,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뭐라도 해드리고 싶다. 렇게 자식은 부모의 아픔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자식이 아프면 도저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더 아프다. 타까움이나 연민, 걱정 같은 말로는 도무지 표현이 안 되는 마음의 폭풍이 찾아온다. 네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너의 모든 아픔을 짊어지고 싶은 마음. 부모가 아플 때 치는 마음의 파도 이상으로, 자식이 아프면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마음이 수없이 밀리고 부서지고 헤지고 만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와 현진이가 같이 다쳤을 때 덜컹이는 내 마음이 현진이만을 향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는 언제든 부모님의 아픔이나 헤어짐을 마주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두렵고 슬프지만 부모님은 아플 것이고 그 끝은 이별이란 것을 알고 있으며, 바람이 있다면 그것이 아주아주 먼 미래가 되면 좋겠다는 정도일 뿐. 자식은 다르다. 나는 절대로 내 아이들과의 이별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나도 모르게 내 아이들이 다치거나 잘못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기라도 하면, 그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빠져나오려 진저리를 친다. 가끔 아이들이 다치거나 잘못되는 악몽을 꿀 때가 있는데, 어떻게든 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 눈을 번쩍 뜨고는 다시 그 꿈으로 돌갈까 잠이 들기가 두려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자식을 향한 감당하기 힘든 이런 마음은 나에겐 사랑이라는 단어로도 포용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러니 그 순간 엄마를 뒤로 한 채, 상상 속에서도 다쳐선 안 되는 현진이를 보며 내가 더 아픈 것처럼 어쩔 줄 몰라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가 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부모의 마음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인지. 크고 작게 수도 없이 다치며 자 나를 키워온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벌이 다녀간 잠깐의 그 순간, 나도 같이 아팠던 그 순간, 나는 현진이를 바라보며 엄마가 나를 키워오는 동안 수도 없이 해왔을 이 말을 끝없이 되뇌었다.

'나의 아가야, 아프지 말거라. 다치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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