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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Sep 16. 2022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나의 아들에게

더 바랄 것도 없어, 그저 너니까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유진이는  3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꽤나 자주 앓고 있다. 유행에 어찌나 민감한 몸인지 감기가 유행하면 감기를, 장염이 유행하면 장염을 꼭 앓고야 만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변비도 더 심해졌다. 낯선 곳에서의 배변활동에 예민하다 보니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서도 참 참다 아주 힘들게 대변을 본다. 유진이가 응가를 하는 며칠에 한 번씩은 한두 시간 동안 전쟁이 따로 없다.


하필 그 전쟁이 오늘 발발했다. 오늘은 현진이가 원하던 대형 키즈카페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이삼십 분에 한 번 꼴로 변의가 오고 그러면 땀을 뻘뻘 흘리며 기어코 똥꼬를 닫아 참아내는 유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를 가는 건 무리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응가 전쟁을 기다리다간 현진이도 키즈카페를 못 가겠다 싶어, 남편이 현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고 유진이와 나는 집에 남아 전쟁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유진이는 현진이가 떠나고 난 뒤에도 한참을 고생하다 점심시간 훌쩍 지나고 나서야 성공을 했다. 현진이가 이미 나게 한바탕 뛰어놀고 점심으로 치즈피자를 아주 많이 먹어서 놀랐다는 카톡을 남편이 보내왔을 때였다. 응가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배가 살살 아파도 참고 또 참고, 나오려는 걸 막고 또 막으며 몇 시간씩 힘을 들이고 나서야 성공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유진이를 키우며 처음 알았다.




현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건강하고 쉽게 배변활동을 잘하는 아이다. 쉬기저귀는 진작에 뗐고 네 살이 되면 응가도 변기에 하겠다고 하더니, 진짜로 네 살이 되던 1월 1일에 변기에 응가를 했다. 기저귀 떼기는 원래 그렇게 쉬운 줄 알았다. 사실 대부분의 방면에서 현진이는 쉬웠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각종 유행하는 질병을 피해 가며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태어나자마자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나의 젖가슴을 마치 배운 것처럼 힘차게 빨아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아이였다. 양이 하도 많아 감당이 안 될 것 같던 모유를 숨도 안 쉬고 꿀떡꿀떡 받아먹어 100일 만에 6킬로그램을 찍은 슈퍼 우량아이기도 했다.


젖이 콸콸 쏟아지면 아기가 먹기 힘들어 고개를 돌려 거부한다는 것도, 음식을 먹이면 아주 오랫동안 입에 물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감기에 걸리면 심하게는 한 달 가까이 온전한 회복이 안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유진이를 키우며 처음 안 사실이다. 유진이를 키우며 수도 없이 되뇌는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 '밥만 잘 먹어도 소원이 없겠다', '응가만 수월해도 더 바랄 게 없다' 같은 말들이 현진이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현진이는 잘 아프지도 않고, 밥을 아주 잘 먹고, 매일 바나나 똥을 쉽게 잘 눈다.


그런데, 나는 더 바랄 것 없이 건강한 현진이를 두고 다른 것들을 자꾸 바란다. 몸이 아프지 않으니 이번엔 마음이 더 단단하길 바라고, 밥을 잘 먹으니 비만이 되지 않게 운동 꾸준히 하면 좋겠단 마음이 들고, 수월한 배변활동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수월하면 좋을듯한 일을 매의 눈으로 살핀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기만 하면 된다고 해놓고.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하게 바라는 일들을 아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아이를 앞에 두고 나는  자꾸 바라는 것들만 많아지는.


상상해보았다. 현진이가 나에게 '요리를 좀 더 잘하는 엄마이면 좋겠어', '힘이 센 엄마면 좋겠어', '잔소리를 안 하는 엄마라면 좋겠어' 같은 바람을 끊임없이 말하는 모습을. 현진이 단 한 번도 나에게 내가 아닌 엄마의 모습을 요구하거나 바란 적이 없이 때문에, 상상으로만 겨우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상상만으로도 슬퍼진다. 나니까, 나여서 좋은 게 아니라는 마음에 울적해진다. 현진이도 때때로 그랬을까. 마의 걱정 섞인 한숨에, 잔소리에, 불만인 듯 한 눈빛에, 현진이도 때때로 울적하고 작아졌을까.




현진이는 키즈카페를 가기 전 아주 쉽게 바나나 똥을 누고 갔고, 키즈카페에서는 피자를 반판도 넘게 먹어 남편은 배가 좀 고팠다고 한다. 늘 그랬듯 오늘 밤에도 불을 끄고 누우면 내 손을 잡은 채 십분 안에 잠이 들 것이다. 현진이는 더 바랄 것 없이 잘 자라주고 있. 모자란 것은 그저 나다. 굳이 빈틈을 찾아내려 애쓰는 나다. 너니까 너라서 너의 모든 것을 온전히 사랑한다 표현해주지 못하는 나다. 그럼에도 더 나은 엄마를 바라지 않아 주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고맙고도 미안하다.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잘 자라온 현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아들의 똥까지도 나는 넘칠만큼 자랑스럽고 또한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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