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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Aug 25. 2022

마음을 함부로 열면 안 되겠습니다

저는 학부모이니까요

현진이의 일기




엄마의 일기


mbti 하나면 사람을 대충은 판단할 수 있다는데, 나는 세 번의 검사에서 한결같이 똑같은 mbti가 나왔음에도 나를 잘 모르겠다. 세 번 다 e가 나오면 확신의 외향성으로 봐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정말 확신할 수 있는 외향형 인간이라고? 외향형 인간이 이토록 관계에 대해 소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아무래도 내 성향에 대한 비 확실성은 '엄마'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내 성향을 돌이켜보자면, 첫 만남은 극도로 긴장하고 꽤나 경계하곤 하지만 '내가 널 좋아하나 봐'라는 생각이 반짝 지나가자마자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곤 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고,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는 일을 즐거워했다. 이쯤 되면 외향형 인간이라 해도 무방하겠지만, 이상하게 엄마가 되고 나선 마음을 활짝 여는 일이 아무래도 힘들다.




오늘은 현진이 친구와 키즈카페를 다녀왔다. 현진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고 그의 엄마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엄마(?)'라, 키즈카페에 가자는 제안에 기쁘게 응한 것이다. 아이 둘은 시원한 키즈카페에서 땀을 뻘뻘 흘려대며 신나게 놀았고, 엄마 둘은 커피를 마시며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즐거웠다. 역시 내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다음의 만남은 내가 먼저 제안했고, 우리는 조만간 다시 만나 실컷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현진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라 칭할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 엄마는 '친구의 엄마'이지 '친구'라 칭하기가 어쩐지 어렵다. 오늘도 문을 나서며 남편에게 '현진이 친구와 그의 엄마'를 만나러 다녀오겠다 말했다. 나는 분명 그 엄마를 좋아하지만 아이들을 똑 떼어버린 채 '우리는 친구'라며 우리끼리만의 관계를 짓는 일은 매우 매우 어렵다. 물론 현진이가 아주 아가 때부터 알고 지냈던 한두 명의 엄마와는 진짜로 친구가 되어 어른끼리만 좋아하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 친구를 통해 친해진 다른 친구는 그냥 친구였지 친구의 친구는 아니었는데, 아이를 통해 맺어진 관계는 친구가 아닌 친구의 엄마여야 하다니.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누군가 그랬다. 자식 친구의 엄마에게 너무 쉽게 마음 주지 말라고. 엄마들끼리 세상 둘도 없이 친한 사이다가도 애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내 애를 위해 상대 엄마와 핏대 높여 싸워야 할 수도 있는 것이 학부모끼리의 관계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이 앞서서, 내 자식이 혹여라도 힘들어할 때 다신 안 봐도 될 것처럼 강하게 항의하고 큰소리 내지 못한다면... 내가 아는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지인의 조언이 가슴에 콕 박혔다. 나는 과연 지인의 말처럼 애초부터 언제든 등 돌릴 수 있을 만큼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학부모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그래서 내 마음이 내 자식의 관계를 앞서 나가면 안 되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헷갈리기 시작한 확신의 E를 버리고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친절하고도 어려운 사람이 되는 연습이라도 해야 될 것 같다.




두 아이를 모두 유치원에 보낸 올해부터 만나기 시작한 현진이 유치원 친구의 엄마들은 하나같이 좋았다. 그간 유진이를 가정 보육하느라 친해져 볼 시도조차 못했던 것이 아쉬울 만큼 좋은 사람들이다. 몇 번 만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친구라 부르고 싶은,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쉽게 가슴을 활짝 열어 그들을 내 친구로 품기가 아주 많이 조심스럽다.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서로 멀어지게 되면,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들을 과거에 알던 내 아들 친구의 엄마들로 기억해야 할까 봐. 상대 엄마는 나를 '친구의 엄마'로 생각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나 혼자 마냥 좋다며 헐벗은 내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까 봐. 소심하고 좀스러운 마음 같지만, 어쩔 수가 없다.


현진이는 내년이면 초등학교 1학년이 된다. 학교를 가면 학부모로서 맺는 관계는 더 어려워진다고들 한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엄마들끼리의 관계에 대한 책이 나오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까. 당장 나도 현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그 책을 사봐야 할 판이다. 엄마가 되어 맺는 관계는 '우리는 자식들과는 상관없이 서로 좋아하는 관계'라는 굳건한 믿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본심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될 것 같다. 나 같은 부류의 인간에게 특히 학부모가 되는 일은,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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