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 ㉓산티아고 순례길 → ㉔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에리세이아, 신트라 → 라고스 → 파고 → 세비야, 론다 → ㉕ 모로코 탕헤르 → 테투안 → 쉐프샤우엔 → 페즈 → 쉐프샤우엔 → ㉖ 마라케시 → ㉗터키 안탈리아 → ㉘ 아제르바이잔 바쿠 → ㉙ 조지아 트빌리시 → ㉚ 아르메니아 예레반→ ㉛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㉜인도 델리 → 자이푸르 → ㉝ 조드푸르 → 자이푸르(푸시카르)
2003년 2월에 방문했던 인도를 2017년 7월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① 델리 → ② 자이푸르 → ③ 우다이푸르 → ④ 조드푸르 → ⑤ 자이푸르, ⑥ 푸시카르. ⑦ 자이푸르)
* 여행지에서 휴대폰을 분실하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상황이라, 쓸만한 사진이 없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40일(2017.7.28.) 인도 일곱째날 in 우다이푸르 → 조드푸르
조드푸르로 이동하는 버스는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한다. 버스 정거장에 6시 50분에 도착했다. 인도에서는 버스가 정시에 출발하지 않고, 지연되는 일이 많다. 혹시나 몰라서,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조드푸르행임을 알리고 있었더니, 깜빡 졸고 있던 나를 깨워서 버스에 타라고 알려준다. 7시 50분이 되어서, 버스가 출발했다. 그리고 버스에 타자마자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12시 정도가 되어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간단히 식사를 했다. 돈은 있지만, 쎈 향신료향 때문에 먹기에는 힘든 음식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절로 살이 빠지고 있다. 최고의 다이어트 비법은 인도에 오는 거 같다. 인도는 버스타고 이동하기에 썩 좋은 나라는 아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것도 있고, 그 안 좋은 도로를 온갖 동물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그렇게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 조드푸르에 도착했다. 릭샤를 잡아타고, 숙소까지 데려달라고 했다. 400루피까지 불렀던 비용은 몇 번의 흥정 끝에 150루피로 합의가 되었다.
숙소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LG게스트하우스'라는 친숙한 이름이었다. 온통 파란색이었던 숙소는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뷰가 좋았다. 숙소 뒤로는 무엇인가 거대한 성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절벽 위에 세운 성으로 제법 유명한 메헤랑가르성이었다. 숙소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보였다. 날씨만 좋다면 이렇게 옥상 레스토랑에서 푸른색 도시를 감상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지만, 지금 인도는 우기였다.
출처: LG게스트하우스 부킹닷컴 홈페이지
내가 찍은 사진은 이렇다. 확실히 날씨가 중요하다. 푸른색 도시가 매우 칙칙했다.
4시부터 갑자기 큰비가 쏟아졌다. 7일째 연속해서 내리는 큰비... 비를 피해 숙소에 들어왔다가, 내리는 비를 그냥 맞아도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젖어도 되는 어차피 빨아야 할 옷을 입은 채로 숙소 옥상에 올라와서 비를 맞았다. 과연 상쾌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내려다보니, 각 건물 옥상에 사람들이 잔뜩 올라와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목욕을 하고 있다.
한참 비가 내릴 때, 건물의 옥상들에 사람들이 올라와서 물놀이처럼 옷입은 채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촬영 못한 것이 아쉽다.
나랑 눈이 마주치차,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한다. 방수 카메라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해맑게 웃으며 비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니... 비가 조금 잠잠해지고 나서, G패드를 들고 와서 사진을 찍어 봤지만, 그 명랑한 분위기를 닮을 수는 없었다.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며, 계속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피곤이 몰려 와서 그냥 침대에 쓰러졌다. 조드푸르의 거리는 내일 걷기로...
사십춘기 방랑기 D+141일(2017.7.29.) 인도 여덟째날 in 조드푸르
8일째 비가 계속되고 있다. 내일은 조드푸르를 떠나서 자이푸르로 가야하는데, 이러다가는 계속 숙소에서만 있어야할 상황이다. 아쉬움에 어제 비를 맞았을 때 입었던 여전히 젖은 옷을 꺼내 입고 숙소를 나섰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한국인들이 주된 고객인 거 같다. 조드푸르가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도시라는 반증이겠지. 숙소 주인의 아들은 자신을 김수현이라고 소개하면서, 공유와 임수정이 자기 친구라고 이야기한다. "김종욱 찾기"라는 영화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중에서 “김종욱 찾기”가 있다. 그 배경이 되는 곳이 조드푸르라고 한다. 조드푸르는 불루시티로 불린다. 릭샤를 타고 시내로 접어드니, 건물들의 벽 중에서 파란색들이 많이 눈에 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에 생각하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모로코의 쉐프샤우엔... 그곳을 닮았다. 한여름밤의 꿈에서 깨어난지도 제법되었구나.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이 친구는 알까.. 김수현이 이제 '백현우'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7년 전에도 유명했던 김수현은 지금도 유명하구나.
비오는데, 어디가냐고 묻길래, 임수정을 찾으러 간다고 이야기했다.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우다이푸르를 떠나와서 조드푸르에 왔는데, 그냥 숙소에만 있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일단 밖으로 나왔으나 잠시 주춤해졌던 것처럼 보였던 비는 곧 폭우로 변했다. 인도 거리에는 쓰레기가 많다. 이 쓰레기들이 배수구를 빈번하게 막다보니, 물이 빠지지 못해서 금방 범람하여, 발목까지 잠기는 흙탕물의 흐름이 된다. 길가다가 봤던 그 수많은 동물들의 배설물들과 쓰레기들이 뒤섞인 물이 금새 거리에 차오른다. 그래서 그렇게 딱봐도 드러운 흙탕물에 종아리까지 잠기게 된다. 이건 완전 피부병각인데.... 잽싸게 높은 곳으로 피신해본다.
출처: 인도의 폭우 기사 사진
다행히 퍼붓던 비가 잠잠해지고, 거리의 물은 빠져서 걸을 만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블루시티라고 불리는 조드푸르의 빛깔이 우중충했다. 물에 젖은 파란색. 그러다보니 거리를 걷는 내내 쉐프샤우엔이 떠올랐다. 골목과 건물들의 모양, 높은 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풍경 등이 쉐프샤우엔과 비슷했다. 그러나 쉐프샤우엔이 더 친절하고, 더 예쁘고, 전체적인 느낌이 더 좋았다. 조드푸르에 와서 쉐프샤우엔을 떠올리는 어리석음이라니.
잔뜩 비가 온 뒤의 조드푸르의 푸른색은 우울함에 가깝다.
한참을 거리를 헤매다가 숙소로 돌아오니, 온몸이 말도 안 되게 젖어버렸다.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나니, 제법 피곤이 몰려온다. 침대에 누워서 이제 밖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렇게 밋밋하게 맥주를 마시며, 블루시티인 조드푸르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냈다. 안주는 상사병과 외로움. 조드푸르의 야경은 예쁘다. 검색을 해보니, 날씨가 좋은 날..해질 때의 광경은 더 좋았겠다.
출처: LG게스트하우스 부킹닷컴 홈페이지
사십춘기 방랑기 D+142일(2017.7.30.) 인도 아홉째날 in 조드푸르 →자이푸르
아침 일찍 조드푸르 기차 터미널로 향했다. 인도로 넘어온지 아홉째날, 긴 거리를 이동하는 기차를 처음 타는 셈이다. 여행사를 통해서 미리 기차표를 끊어놓기는 했지만, 어디서 어떠한 기차를 타야되는지는 막막한 상황. 그래도 기차예매한 프린트에 9시 30분에 출발해서, 15시 30분에 도착이라고 표시는 되어 있었다. 과연 정시에 출발해서 정시에 도착할지는 의문이었지만....
기차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인줄만 알았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승객들도 많았지만, 그와 거의 같은 수의 릭샤 호객꾼, 그리고 엄청난 수의 구걸하는 사람들... 이들이 엉켜있는 것이었다. 역 앞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내게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절반은 호객꾼, 그리고 절반은 구걸하는 사람들.. 호객꾼을 거절하는 것은 익숙해졌지만, 구걸하는 사람들의 무리는 언제나 곤혹스럽다.
“박시시, 박시시!”
박시시를 외치며 다가온 그녀는 핏기없는 입술과 말할 때마다 드러나는 검은 잇몸 그리고 누런니, 밧줄처럼 억센 머릿털과 더러운 옷은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혐오감의 크기만큼 또한 불쌍하게 보였다.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껌뻑이는 눈이 아니었다면 무생물이라고 여겼을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그 여인은 연신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가 펼치며 박시시를 외쳤다. 인도말을 전혀 모르지만, 그 여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것이 그렇듯이 망설이는 쪽은 더 강력히 요구하는 쪽으로 끌려오게 되는 법이다. 비참한 몰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큰 눈에는 내가 도움을 주리라는 확신이 담겨있는 듯 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당당함이었다. 빚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그런 종류의 당당함.
결국 이번에도 지갑에서 10루피 지폐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박시시는 원래 인도에서 신의 은총을 비는 축복의 말이었지만, 구걸하는 이들이 온통 사용하는 통에 이제는 짜증과 동격이 되었다. 이렇게 한 명을 적선하고 나자, 나는 박시시를 요청하는 이들에게 포위가 되었다.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고, 그렇게 돕자니 너무 많아서 답답해지는 상황의 무한 반복. 인도를 좋아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짜증이 난다. 이 나라에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대책이랍시고 기껏 내놓은 게 박시시인 듯한 느낌. 외국인 관광객을 이만큼 모아줬으니까 나머지 부분은 각자가 알아서 뜯어내라는.... 15년 전이랑 달라진 것이 없다.
일단은 승강장으로 들어서자는 생각에 서둘러 검색대를 지나서 역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역관계자들을 통해서 탑승하는 플랫폼이 3번임을 알 수 있었다. 열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20분이 남은 상황에 기차 안에서 먹을 생각에 역내에 있는 음식점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또 박시시를 하는 이들이 나를 포위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앞에서 배고프다고 하는 사람들의 무리... 그걸 외면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간단한 빵을 하나 사서 건내주고 나니,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 끝이 없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연민을 강요당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왜그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음식점 주인의 표정. 나도 짜증이 났다. 여행객이 봉이냐..
박시시를 거절했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거절이 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나름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강하게 거절을 하고 나면, 몰려드는 사람들의 수도 줄어든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안돼... 이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강하게 강하게 고개를 흔들며, 박시시를 거절하였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불편했다. 이 불편한 마음...
음식이 나와서 기차로 향했다. 나름 연착이 되어도 각오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역차는 이미 도착해서, 정시 출발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내가 예매한 표가 침대칸이었다. 침대칸은 의자 상태였다가 침대로 변하게 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구조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물론 인도의 기차가 훨씬 더 더럽기는 했다. 물어물어서 침대칸의 내 자리에 탑승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이렇게 6시간만 이동하면 되는 셈이고, 그리고 이렇게 기차에 탔으니, 구걸하는 사람들로부터도 해방이 되겠구나 하는 찰라... 구걸하는 사람들이 기차 안에 들어와서 박시시를 청했다. 그리고 열차가 출발했는데도 열차 안에 있었다. 그렇게 기차를 함께 타고 이동을 하다가,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다른 기차로 올라타서 구걸하는 행위가 반복되는 것이다. 창밖을 보니... 기차역 근처로 남루한 움막을 지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저들이 이렇게 구걸하는 이들이리라.
인도의 기차가 예전과는 달리 정시에 출발했다. 기차 내부의 양상은 그래도 여전했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었다. 어떤이의 박시시에는 응했고, 어떤이의 박시시에는 외면했다. 계속 불편해지는 마음상태... 그러다가 위악을 떠올렸다. 나는 위악을 떨 필요가 있구나. 위악은 위선과 대척점에 있는 말이다. 위선이 착하지 않은 사람이 착한 척을 하는 것을 뜻한다면, 위악은 악하지 않은 사람이 악한 척을 하는 것을 뜻한다.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인도에 여행을 오면, 불쌍한 사람들이 많아서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이럴 때는 위악이 필요하다. 나는 악하지 않지만, 일부러 악한 척을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 때, 위악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어쩌면, 인도는 위악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기차의 진동은 잠을 청하기에 좋다. 시베리아 열차를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점심 무렵이 되었다. 창밖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9일 연속 비로구나. 인도는 우기에 오면 안된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제법 바뀌었다. 인도의 열차는 정차하는 곳이 많고, 그만큼 탑승 인원의 변화가 빈번하다. 돌아다니며, 짜이를 파는 사람이 있어서 짜이를 한잔 마시고, 다시 잠을 청했다. 2시에 잠을 깨서는 이제 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과연 정시에 도착할 것인가. 인터넷은 안되었지만, GPS가 작동해서 대략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점점 자이푸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15시 30분에 정말 자이푸르에 도착했다. 아... 놀랍다. 인도의 기차가 이제는 거의 정시에 맞춰서 운영하게 되었구나. 분명 버스보다는 기차가 훨씬 편한 이동수단인 셈이다.
자이푸르는 한번 왔었기에, 이제 익숙했다. 전에 머물렀던 '자이'라는 콧수염이 멋진 동생이 있는 숙소로 릭샤를 타고 이동했다. 기차만 탔을 뿐인데, 피곤하다. 그래서 숙소에 도착하여, 그대로 휴식에 들어갔다.
위악... 나는 오늘부터 위악을 떨어보겠다.
사십춘기 방랑기 D+143일(2017.7.31.) 인도 열째날 in 푸시카르, 자이푸르
아침에 되어 살짝 고민을 했다. 자이푸르에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려서 자이푸르 시내를 거의 둘러본 적이 없었기에 자이푸르를 둘러볼 것인가, 아니면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있는 푸시카르를 둘러볼 것인가.. 이치적으로 따졌을 때는 자이푸르를 둘러보는 것이 맞는데, 푸시카르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아침 9시에 푸시카르행 버스에 탑승했다. 15년 전에 잔뜩 기대를 안고 방문했다가 사막야영 프로그램으로 사기를 당한 기억만 있는 푸시카르에 대한 기억을 새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푸시카르까지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버스기사는 마치 버스를 오토바이처럼 몰면서 칼치기를 했고, 이동하는 내내 말도 안되는 크기로 음악을 틀어서 정신을 쏙 빼놓았다. 푸시카르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 자이푸르로 돌아가는 막차가 4시 20분에 있었기 때문에, 딱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푸시카르는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그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푸시카르는 호수 주위를 둘러싸서 형성된 마을로 풍경이 아름답지만, 그와 함께 환각제들이 넘쳐나는 약간의 몽롱한 느낌이드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푸시카르 호수쪽으로 걸어가며, 15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마을이 바뀐 것인지, 내 기억이 희미해진 것인지, 유사한 부분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출처: 푸시카르 정경 네이버 검색
그때였다. 한 오토바이가 내 옆을 지나다가 멈춰섰다. 그러면서 말을 거는데... 웃는 모습이 해맑아보였다. 일반적인 호객행위였으면 응하지 않았을 터인데, 조금 느낌이 달랐다. 지금 연료가 없는데, 연류만 넣어주면, 4시까지 드라이브를 하면서 안내해주겠다는 제안에 동의했다. 그건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오토바이 뒤에 타서 30분 정도를 탔다. 계속 푸시카르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푸시카르 외곽을 한바퀴 도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서로 자리를 바꿔서 내가 오토바이를 몰았다. 단 그 때도 뒤에 있는 그가 방향을 이끌기는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을 하다보니... 푸시카르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낯선 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와 자리를 바꿔서 오토바이를 운전했고, 뜬금없이 어떤 집앞에서 멈춰섰다.
무슨일이야? 여기 내 친구네 집인데, 한번 들어가볼래? 왜 그래야 하는데? 그냥, 가는 길이니까 잠깐 들리자는 거야, 따라 들어와봐. 나는 시간이 없는데. 아냐, 충분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어. 빨리 들어와.
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일단 집안에 사람들(어머니, 할머니, 딸 등으로 추정)이 환대를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경계심을 놓았다. 그런데 5분 후, 남자 한명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10분 후, 또 다른 남자 한명이 또 왔다. 그 또한 친구라고 했다. 좁은 방안에 나를 포함하여 남자 셋이 들어와 있고, 한명이 문밖에 있는 셈이었다. 느낌이 묘해졌다. 이게 뭐하자는 거지, 그래도 처음에 봤던 웃음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남자 셋 정도라면, 혹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지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왼쪽 청년의 사람 좋은 미소에 넘어갔었다. 이 둘은 자신의 집에서 계속 음식을 권했다.
그런데, 문밖에 있는 사람들끼리 눈짓들이 오고간다. 그리고 나를 이 집에 데리고 왔던 녀석이 계속 마실 것을 먹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싫다고 해도 계속 권한다. 라씨 먹을래, 짜이 먹을래? 꼭 마셔야 돼? 이건 선물이야. 괜찮아, 안 마실래. 그래도 내 친구가 준비해준다는데, 좀 마셔봐. 괜찮은데. 짜이 줄게, 짜이 마셔.
그때 갑자기 딸로 보이는 친구가 카레와 짜파티(빵과 비슷한 거)를 들고 나왔다. 일단 주는 것이니까 받기는 했으나,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나를 이곳에 데려온 오토바이 친구가 계속해서 먹기를 권한다. 그래서 같이 먹자고 했더니, 이건 너를 위한 것이니, 자기는 먹지 않겠다고 한다. 아...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짜파티의 한쪽 귀퉁이를 뜯어서 입에다 넣은 뒤, 두 번째 조각을 집는 척하며 접시를 떨어뜨렸고, 사람들이 놀랄 때, 입안에 넣은 짜파티도 사람들이 모르게 뱉어 버렸다.
나 시간이 없어, 이제 가고 싶어. 걱정하지마, 가까운 거리야. 시간은 충분해. 나는 푸시카르 호수가 보고 싶은 것이지, 이 집이 궁금한 게 아니야. 왜 여기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어. 알았어. 곧 데려다 줄게. 일단 짜이부터 마시고 이야기하자. 그걸 왜 마셔야 하는데. 내 친구가 준비했으니까. 그러면 네가 먹으면 되겠네. 아냐, 너를 위한 선물이야.
대화의 귀결이 계속 무엇인가를 먹고 가라는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방향을 몰라서 일단은 좌측을 향했다. 2명이 뒤따라오며, 어디를 가냐고 물어온다. 그들을 무시하고,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푸시카르 방향을 물어봤더니, 반대쪽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그 집앞을 지나쳐야 하는 상황.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온 친구가 미안하다고 데려다줄테니 타라고 해서 다시 오토바이에 탔더니, 그가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서는 5분만 쉬면서, 차를 마시고 가자고 한다. 아... 차를 못마셔서 죽은 귀신이 들었나.
순간 화가 나서, 오토바이에서 그대로 내리며, 우리말로 한참을 퍼부어주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쭈욱 걷기 시작했다. 오토바이가 한참을 따라오면서 말을 걸었지만, 나 또한 한마디 말만을 반복했다. 나 혼자 가겠다. 나 혼자 가겠다. 한참을 걸으니, 마을 초입이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행인에게 버스를 타면 푸시카르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버스를 탑승했는데, 푸시카르 터미널까지 40분이나 걸렸다. 아, 오토바이로 제법 멀리까지 온 거였다. 그렇게 푸시카르에 도착하니 4시였다.
4시 20분 버스를 타기 위해 릭샤를 타고 가는 길. 스릴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하니, 4시 10분... 자이푸르행 버스 출발이 10분 남은 셈이 되었다. 자이푸르행 버스행 올라타자, 순간 긴장이 풀려서 잠이 들었다. 돌아올 때도 4시간이 걸렸지만, 푹 잠들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한 느낌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자이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말했더니, 인도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집은 너를 속이지 않으니, 편하게 쉬도록 해. 그렇지, 그래서 나도 여기를 다시 왔잖아. 잘 왔어. 너는 우리 가족이야. 푸시카르에서 주는 음식을 먹지 않은 게 잘한 거겠지? 당연하지. 너 그거 먹었으면, 오늘 자이푸르로 못 돌아왔어. 그랬겠지? 그럼그럼. 바라나시와 푸시카르에서는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안된다. 왜? 이 두 도시는 환각제가 너무 유명한데, 음식에도 이런 환각제를 타서 사람들에게 권해서 먹게 한 후, 정신을 잃으면 돈을 뺐든가, 해꼬지를 하는 경우가 많아.
15년 만에 찾아온 푸시카르는 여전히 내게 친절하지 않은 셈이다. 오늘 정말 많이 위험할 뻔했다. 어제 위악을 떨겠다고 하고서는 금새 잊은 것이었나. 사람을 그만 믿자. 조금은 더 긴장을 하자. 그럴 필요가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