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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08. 2024

# 35. 15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 1주차

아, 여전하구나. 정신없는 무질서에 적응을 해보자.  

20th 국가: 인도

23th 여정: 서인도 '델리, 자이푸르, 우다이푸르'(7.22-7.27)


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 ㉓산티아고 순례길 → ㉔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에리세이아, 신트라 → 라고스 → 파고 → 세비야, 론다 → ㉕ 모로코 탕헤르 → 테투안 → 쉐프샤우엔 → 페즈 → 쉐프샤우엔 → ㉖ 마라케시 → ㉗터키 안탈리아 → ㉘ 아제르바이잔 바쿠 → ㉙ 조지아 트빌리시 → ㉚ 아르메니아 예레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인도 델리  → 자이푸르

2003년 2월에 방문했던 인도를 2017년 7월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① 델리 → ② 자이푸르 → ③ 우다이푸르


* 여행지에서 휴대폰을 분실하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상황이라, 쓸만한 사진이 없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34일(2017.7.22.) 인도 첫째날 in 델리 자이푸르


델리 공항에 새벽 3시경에 도착했다. 출국 수속을 밟기 위해 대기하면서, 사뭇 달라진 공항의 구조에 놀랐다. 15년 전에 왔을 때 델리 공항은 그야말로 무법 천지에 가까웠는데, 이번에 보게 된 공항은 인도라는 생각을 잊을만큼, 매우 체계적이고 세련되게 되어 있었다. 나는 E-visa가 아니라, 출국 전에 싱글비자를 발급받았던 만큼, 입국 수속 자체가 빨랐다. 그래서 3시 30분 경에는 수속을 끝내고, 환전까지 끝낼 수 있었다. 50유로를 환전했더니, 3,500루피를 주었다. 대략 1루피당 20원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면 될 듯 했다. 화폐 개혁을 얼마 전에 했다는데, 모든 지폐에 간디가 새겨져있는 것은 여전하다. 15년 전과 비교하여 물가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15년 전의 공항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너무 세련되어서 어색했다.


델리 공항에서 해가 뜨기 전에, 택시를 잡아타면, 거의 120퍼센트의 확률로 어디 사무소로 끌려가서, 이상한 물품들을 강매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15년 전에도 그랬었고, 지금도 이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날이 밝은 다음에 이동할 생각이었다. 잠을 자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공항을 둘러볼 생각으로, 이것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거기서 메트로 표시를 보았다. 우와, 공항철도가 있는 것이다. 델리 공항에 메트로가 생겼다니.... 15년 전의 그 아비규환이던 장면과는 너무 달라졌다. 시간을 보니 4시 40분인가부터 첫 운행을 했다. 그래서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메트로를 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메트로를 향하여 가는 길... 역시나 많은 기사들이 에워싸서, 말을 건낸다.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고 쿨하게 직진. 매표소 근처에 도착하고, 마음을 놓는 찰라, 그런데 여기는 인도였음을...


메트로 직원인 듯 보여서, 말을 섞었던 사람이 메트로 직원이 아니었다. 그에게 파하르간지로 간다고 물었더니, 환승이 복잡하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럴 바에는 택시가 더 싸다고 말한다. 여차하면 철도를 타면 되니, 가격을 물었다. 50루피에 해준다는 말에, 그 사람을 따라 갔더니, 어느 일반 차량에 태운다. 트렁크를 열고 짐을 넣으라는 말에 과거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트렁크에 넣은 짐을 못내리고 계속 끌려다녔었다. 그의 말을 무시하고, 짐을 든 채 뒷자석에 탔더니, 잠시 후 갑자기 앞좌석에 다른 사람 한명이 더 탔다. 누구냐 라고 물었더니, 차 주인이라고 한다. 내가 싫다고, 왜 같이 타냐라고 했더니, 운전사가 영어를 못한단다. 아, 어디론가 데려가서 강매를 하겠구나. 그냥 뒷문을 열고 내렸다. 그랬더니, 계속 쫓아오면서 말을 건다. 대꾸하지 않고, 메트로로 돌아 와서 그냥 종점행 티켓을 끊었다. 만약 방금 전 택시를 탔다면, 어느 상점인가로 가서, 무엇인가를 강매당하고 있었겠지. 아, 인도 여전하네. 반가웠다.


그렇지만 공항철도는 너무 인도스럽지 않아서 어색했다. 내 기억 속의 인도와 너무 달랐다. 내가 품고 있는 인도에 대한 기억은 아비규환으로 정신없는 도로의 모습인데, 공항철도는 너무 세련되었었다.


델리 역을 향하는 '공항 메트로'도 '델리 공항' 못지 않게 세련되어서 놀랍다. 정녕.. 이곳이 인도란 말인가.


 그러나 인도는 내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델리 시티 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 눈앞에는 전형적인 인도의 모습이 펼쳐졌다. 엄청난 소음과 자동차와 릭샤가 뒤엉켜서 정신없고, 온갖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 그리고 남루한 모습의 사람들... 아 이곳이 인도다. 반갑구나. 역시나 역에서 나온 나를 릭샤꾼들이 둘러싼다. 뭐, 이런 거야 아무렇지도 않으니, 다시 쿨하게 이어폰을 끼고, 숙소 체크인을 하기 전까지 내일 바라나시로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변수가 연달아 발생했다.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26일까지 바라나시행 모든 기차표가 매진 상태였다. 15년 전 바라나시가 참 인상적이어서, 다시 가고 싶었는데 첫날부터 계획이 틀어지게 되었다. 바나라시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편이 없어진 상황에서, 인터넷으로라도 검색을 하고 싶었지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출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동행한 믿음이가 찍은 델리 사진
정신 없는 델리역 앞의 소란스러움. 바라나시를 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서본다.
인도 도착 첫날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바라나시행 기차표가 없었다.


릭샤 하나를 100루피(2천원)에 전세 내고, 사설 여행사 몇 곳을 둘러보며, 바라나시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였는데, 말도 안되게 비싼 금액을 제시해서, 전부 거절을 했다. 릭샤왈라에게 파하르간지로 가자가 하자, 릭샤왈라는 파하르간지에 어떤 행사가 있어서 출입할 수 없다면, 계속 여행사들로 끌고 간다. 아, 뭔가 트릭이 있구나. 그냥 릭샤에서 내려서, 다른 릭샤를 잡아 타고 델리역으로 돌아 왔다. 시간은 10시였다.


역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서 요기를 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했다. 델리에 있을 수도 없고(조금만 더 신중히 생각했으면, 처음 릭샤왈라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파하르간지로 가서 숙소에 갈 수 있었겠으나, 첫날이라 경황이 없었다), 바라나시에 갈 수도 없다면, 이 기회에 그냥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가자. 그러다가 15년 전에 서인도를 여행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 서인도로 가자. 인터넷이 안되었지만, 다행히 구글맵으로 흐릿하게 도시명이 보였다. 델리 서쪽 ‘자이푸르’라는 곳이 보였다. 그래 여기로 가자.


일정을 이렇게 도착 당일에 수정하게 되었다. 식당 주인에게 ‘자이푸르’라고 반복했더니, 손으로 버스들이 잔뜩 몰려있는 곳을 알려준다. 그곳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자이푸르’라고 말했더니, 여기 말고, 로컬버스 정거장을 가야된다고, 릭샤를 잡아준다. 릭샤 이동 거리는 제법 되었다. 150루피(3000원)을 주고 40분 정도 릭샤를 타니, 알 수 없는 곳에 내려준다. 거기에는 버스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사람들에게 ‘자이푸르’라고 말했더니, 마침 지나가는 버스를 타라고 했다.

시내 이동시에는 릭샤를 적당히 흥정해서 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그래서 그 버스에 탔는데... 아, 정말... 묘한 분위기의 버스였다. 버스의 왼쪽 편은 침대칸이고, 오른쪽은 일반 좌석같으로 이뤄진 특이한 버스.. 이 버스의 종점이 자이푸르라고 했다. 비용은 250루피(5000원), 차는 매우 더럽고, 정신이 없었지만, 내 스타일에 맞았다. 맨 앞자리를 잡아서 앉은 후에 창밖을 관찰했다. 차안에서 보는 인도는 정말로 무법천지, 아비규환이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반가웠다. 밤새 잠을 거의 못잤기 때문에, 차안에서 꿀잠을 잤다. 차로 6시간 정도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긴시간이었지만,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휴게소같은 곳에도 들렸기 때문에 화장실 문제도 잘 해결할 수 있었다.


온갖 정거장을 전부 거치면서
새벽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는데, 델리 시내를 한참을 헤매다가, 다시 6시간 걸려서 이동하는 중 피곤하다.


자이푸르 도착 1시간 전에는 옆자리에 한 사람이 앉았다. 그와 이야기를 했는데, 나짐이라는 52세 아저씨가 영어를 잘했다. 왜이렇게 잘하나 봤더니, 영어선생님이였다. 나도 선생이었다고 하니, 반가워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아... 이 아저씨 친절하다. 그가 자이푸르의 별명은 핑크시티라고 알려준다. 도시 전체에 붉은빛이 나는 색이 많다는 거였는데, 차안에서 봤을 때는 잘 모르겠다.


인도는 어디를 가든 비슷한 양상이다. 교통 지옥과 여기저기 울리는 경적 소리.


자이푸르에 내리니, 첫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버스 정거장에 내려서 잠시 당황을 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역시 호객꾼들이 나를 둘러싼다. 이때 제일 좋은 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비가 오니, 빨리 숙소를 정할 필요가 있었다. 정거장 근처에 깨끗해 보이는 숙소가 있어서 가격을 물으니, 700루피(14,000원)라고 했다. 흥정할 여력도 없어서, 비용을 지불하고 일단 숙소에 들어왔다. 씻고 자리에 누우니 편안했다. 와이파이가 빵빵하게 터지니, 좋았다. 특이하게 체크인을 한 시간부터 24시간을 머무르게 해줬다. 그래서 내일 오후 4시에 체크아웃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에 든다. 자이푸르에서 2박을 더할 예정이라, 숙소를 찾았더니, 인터넷이 되고 평점이 좋은 2박에 400루피(8,000원)인 숙소가 있어서 내일부터 머무르기로 예약을 했다. 오늘은 인도 입성 첫날이니, 휴식에 들어가자. 아, 인도, 역시나 정신없다. 난이도로 따지면, 모로코와 이집트를 가뿐하게 압살하는구나. 정신없음의 수준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좋다... 잘왔네... 인도^^   이렇게 숙소에 들어와서 인도 첫날을 보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35일(2017.7.23.) 인도 둘째날 in 자이푸르


체크아웃을 오후 3시 30분에 했다. 숙소를 나오는 찰라, 큰 비가 쏟아져 내렸다. 7월의 인도는 우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날씨가 아주 덥든가, 비가 오든가 둘 중의 하나로 무한 반복이 된다. 어제도 비가 왔고, 오늘도 비가 온다. 큰비로 인해, 근처 레스토랑으로 피신해 와서 식사를 하며, 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정말로 무법천지다.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탈거리들과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함께 한데 어울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시비가 없이 그렇게 넘어가지는 것은 봐도봐도 신기하다.


비가 잠시 잠잠해져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지나가는 릭샤왈라와 흥정을 벌인다. 여기 알아? 응. 얼마야? 150루피. 150루피라고? 안탈래, 잘가. 잠깐, 너는 얼마를 원하는데? 몰라. 100루피에 해줄게. 싫어, 잘가. 잠깐. 80루피에 해줄게. 싫어, 잘가. 이건 진짜 안되는데, 70에 해줄게. 싫어. 잘가. 야... 그래서 너는 얼마를 원하는데?  이러한 상황의 무한 반복이다. 나는 여기 가격을 모르니, 일단은 세 번 정도는 이렇게 흥정을 해서, 대략적인 시세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지나가는 릭샤를 잡았다. 여기까지 얼마야? 응. 70루피 줘. 앗, 처음부터 비싸게 부르지 않네. 더 깎아줘. 안돼, 다른 거 타. 그러고서는 곧장 출발하려고 한다. 이 릭샤왈라가 마음에 들어서 멈춰 세웠다. 오케이. 70루피 줄게. 나 여기 숙소로 데려다 줘.


새로운 숙소의 이름은 “The Big Mooch”라고 했다. 체크인을 위해서, 주인을 기다리니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가 나타나서, 머무를 곳을 알려준다. 그가 내 여권을 보더니, 이틀 전에 한국 여자가 여기서 머무렀다가 출발했다면서, 아쉽겠다고 한다. 괜찮다고 하니, 그 여자 예뻤다며, 너와 어울린다고 한다. 아, 이 사람 영업 잘하네.

40세 형과 24세 동생.. 누가 40세인가?

숙소는 4인 1실의 침대하나를 예약했었다. 그런데 인도는 현재 관광시즌이 아니어서, 숙소마다 자리가 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큰 방을 혼자 마음껏 사용하게 되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또 다른 콧수염 기른 남자가 인사를 한다. 한 사람은 아버지고, 한 사람은 아들이었다. 아들이 붙임성이 좋아서, 이것저것 말을 걸어온다. Big Mooch라는 뜻을 아느냐? 모르겠는데, 뭐야? 그건 이렇게 수염 기르는 것을 뜻해. 오호... 나는 지금 이정도 수염이 최선인데... 조금 더 노력해봐. 너도 Big Mooch가 될 수 있어.


주인장의 아들과 제법 친해져서,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는데, 이 친구가 스페인에서 동행했던 ‘로시우’에게 호감을 보인다. 로시우가 27살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연상이 좋다고 한다. 앗... 연상이라고? 그의 나이를 물어보니, 24살이고 한다. 미안... 너 30살 넘은 줄 알았다(40세에서 많이 낮춰 이야기했다). 내 나이를 묻는다. 나는 40살이야. 말도 안돼. 너 내 동생인줄 알았어. ㅋㅋㅋㅋ 야, 나는 인도 방문이 두 번째인데, 15년 전에 방문했을 때도 너보다 나이가 많았어.  


밖에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비가 와서 오늘도 밖에 못나가 보겠네. 너 인도에서 며칠 머무르는데? 3주 계획하고 있어. 자이푸르는? 어제까지 포함해서 3밤 자고 갈거야. 야경은 봤어? 아니. 알았어, 우리가 무료 야간 투어 해줄게. 왜? 비시즌이라 우리도 한가해. 10월부터 2월까지는 숙소 모든 방이 꽉 차서 이렇게 못해. 오늘은 손님이 너 혼자잖아. 그러니까 해줄 수 있어. 오, 고마워. 우리집에 온 손님은 우리 가족이야. 재밌고 편안하게 즐겨. 그리고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자기 친구 만나러 시내에 가야되는데, 그동안 우리로 따라가서 근처를 돌아보는 것 뿐이야. 그러니 너무 고마워하지는 마.


7시가 넘어가자, 세상이 어두워졌고, 나는 이 두 남자와 함께 차를 타고 자이푸르 투어를 나갔다. 역시 밤 중에 보는 인도는 거리는 낮과는 달리 조금은 더 무섭고, 조금은 더 이색적이었다. 이 두 사람이 없었으면, 늦은 시간에 인도의 시내를 돌아다닐 일은 없었겠으나, 현지를 안내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보니, 한결 수월하고 안전하게 시내 야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24살이라는 게 안 믿겨.


숙소로 돌아와서 늦은 시간... 사람들과 짜이를 함께 마셨다. 홍차와 우유를 섞어서 만든 인도인들이 애용하는 음료. 나는 인도 음식 중에서 짜이하고 라시가 제일 좋다. 어차피 서인도를 돌아보고, 델리로 돌아가야 한다면, 자이푸르를 거쳐가야 하니, 돌아오는 길에 자이푸르 이 숙소에서 한번 더 머무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틀 만에 인도에 적응한 듯 싶다. 나한테는 이런 분위기가 맞는 거 같다.




사십춘기 방랑기 D+136일(2017.7.24.) 인도 셋째날 in 자이푸르


아침 9시까지 침대 위에서 숙면을 취했다. 밖을 내다보니, 또 비가 오고 있었다. 인도에 들어온지 3일째인데, 매일 비가 오고 있다. 이 비라는 것이 한번 올 때 쏟아져 내리고, 그 후에는 순간적으로 개어서 무더워지는 형태여서 비가 내릴 때만 피하면, 그렇게 크게 젖지 않고 다닐 수는 있는 셈이지만, 확실히 겨울에 비해서 여름의 인도는 여행하기 좋은 시점은 아니다.


비가 그치자, 핑크시티라고 불리는 자이푸르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걸어 나섰다.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가자는 생각으로 걷다가, 길을 잃었고,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공원이 나와서 그리로 들어갔다. 혼잡한 인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평온한 그 공원의 분위기에 참으로 큰 이질감을 느꼈다. 그곳은 자이푸르 센트럴 파크였다. 마땅히 할 일도 없는지라, 공원을 둘러보다가, 공원 중앙에 세워진 건축물의 안내문 앞에 서 있게 되었다. 힌디어로 쓰여져 있어서,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힌디어를 읽을 줄 아냐고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전혀 모르겠다. 그냥 그림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자기가 설명해주겠다고 하면서 영어로 그 건물의 유래와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출처: 자이푸르 센트럴 파크 나무위키 사진


그의 이름은 “압둘”. 나이는 57세, 4남 1녀의 아버지였다. 이 아저씨는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했고, 중간 중간 이해를 못하는 나를 위해서 천천히, 그리고 쉽게 설명해주는 인내심을 가진 분이었다. 압둘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무슬림이었다. 인도에는 힌두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무슬림도 있다. 그는 내게 종교를 물었고, 나는 크리스챤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가 서로 종교는 다르지만, 미워하지 말자고 했고, 나는 미워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자이푸르 센트럴 파크에서 아저씨에게 헌팅을 당했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나눴다. 여자를 대할 때는 이것만 기억하면 돼. 뭔데요? 인종, 나이 그렇게 관계없어. 무조건 여자는 칭찬해야해. 목소리가 예쁘다. 눈이 예쁘다. 만나니까 내가 행복하다. 당신을 보니 설렌다. 당신 현명하다. 멋지다 등등... 무조건 칭찬해. 그리고서는요? 그게 전부야... 너를 만났을 때, 그녀가 행복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진행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압둘이 같이 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좋다고 했더니, 자기가 사는 동네 근처로 가자고 한다. 그래서 어디냐고 물었더니, 올드 타운(핑크시티) 근처라고 했다. 올드타운은 어떠냐고 물으니, 시끄러움과 무질서의 극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매일 그걸 겪다보니 지쳐서, 가끔식 편안해지고자 센트럴 파크에 쉬러 오는데, 그렇게 오늘 나를 만났다고 했다. 평온했던 공원 밖으로 나와서, 그를 따라 올드 시티의 무질서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길거리 노점에서 팔고 있는 짜이를 사서, 그와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위생만 빼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배탈이 날지는 좀 더 살펴봐야겠다. 그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세상은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기분은 좋은데... 왜 남자들만 꼬이는 것이냐.

같이 차 미시자고 해서, 노천 카페를 왔는데, 위생을 생각하면 마실 수 없다. 다행히 물갈이는 하지 않았다.




사십춘기 방랑기 D+137일(2017.7.25.) 인도 넷째날 in  자이푸르 우다이푸르


우다이푸르행 버스는 11시에 출발했다. 10시 경에 숙소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터미널로 이동했다. 역시나 정신없이 엉켜있는 사람들과 차량들 가운데에서 타야할 버스를 내 힘으로 찾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때는 그냥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빠르다. 단 여러 명에게 물어서 확인을 과정을 거처야 한다. 인도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것을 그냥 아는척하고 가르쳐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제 예매한 표를 보여주고, ‘우다이푸르’라는 말을 반복하니, 3번 플랫폼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살펴보니, 1번, 2번, 3번 각 플랫폼에 오는 차량들의 상태가 달랐다. 3번 플랫폼에 오는 차량이 제일 상태가 좋은 편이었고, 1번 플랫폼으로 들오는 차량들은 그야말로 당장 부서질듯한 몰골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3번 플랫폼의 차량이었다. 그래서 어제 내 예상보다 표값이 비쌌던 것(700루피)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알려준 대합실에서 3번 플랫폼의 차량이 오기를 기다렸다.


버스는 제법 쾌적하고 편안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이 타지 않아서, 의자를 충분히 뒤로 젖히고, 그렇게 잠을 자면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 예상했을 때는 많이 가야 8시간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9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리고 인도에 온지 4일째인데... 4일 연속으로 비가 왔다. 인도의 여름은 우기이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린다. 버스는 휴게소 같은 곳에 3번 정차했다. 이제는 휴게소에 쉴 때마다 내려서 화장실도 가고, 가판에서 파는 음식들도 제법 사서 먹게 되었지만, 인도 특유의 그 향신료만큼은 적응을 하지 못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버스를 타는 내내 배고프고, 힘들었다.


드디어 우다이푸르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인가, 어디선가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왔는데, 그게 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다이푸르는 호수로 둘러쌓인 도시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8시 30분... 이미 세상은 어두워졌고, 비도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릭샤왈라와 흥정을 했다. 숙소까지 200을 불렀던 금액은 100까지 떨어졌다. 더 깍으려면 깍을 수도 있었겠으나, 빨리 숙소로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커서 릭샤에 올라탔다. 그런데 생각보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많이 떨어져있었다. 그리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이 릭샤왈라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물어서, 숙소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너무 고마워서, 110루피를 건내주었는데, 그는 오히려 이걸 매우 고마워한다. 인도 사람들을 사기꾼이라고 싸잡아 대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출처: 나무위키 - 우다이푸르의 야경 모습


숙소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최고였다. 부킹에서 평점 9이상의 숙소는 진짜라고 보면 될 듯 싶다. 호수 바로 옆에 있는 숙소는 옥상에 올라가면, 우다이푸르의 야경이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숙소 곳곳에 주저 않아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다. 여기에 오기 위해서 인도를 왔다는 생각이 들만큼 만족스러웠다. 일단 이틀을 예약했는데, 조금 더 머무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이살메르를 이번 여정에서 과감히 생략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조드푸르는 실상 조금 궁금하여서, 이틀정도 머물러 볼 생각이다. 델리에서 8월 3일에 약속이 없었다면, 그냥 이곳에서 쭈욱 머물러 있었겠지만, 함께 여행할 곳이 있으니, 아쉬움이 있지만 3일 정도 머루르다가 이동해보고자 한다. 정말 이곳은 너무 마음에 든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몸과 마음이 저절로 회복되는 느낌이다. 우다이푸르.... 왜 이제야 찾아왔을까.

우다이푸르의 숙소는 옥상 뷰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다른 곳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여기서 책보고, 풍경을 보고 있어도 충분히 즐겁다.
가격 대비 최고의 만족도를 선사하는 숙소였다. 6인 도미토리도 충분히 사용할 만 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38일(2017.7.26.) 인도 다섯째날 in 우다이푸르


우다이푸르는 호수가 유명하다. 호수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인도에 온 이후로 계속 비가 내리고 있어서, 하늘은 흐렸고, 물비릿내가 물씬 났다. 그 냄새에 취해, 호수 주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우다이푸르의 호수. 막 멀리서 보면 매우 예쁜데, 가까이서 보면 그저 그렇다. 떨어져서 감상하면 족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님들이 나에 대해 적었던 평가에 항상 들어가 있던 말은 '성실하다'였었다. 나는 좋게 말하면 성실했고, 나쁘게 말하면 쉬는 법을 몰랐다. 2개월 전에 사하라레이스를 하면서, 컷오프타임 때문에 쉴새없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사람은 1등할 생각이 없이, 완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레이스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온 힘을 다해도 컷오프타임이 부담이 되는 사람은 절대로 레이스를 즐길 수가 없다. 아마 삶이라는 레이스에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느꼈던 심정이 그랬던 거 같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삶이란 레이스의 컷오프타임같은 것이 무서웠을 터이고, 그래서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셨을 것이다. 그 모습을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 온 힘을 다해 일하는 것... 그게 우리 집안의 내력이다. 그래서 나는 참 일을 열심히 한다. 능률, 그런 것은 모른다. 그냥 온 힘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 집안의 내력이다. 나는 참으로 성실하다. 이것은 교만이 아니라, 그냥 삶의 흔적이다. 나는 그 누구의 감시없이도 끝까지 성실할 자신이 있다.


그런데 나는 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집에서는 쉬는 것, 즐기는 것은 금지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누구보다 잘 놀고, 잘 쉬고, 즐기지 않느냐며, 지금도 세계일주를 하고 있지 않느냐, 그야말로 YOLO가 아닌가 등등 이야기한다. 뭐, 내가 보는 내 자신의 모습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겠으나, 나는 절대 YOLO같은 게 될 수 없다. 나는 쉬는 게 어렵다. 쉬는 흉내를 내기는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다. 언제쯤이나 제대로 쉬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되려나.


호수를 벗어나서, 우다이푸르 거리로 나섰다.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호수 안에 있는 중심지이다. 호수 옆은 한적한 느낌이지만, 조금만 걸어 나가면, 거리가 나오고, 정신없는 인도 특유의 부산스러움이 펼쳐진다. 역시나, 인도는 어느 동네에 가든지, 정신없는 것은 비슷하다. 인도 사람들이 여유롭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류시화'같은 여행꾼들의 감성팔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도에서는 소나 개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정신없다.

소의 나라답게, 인도에서 소는 참으로 여유롭과 안전한 모습을 보인다.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삶인가 싶어서 , 그리고 그 인간의 삶에 나라는 인간이 겹쳐 떠올라서 그런지, 뭔가 울컥했다. 이게 향수병처럼 커졌다. 그러다가 어느 가게에 한글말로 잔뜩 메뉴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그 메뉴들을 읽다가 주인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소니 하우스”라는 이 집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나름 유명한 곳이었다. 그가 자신의 집에 놀러왔던 한국 친구들의 사진과 그들이 남긴 방명록을 보여줬다. 그 글들을 읽다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으로 인도에 방문해서, 이곳까지 왔었구나. 사람들이 쓴 글에서 약간의 외로움들이 느껴졌다.

소니하우스의 닭볶음탕은 기대보다 훌륭했다. 이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헤나를 했다. 7일은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그 ‘소니 하우스’에 눌러 앉아서 쉬기로 마음을 먹었다. 메뉴 중에서 ‘닭볶음탕’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주문했더니, 정말 한국 닭볶음탕과 비슷한 맛이 나오는 걸 해왔다. 아... 138일만에 먹는 매운 닭볶음탕... 그런데 5,000원이라니, 행복했다. 밥을 먹고 나니, 헤나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냥 무언가 허전했던 오른팔에 헤나로 그림을 새겼다. 이렇게 10일 정도 간다고 하니, 인도에 있을 동안에는 흐릿하게 유지가 될 듯 싶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냥 사람들과 함께 인도 방송을 봤다. 내용은 이해가 안갔지만, 그냥 소니 하우스의 가족들과 함께 TV를 보면서, 쉬었다. 쉼... 이게 참 내게는 어렵지만, 소니 하우스 가족들에게 그러한 쉼의 모습을 느꼈던 것도 같다.



사십춘기 방랑기 D+138일(2017.7.27.) 인도 여섯째날 in 우다이푸르


오늘은 우다이푸르에서 머무는 마지막날이었기에, 숙소에서 보았던 성을 찾아서 가보려고 거리로 나섰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서 성을 향해서 가는 중에, 수많은 호객꾼들이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온다. 원래 나의 스타일은 이런 호객꾼들과는 잘 말을 섞지 않고, 그냥 내 갈 길을 가자는 주의였다. 그런데 모로코에서 그녀를 만난 이후로, 나의 여행 스타일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현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없이, 사람들과 잘 대화하고, 장난치면서 여행을 즐겼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던지라, 나 또한 그녀의 모습을 닮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름도 모르지만, 그냥 성이 보여서 찾아 갔다.


그러나 인도에서의 호객꾼들과의 대화는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는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으로 끊지 않으면, 한없이 끌려다니든가, 제법 난감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이 그러했다. 성을 향해 이동을 하던 중, 큰 비가 내렸다. 6일 연속 내리는 비.. 무너진 건물도 보인다. 갑작스런 비를 피하기 위해 비가 조금 덜 들이치는 가게의 처마에 피신해있는데, 한 호객꾼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Are you an artist?” 이러한 접근은 처음이기도 했고, 또 워낙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보니, 예술가냐고 묻는 질문에 그냥 마음이 훅 열려 버렸다.


그렇게 보이냐? 그런 느낌인데. 예술가 맞아? 아니야, 아직은. 아직은? 예술에 관심은 있구나. 응. 관심있지. 내가 도와줄까? 뭘 어떻게?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어. 네가? 내가 직접 영감을 준 건 아니고, 그 방법을 알려준 거지. 그게 뭔데? 하시시를 해봐.


아... 환각제를 파는 친구구나. 얽히면 골치가 아파질 거 같아서 자리를 옮기고자 했지만, 거센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둘러보니, 근처에 이발소가 있었다. 머리를 자른 지 20일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냥 이발소에 들어갔다. 하시시를 권하던 친구는 이발소까지는 따라 오지 않았다.


머리를 다하고 나니, 무섭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우다이푸르성으로 이동하여, 성을 둘러봤다.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시시를 팔던 친구를 또 만났다. 아티스트! 그냥 갈 거야? 내가 널 행복하게 해준다니까. 나 지금 행복해. 정말? 뭐... 대체로... 이거 한번만 해봐. 끝장이야. 그래 당연히 끝장나겠지. 나는 안 할 거야. 아티스트! 너무 꽉 막혀 있는 거 아니야?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지. 나 아직 아티스트 아니야. 그럼 뭔데? 나 직업 없어. 너 직업 없어? 응. 계속 없었어? 아니, 최근에 없어졌어. 그럼 그전에 뭐였는데? 나? 음... 티처.... 티처라구? 마이 프렌드, 하시시는 하면 안되겠다. 그치? ㅋㅋㅋㅋ

하시시를 팔던 친구가 더이상 하시시를 권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숙소로 돌아왔다. 머릿속에서 계속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맴돈다. 가능할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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