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 ㉓산티아고 순례길 → ㉔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에리세이아, 신트라 → 라고스 → 파고 → 세비야, 론다 → ㉕ 모로코 탕헤르 → 테투안 → 쉐프샤우엔 → 페즈 → 쉐프샤우엔 → ㉖ 마라케시 → ㉗터키 안탈리아 → ㉘ 아제르바이잔 바쿠 → ㉙ 조지아 트빌리시 → ㉚ 아르메니아 예레반→ ㉛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㉜인도 델리 → 자이푸르 → ㉝ 조드푸르 → 자이푸르(푸시카르)→ ㉞ 아그라 → 델리
2003년 2월에 방문했던 인도를 2017년 7월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① 델리 → ② 자이푸르 → ③ 우다이푸르 → ④ 조드푸르 → ⑤ 자이푸르, ⑥ 푸시카르. ⑦ 자이푸르 → ⑧ 아그라 → ⑨ 델리
* 여행지에서 휴대폰을 분실하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상황이라, 쓸만한 사진이 없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44일(2017.8.1.) 인도 열한째날 in 자이푸르 → 아그라
델리, 자이푸르, 아그라의 여정은 삼각형 모양이기 때문에 인도의 '골든트라이앵글'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소개되고 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한 제자와 델리에서 8월 3일에 만나기로 했다. 델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골든트라이앵글 여정을 나도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 아그라로 가자.
자이푸르 버스 정거장을 향하여 아그라행 버스표를 구매했다. 어쩌다 보니, 자이푸르에 총 5일이나 머무르면서, 버스정거장을 이용해왔다. 작별을 하려니 약간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11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출발하고 보니, 그간 컴퓨터 작업을 위해서 들고 다니던, 외장하드를 전에 머물던 숙소에 두고 온 것인지, 어디선가 분실한 것인지, 아무튼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장하드에 교사시절 작성했었던 모든 자료들이 다 들어있는데, 분실했다. 그래서 결국 12년 교사 시절의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셈이다. 뭐, 속상하긴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어떻게든 살아가면 되겠지.
아그라까지 오는 길은 가깝지만, 멀었다. 인도에서의 버스 이동이 다 그렇다. 거리상으로 보면 얼마 안되는데, 버스를 타면, 한참이 걸린다. 11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아그라에 도착했다. 이렇게 꼬박 하루 종일을 버스에서 보낸 셈이다. 아그라에 도착하여, 릭샤왈라를 타고 숙소를 향했다. 오토릭샤에 비해서 더 힘들게 사는 싸이클릭샤를 돕기 위해, 싸이클릭샤에 올라탔던 것인데, 짐과 함께 올라타고 보니, 릭샤왈라가 힘들어한다.
여행 짐까지 잔뜩 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 릭샤 아저씨는 자신의 릭샤를 탄 내게 계속 고맙다는 표현을 한다.
희끗희끗한 머리로, 온힘을 다해 페달을 돌리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잖니,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이 릭샤왈라의 두 다리에 얹혀있는 가정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운수좋은 날”이라는 소설의 김첨지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그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었겠지. 반어법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앞의 릭샤꾼이 운수가 좋았으면 좋겠다. 페달을 돌리며 연신 땀을 닦아내던 그 뒷모습이 너무도 멋졌다. 일하는 삶이 멋지다. 나 또한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땀 흘리며 다시 일하게 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근 5개월 가까이 일하지 않고, 소비만 하고 살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생산없이 소비하는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가 않다. 생산하지 못하는 삶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그다지 재미없는 일기를 별일이 없는데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방랑하는 기간 내내 썼던 것은 그래도 무언가를 생산해보려는 노력이기 했는데, 이제 제대로 일해야 되는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어서 빨리 다시 일하고 싶다. 이제 귀국을 하고, 어떠한 일들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할 시점이다. 여행 출발 전에 비하여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으나,어느 쪽으로 가든지 이 릭샤왈라처럼 열심히 페달을 굴려보리라 다짐한다.
사십춘기 방랑기 D+145일(2017.8.2.) 인도 열둘째날 in 아그라, 델리
아그라에 온 이유는 타지마할 때문이다. 년 전에 아그라에 왔다가, 현지인과 20배가 차이나는 입장료 때문에 분노하여, 한참을 싸우다가 결국에는 입장하지 않고, 타지마할 옆으로 흐르는 야무나 강가에서만 지켜보고 왔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때 타지마할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 계속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도에서 여행객으로 호구취급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꼭 타지마할을 들어가 보겠다 다짐하고, 아그라에 온 것이다. 세상에... 2003년 2월 필름카메라 사진을 찾았다.
2003년 2월, 25살의 청년. 이 때 왜 입장료를 아낀다고, 타지마할 안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일까
타지마할 근처에서 머물다가 아이들과 사진만 찍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아침 8시 30분 경 타지마할을 향했다. 숙소에서 타지마할은 멀지 않았지만, 가는 중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인도에서 보낸 12일 가운데, 11일이 비가 왔다. 우기의 인도는 그냥 비와 함께 생활하겠다는 각오로 와야 할 것이다. 덥고, 눅눅하고, 더럽고... 아니 그보다는 우기에는 인도 여행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 않을까 싶다. 릭샤에서 내려서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 매표소를 향했다. 역시나 현지인과 외국인은 매표소가 달랐다. 그리고 금액도 대놓고 달랐다. 현지인은 40루피, 외국인은 1,000루피(2024년 현재, 현지인 50루피, 외국인 1,100루피) 이 얼마나 창조경제인가. 외국인 관광객 1명은 25명의 현지인과 동격이구나.
이 때문에 확 짜증이 올라왔지만, 그냥 쿨하게 결재를 했다. 매표소 옆에서 관계자라고 보이는 사람이 이것저것 유의사항을 설명해줘서 듣고 있었더니, 결국에는 자신을 가이드로 고용하라는 호객꾼이었다. 그를 거절하고, 타지마할 입구에 들어섰더니, 검색대에서 가방에 들어있던 노트북과 배터리, 줄넘기 등이 걸려서 한참 떨어진 락카룸에 짐을 맡기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이때 폭우가 계속 쏟아지고 있어서, 이미 온몸은 젖었고, 그 와중에 땀까지 나니, 짜증수치가 거의 최고조로 향했다. 그리고 타지마할에 입장했는데...
비가 오고 있어 우중충한데로 아름다웠다. 날씨가 좋으면, 말도 안되는 광경이리라.
타지마할은 위대했다. 막눈인 내가 보기에도 그냥 숨이 턱 막히는 광경... 건축물을 보고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이후 2번째다. 마치 가우디를 보는 느낌이었다. 책으로 실컷 봐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모르는 것보다 위험한 거 같다. 직접 와서 보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는 것이 아니었다. 외국인 입장료가 25배가 아니라 100배가 더 비싸더라도 입장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 타지마할은... 그냥 엄청났다.
타지 마할 앞에 곧게 뻗어 있는 이 길... 날씨가 좋다면, 이 산책길에서 계속 타지마할을 감상했으리라.
정사각형 4개가 접합된 형태로 타지마할의 정원을 이루고 있으며, 그 북쪽끝으로 야무나강이 흐르고, 야무나강과 접하는 지점에 타지마할이 있다. 타지마할 자체도 너무도 아름답지만, 타지마할까지 이어지는 정원도 너무도 아름답고, 타지마할 옆으로 흐르는 야무나강과 타지마할 옆으로 세워져있는 2개의 건물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쟈한은 자신의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길래, 죽은 아내를 위해 이러한 건물을 세울 생각을 했던 것일까. 권력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권력이라면 기꺼이 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가 정말 많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너무도 아름다운 건물이다. 타지마할.
타지마할을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오가는 길에 들리는 익숙한 소리들... 타지마할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눈에 띄는 동양인들은 대부분 한국사람들이었다. 이제 인도는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보다 한국인이 더 많은 상황이다. 심지어는 가이드 중에서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너무도 유창하게 한국말로 타지마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가이드를 발견하고, 신기해서 한참을 쫓아다녔다. 돌아다니다보면, 인도 친구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구할 때가 많다. 이 친구들이 한참 페이스북을 하는데, 거기서 외국친구들과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수가 있는가보다. 그래서 한국인들을 보면 그렇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어디가나 실감하는 SNS의 위력...
타지마할 맞은 편의 건물. 그 의미는 잘 모르겠다. 이 건물도 예쁘지만, 타지마할은 넘사벽이다.
타지마할 본건물에 들어가려면, 신발커버를 신어야 한다. 이는 입장권을 구매하는 순간 함께 준다. 처음에는 뭐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유난을 떠는가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신발커버는 꼭 있어야 한다. 이 아름다운 건물을 그대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는 것은 건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 정도로 타지마할은 아름답고, 완벽하다. 대릭석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빗깔과 형체를 이룰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사진을 제대로 배워서, 15년 후에 타지마할에 다시 한번 오고 싶다. 그리고 그 때는 나 또한 샤쟈한이 타지마할을 만든 것과 감히 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었기를 기대할 뿐이다.
나와 달리 날씨가 좋은 날에 타지마할에 방문했었던, 방랑 청년식객 믿음이. 화사하다.
타지마할을 보고 기분이 매우 좋았지만, 비를 오래 맞아서 컨디션 자체는 별로였다. 맡겨 놓은 짐을 찾고, 릭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델리행 버스를 예약하고, 빠르게 젖은 옷을 갈아 입었다. 아그라에서 델리를 향하는 동안 버스에서 피곤함은 더 거세졌다. 저녁에 델리에 도착했다. 어서 빨리 숙소에서 쉬고 싶었지만, 야간의 파하르간지에서 숙소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온갖 호객꾼들에게 시달리면서 파하르간지를 헤맸다. 완전히 기진맥진해버렸지만, 그래도 다시 들린 델리에서는 예약한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숙소는 오버부킹 되어서 밤 10시에 한명이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는 숙소가 없다고 했다. 엄밀하게 따지면, 오버부킹을 한 것은 숙소측 잘못이고, 나는 당장 내가 머물 침대를 달라고 따지면 된 것이지만, 뭐... 여기가 인도이니까, 인도인처럼 생각해보기로 했다. "노프러블럼"이라고 말하고, 숙소에 짐을 맡긴 채, 자리가 날 때까지 파하르간지의 무법천지를 쏘다녔다. 숙소가 정해지고 나자, 더이상 거리가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날씨는 후덥지근했고,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어차리 온몸이 땀으로 범벅인지라 샤워하기 전까지 땀을 더 흘리는 것은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파하라간지의 거리거리가 제법 재밌었다. 이제 내 몰골이 이제 한국인처럼은 안보이나보다. 파하르간지를 지나가는데, 호객꾼들이 물어온다. “네팔사람이냐?” 아... 네팔 사람은 어떻게 생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