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지에서 휴대폰을 분실하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상황이라, 쓸만한 사진이 없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십춘기 방랑기 D+149일~155일(2017.8.6.~8.12) 인도 열여섯째날~스물둘째날 in 다람살라
마날리에서 제자 동환이와 작별하고, 다람살라로 이동했다. 다람살라는 2003년 2월에 방문했었던 곳이다. 그때의 느낌이 너무 좋았어서, '레'와 '라타크'를 갈 때 동행하자면 제자들의 부탁도 거절하고 혼자 1주일을 지내고자 다시 방문하는 곳이었다. 그때의 따뜻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15년 가까이 지난 무렵이었지만, 꼭 다시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추억 속에서 다람살라는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었다.
2003년 2월의 다람살라.. 인도의 혼잡함이 아닌, 따뜻한 만남이 있는 곳이었다.
당시 다람살라의 숙소는 산 중턱에 있었고, 자연 속에서 지내는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다람살라'는 마날리에서 거리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험한 산길을 이동하는 것인지라 7시간 정도는 걸렸다. 새벽 6시에 다람살라에 도착했지만,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숙소를 예약한 것이 아니었기에 정거장에서 사태를 관망했다. 같은 버스를 탔던 이들은 각자의 숙소를 찾아 각종 탈거리를 타고 이동을 했고, 정거장에는 나만 남았다. 나를 에워싸고, 호객행위를 하던 이들은 내가 한참 동안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자 새로운 고객을 찾아 떠나갔다. 15년 전에 머물렀던 곳이 다람살라인 줄 알았더니, 엄밀히 말하면 맥간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교통편을 찾았다. 웬만하면 택시가 아니라, 로컬버스로 이동을 하고자 했지만, 버스정거장에서는 해당하는 차편이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시간은 많았지만, 비가 오고 있어서 걸어가기에 만만치 않아서 택시로 맥간에 도착했다.
다람살라 맥간의 모습(출처: 나무위키)
15년 전에 왔던 곳이었지만, 기억과는 많이 달랐다. 예전에 비해서 더 번화가가 된 것은 분명했다. 건물들도 많이 높아졌고, 상가들도 제법 많이 들어서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다람살라는 내게 너무도 친근한 곳이었는데, 막상 도착한 다람살라는 너무도 낯설었다. 내 기억은 15년 전에 머물러 있는데, 그 이후로 다람살라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시간이 지나면 변화는 것이 당연한데, 나 혼자서만 과거의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다르게 쓰인다.
이곳에서 8일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기에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도미토리보다는 독방이면서, 전망이 좋고 숙박비가 많이 비싸지 않은 곳을 원했는데, 1박에 400루피로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이제는 틀어박히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다 준비되고 괜찮았는데.... 다람살라가 상상이상으로 습한 동네였다. 도착할 시간부터 내리던 비는 그 후로도 6일 연속으로 내렸다. 잠시 그쳤다가 해가 뜨기도 했지만, 마을은 언제나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무진기행의 안개만큼... 다람살라는 안개가 가득했다.
안개 끼고 습한 날씨가 다람살라에 머무는 내내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안개가 사람을 제법 몽롱하게 만들었다. 계속 무엇인가에 반쯤 취한 느낌이 들었고, 한없이 우울해졌다. 무언가 의지에 불타올라야했건만, 안개 속에서 의지가 잘 다져지지가 않았다. 풍경이 좋은 곳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내 기억 속의 다람살라는 그런 소망을 품기에 충분한 곳이었는데, 현실의 다람살라는 전혀 달랐다. 매일 매일 무기력하게, 짙은 안개 속에서 꿈에 취한 듯 방황하게 되었다. 엄청난 습도는 이틀 만에 방안에 짙은 곰팡이를 피웠다. 그리하여 가방과 옷가지들은 푸른 곰팡이인지, 검은 곰팡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온갖 곰팡이가 잔뜩 피어나게 되었다.
6일 연속으로 비가 내리다가 비가 그치면 안개가 잔뜩 끼는 것의 반복이었다. 나는 침체되었고, 더불어 내가 생각보다 창작력이 빈곤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6일을 틀어박힌 결과는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단편소설 4편과 비유와 상징이라는 시의 기본을 상실한 채 관념만을 머금고 주절거리는 시 8편, 어디에 발표하기에도 부끄러운 생각의 단편을 끄적거려놓은 낙서 여럿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다람살라에서 틀어박히기로 한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공자님의 말씀이다. 한 사람에게 모든 덕을 구하지 마라. 나는 나의 덕을 찾을 뿐이다.
원래는 13일 저녁차로 델리로 올라갈 예정이었지만, 우기의 다람살라가 나에게는 퍽 힘들었다. 어서 빨리 이곳을 탈출하고자 하는 생각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함께 탔었던 믿음이가 델리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하루 빨리 탈출하기를 결심했다. 처음에 각오했던 7개월의 여행 중에서 이제 5개월이 지났다. 원래 계획이라면, 이때쯤 단편 소설 6편하고, 교육 관련 책 1권이 완성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완전히 망한 셈이다. 인생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이러한 결과는 온 마음과 의지를 허물어버린다. 글쓰기는 버티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모로코에서 만났던 그녀와의 연락에서는 냉랭함이 가득하다. 서로에 대한 감정도 다르게 쌓이는 게 당연하다.
다람살라를 떠나기로 마음 먹고 나서, 오히려 주위를 둘러 보기 시작했다.
델리로 돌아가는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 모처럼 숙소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곳! 그 기념관을 찾아서 고향을 떠나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이들의 흔적을 보았다. 거대한 힘에 가로막힌 이들... 그들은 티베트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시차.. 그들은 이곳에서 살지만, 또 다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 시차... 그 느낌대로 끄적거려 본다.
시차
비비비飛
물비린내 가득 찬 티베트 망명정부의 땅
돌아갈 곳 잃은 자들의 하얀 신음에 이끌려
안개 속의 산책을 나선다.
비비비非
사람들의 스치는 눈빛은
희미해진 추억을 말한다.
시간 속에 묻힌 이야기처럼
고향보다 더 익숙한 안개의 나라
시간은 1시간 30분 빠르게 흐른다.
고향을 따라 살고 싶다고
저 높은 고원을 넘어
낯설어진 고향을 걷고 싶다고.
비비비比
문득, 나의 시계를 살핀다.
3시간 30분
너와 나의 시차
시계를 느리게 고친다.
너의 시간을 살고 싶다고
짧은 기억을 넘어,
네가 보는 풍경을 따라 걷고 싶다고.
일단... 15년 만에 돌아온 다람살라의 생활은 완벽한 실패였다. 인생사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니, 이 실패는 온전히 내가 품고 가야한다. 남은 60일의 여정에 조금 더 분발해보자.
사십춘기 방랑기 D+156일(2017.8.13) 인도 스물셋째날 in 델리
그간 버스로 이동한 것이 여러 번이었지만, 이번 버스 여행은 멀미로 제법 힘들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지만, 그것도 깊이 들지 못하고, 여러 번 깨어 울렁거림을 겪다가 다시 간신히 잠드는 일을 반복했다. 어제 저녁 7시에 다람살라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늘 새벽 6시 30분 무렵에 델리에 도착했다. 안개가 많아서 평상시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비몽사몽한 채로 버스에서 내리니, 수많은 릭샤꾼들이 들러붙는다. 그러나 델리를 이번 여행에만 3번째 오는 셈이다보니, 그다지 마음이 급하지가 않았다. 숙소로 곧장 가는 금액이 제법 되다보니, 뉴델리행 열차가 출발하는 메트로를 찾아서 릭샤로 이동을 했다. 넉넉하게 80루피를 주니, 메트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는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요금은 불과 20루피였다. 지하철이 너무 훌륭해서 사실 많이 놀랐다. 지하철역을 경계로 안과 밖이 대략 40년 이상의 차이가 나는 듯 했다. 비동시의 동시성은 인도를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뉴델리역까지는 5정거장이었다. 뉴델리역에서 내려서, 물어물어 메인 바자르를 찾아갔고, 거기서부터 믿음이가 머물고 있는 숙소를 향했다. 대략 오전 8시 경에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청년방랑식객 믿음이를 140여일만에 재회했다. 나는 3월 9일에 여행을 시작했고, 믿음이는 3월 13일에 여행을 시작했었다. 각자 여행의 시작이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함께 했던 우리는 각자의 여정을 계획대로, 때로는 계획을 어기면서 진행한 후에, 이렇게 인도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신기하다. 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때보다 살이 빠졌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만났던 믿음이를 140여일 만에 다시 만났다.
믿음이와는 같이 교회를 가고 싶었다. 믿음이를 재회한 오늘이 주일이었기 때문에, 미리 델리에 와있던 믿음이에게 한인 교회 위치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다. 예배가 10시에 있어서 간단히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에, 믿음이의 인도로 교회를 향했다. 델리 임마누엘 교회. 그곳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생각보다 잘 정돈된 분위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목사님은 믿음이와 나를 처음 교회에 방문한 손님이라고 하여, 소개하며 환영해주셨고, 장미꽃까지 주셨다. 그리고 예배 후에는 식사에도 초대해 주셔서, 식사를 하며 델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낯선 이국 땅에서 흩어진 자가 되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새롭고, 행복하다.
남자들도 꽃을 선물 받으면 기분이 좋다~~
예배 후에 교인들과 함께 먹는 점심 식사. 정갈하다
예배를 마치고, 파하라간지로 돌아오는 길... 다람살라의 우울함이 전부 사라졌다.
예배를 드린 후로는 숙소로 돌아와서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고, 그 후로 델리 관광을 나갔는데, 처음으로 찾아갔던 ‘레드포트’라는 곳은 8월 15일이 인도 독립기념일이기에, 행사 준비로 입장이 불가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올드 델리의 거리시장을 돌아다니며, 가장 남루하다고 할 수 있는 인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인도에서 노점 음식을 먹다니, 객기가 심했다. 이 객기의 결과 믿음이는 이후 설사병으로 고생을 한다.
그 후에는 코넛플레이스라고 우리나라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의 가장 번화가를 찾았는데, 올드델리와의 차이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인도는 정말로 동일한 공간 안에 여러 층위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
믿음이와 한식당에서 회포를 풀었다. 나와 헤어진 이후로 140여일간의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내가 믿음이를 만났던 것은 150여일 전이다. 우리는 서로를 잠시 만나고, 헤어진 사이일 뿐이다. 만났던 시간의 기억보다 헤어져 지낸 기억들이 더 많다. 다람살라와 같다면, 우리의 기억은 다르게 쓰여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의 온도차가 궁금하기도 했고, 염려되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기억은 다르게 쓰이기도 하지만, 더 진하게 쓰일 수도 있다. 시간은 흐르고, 추억은 다르게 쌓인다. 어떤 추억은 제대로 쌓인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오랫동안 만날 동생을 얻었다. (그리고 이 동생은 지금까지도 계속 만나고 있다.)
내일은 제자 현규와 동환이가 라다크를 여행하고, 델리로 오는 날이다. 이 녀석들에게 믿음이를 소개해줄 생각이다. 남자 셋이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서로의 합이 맞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