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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6. 2024
# 38. 제자와 함께 떠난 북인도 마날리
부유하지는 않지만, 소란스럽지 않고 여유가 있는 곳. 그렇게 살고 싶다.
20th 국가: 인도
23th 여정: 델리, 마날리 (8.3-8.5)
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 ㉓산티아고 순례길 → ㉔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에리세이아, 신트라 → 라고스 → 파고 → 세비야, 론다 → ㉕ 모로코 탕헤르 → 테투안 → 쉐프샤우엔 → 페즈 → 쉐프샤우엔 → ㉖ 마라케시 → ㉗터키 안탈리아 → ㉘ 아제르바이잔 바쿠 → ㉙ 조지아 트빌리시 → ㉚ 아르메니아 예레반 → ㉛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 ㉜ 인도 델리 → 자이푸르 → ㉝ 조드푸르 → 자이푸르(푸시카르) → ㉞ 아그라 → 델리 → ㉟ 마날리
2003년 2월에 방문했던 인도를 2017년 7월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① 델리 → ② 자이푸르 → ③ 우다이푸르 → ④ 조드푸르 → ⑤ 자이푸르, ⑥ 푸시카르. ⑦ 자이푸르 → ⑧ 아그라 → ⑨ 델리 → ⑩ 마날리사십춘기 방랑기 D+146일(2017.8.3.) 인도 열셋째날 in 델리
어제 저녁 숙소에서 체크인 시간이 매우 늦었고,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그렇게 편안하지는 않았다. 몇 번을 깨다가 잠드는 것을 반복했는데, 그러다가 평상시와는 달리 테블릿을 봤더니, 제자에게 온 메시지가 와있었다. 내용은 선생님, 저 1층에 왔었어요. 시간을 확인하니, 5분 전에 보낸 메시지다. 서둘러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하나고 1기로 내가 고3 담임으로 지도했었던 동환이(당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재학 중이던 이 녀석은 이후 삼성에 입사했다가, 퇴사하고 지금은 증권사에 근무하고 있다)가 와있었다.
로비에 나왔더니, 이러고 있었다. 이정도 넉살이면, 인도에서도 잘 지낼 수 있겠다. 서울이 아닌, 인도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 3일 새벽 2시경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을 밟고, 공황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 아침 6시 20분 경에 도착한 것이다. 처음으로 방문한 인도에서, 행여나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가뿐하게 인도의 정신없음을 뚫고,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확실히 적응력이 높은 녀석이다 보니, 이미 숙소 직원들하고 친해져서, 숙소 로비에서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이제 이녀석과 8월 24일까지 제법 긴시간을 동행하게 된다. 물론 중간에 12일 정도는 각자 헤어져서 따로 지내게 되겠으나, 키르키즈스탄으로 함께 출국해서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을 함께 여행하게 되었다. 동환이는 하나고에서 내가 꼭 담임으로 만나기를 바랐던 녀석이었는데, 그 소망이 이뤄져서 이녀석이 고3 때, 담임으로 만날 수 있었고, 5일 후 인도로 넘어오는 현규와 함께 1기 제자 중에서 내가 아끼는 제자이다.
타지에서 제자를 만나니,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이녀석의 짐을 숙소에 맡겨두고, 델리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장 중인 파하르간지를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역시나 정신없는 도시였지만, 함께 있으니 떨리기보다는 그 소란스러움조차도 즐거웠다. 간단히 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지나가는 호객꾼과 잘못 말을 섞다가, 여행사로 들어가서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마날리행 버스를 아주 비싼 금액(각각 1600루피)으로 예약했다.
점심이 되기 전까지, 함께 둘러볼 곳을 찾다가, 인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간디기념관에 가기로 했다. 릭샤를 잡아탄 후 흥정하여 90루피로 갈 수 있었다. 돌아올 때는 80루피까지 흥정이 되었는데, 실제 가격이 궁금하기는 하다. 간디기념관은 9시 30분에 문을 열었고, 무료였다. 동환이와 나는 간디기념관의 개장시간과 동시에 도착하여, 오늘 하루 제일 먼저 간디기념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간디 기념관에는 간디의 일생에 대한 거의 모든 기록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 세세한 내용들을 다 읽고,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인도에서 간디가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지폐의 도안이 간디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에서 간디는 넘사벽 압도적 1인인 셈이다.
반가운 제자와 함께 하니, 델리의 거리거리는 설렘의 연속이다. 간디 기념관에는 여러 개의 경구들이 써 있었는데,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이 있었다. 간디가 암살당했을 때, 총상을 입은 옷을 보관해놓은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My Life is My Message.”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문구과 참으로 와닿는다. 자신의 삶 자체를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한 철저함과 올곧음이 감탄스럽다.
MY LIFE IS MY MESSAGE!!간디 기념관을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와서 체크아웃을 하고, 근처 한인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하는 중에 마날리행 버스가 800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호구가 되어 어이없이 비싼 비용으로 버스를 예매한 것을 후회하며, 해당 여행사를 다시 찾아가서 환불을 요구했는데... 아침에 매우 친절했던 인도 여행사 친구들은 갑자기 돌변하여, 환불은 무조건 안되며, 너희 잘못이니 너희가 책임지라는 식으로 떠넘겼고, 이를 듣고 있다가 급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모처럼 전투력을 끌어올려서 여행사 아저씨들과 열심히 싸웠다. 거의 몸싸움 직전까지 갔는데, 웃긴 것은 여행사 측의 사람들이 그런 내 모습을 휴대폰으로 녹화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한국 진상 손님이라고 인도 방송에 나오려나.
한참을 싸우다보니, 환불은 해주는데 50%가 위약금이 되어 800루피만 돌려준다고 제안을 받았지만, 그럴 바에는 똑같아지는 상황이라 그냥 그 버스를 타기로 했다. 50분 정도를 소리내어 너가 속였다. 너는 무례하다. 너는 나쁘다. 너희는 추하다 등등의 말등을 서로에게 쏟아냈는데, "그러면 그냥 버스 탈게." 라는 말한마디에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로 서로 악수하며 마무리되는 상황이 너무 웃겼다. 역시 여기는 인도구나. 그래서 이번 여행 최대의 호구 금액으로 마날리를 향하게 되었다.
버스는 밤새 달렸다. 비록 호구가 되어 엄청나게 바가지 요금으로 구입한 차편이었지만, 버스는 그간의 여정 중에 이용했던 차편 중에서 제일 좋았다. 거의 비행기의 비즈니스석 정도가 되는 앞뒤 간격으로 충분히 편하게 쉬면서 이동할 수 있는 버스를 인도에서 이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날리를 향하는 도로 사정이 그렇게 좋지가 않았으며, 온갖 꾸불꾸불 산길을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곡예주행을 해서 놀랄 때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마날리행 버스의 럭셔리함 덕택이었다. 야간에 휴게소에 잔깐 정차했을 때는 인도 친구들이랑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현지인 셋에 한국인 1명이 껴있는 것처럼 나왔다.
나는 이제 현지인과 가까운 몰골이 되었다. 5개월 가까이 떠돌고 있는 결과이다. 사십춘기 방랑기 D+147일(2017.8.4.) 인도 열넷째날 in 마날리
계속해서 산속을 달리던 버스는 14시간 정도 후에 아침 7시 경에 도착했다. 릭샤를 흥정하여, 올드 마날리에 있는 숙소를 향했다. 동환이와는 내일 헤어졌다가 14일에 다시 만난다. 동환이는 인도 북쪽의 산악 지역인 라다크를 뒤늦게 한국에서 출발한 친구를 만나서 여행하고, 나는 티벳 망명 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이동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둘다 마날리에서의 일정은 오늘 하루가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날이었다. 최대한 마날리를 경험하기로 약속했다.
이발소가 보였다. 인도에 왔으니, 인도에서 머리를 자르자고 동환이를 유혹했다. 그렇게 인도의 낯선 곳에서 동환이는 이발을 한다. 이발하는 내내 동환이는 자신의 머리가 어떻게 망가질지 염려했다. 이발사는 인도에서 강한 스타일이 유용하다며, 별모양의 헤어타투를 권유했고, 시술을 마친 동환이는 마음에 들어했다.
이발소를 나와서 마날리를 둘러보았다. 산악마을이라, 이동편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오토릭샤를 이용하면 어디든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고 풍경이 좋았다. 거리를 걷다가 피리를 불며, 코브라가 춤추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걸 구경하다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다 찍고 다니까, 무려 1000루피를 요구하는 그에게, 깔끔하게 20루피(400원)를 쥐어주었더니, 고맙다고 악수를 한다. 인도에서 가격이라는 것은 참 알 수 없는 세계다.
산속의 마날리는 곳곳이 참 예뻤다. 델리의 소란스러움과는 달리 조금은 차분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곳이다. 풍경이 좋은 곳에 앉아서 짜이를 한잔 마시고 있으면, 저절로 철학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분주함과 거리를 두고,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런 곳이다. 이런 곳에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그렇게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저녁은 마날리의 계곡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아주 풍경이 좋은 곳에서 했다. 음식맛도 매우 훌륭했을 뿐 아니라, 가게의 사장님도 너무 성품이 좋아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5년 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인도의 음식들은 많이 세계화된 느낌이다. 그래서 그전에 비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훨씬 많아졌다. 여전히 더럽고,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인도는 참 매력적인 곳임에 분명하다. 동환이는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 다시 한번 인도에 오고 싶다고 연신 이야기 한다.
델리의 소란스러움과는 달리 북쪽의 산악마을들은 여유가 있다.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거리에 있는 동물들도 델리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귀엽다. 똑같이 어렵게 지내더라도 이렇게 여유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십춘기 방랑기 D+148일(2017.8.5.) 인도 열다섯째날 in 마날리, 다람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