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 완주 그 후

13th 국가: 스페인 17th 여정: 순례길 완주 후 6.16-6.18

by GTS

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산티아고 순례길

이제 순례길은 정말로 마무리 되었다. 순례길은 나중에 꼭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다.


사십춘기 방랑기 D+99일(2017.6.16) 스페인 in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완주 후 심정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냥 완주를 했으니, 완주 인증서는 받아보자는 생각에, 산티아고 대성당 인근의 발급처를 아침에 찾아 갔다. 인증서를 들고 밖으로 나오다가, 발급처 옆에 있는 아주 조금만 성당에서 익숙한 멜로디(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나오는 것을 듣고, 그곳에 들어갔더니, 음악과 함께 순례객들을 위한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여러개의 문구들이 음악에 따라 지나쳐 갔는데, 거기서 한 문구가 마음에 꽂혔다.

순례길 완주 증서를 받았다. 나는 이런 인증서에 둔감한 거 같다. 발급받고 금방 잃어버렸다.


“Road is made by walking.”


아... 30일이 넘는 순례길의 보람이 이 단어 하나에 있었다. 일단은 걸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길이 생길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학교와 거짓말하는 이, 오해받는 이들... 이 얽힌 실타래를 풀 힘이 지금 현재 내게는 없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릴 것이다. 길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지금 걸어야 한다. 영상을 보면서 순례길 완주 후의 울컥임이 생겼다.


갑자기 완주 후 세레머니를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성당과 숙소 사이에 Tatoo 가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타투를 새기리라 마음 먹었다. 타투샵을 방문을 할 때는 2개(Que sera sera, 안드레 십자가)만을 새길 예정이었으나, 오늘 가슴에 들어온 문구까지 새겨달라고 했다. 안드레 십자가는 안드레라는 제자가 순교할 때 달렸던 X 모양의 십자가를 뜻한다. 이름을 Andrew로 정한 김에, X 모양의 십자가 위에 Andrew를 새겨달라고 했다. 안되는 영어로 이 디자인을 설명하는 과정이 제법 어려웠다. 다행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고, 타투가게 아저씨는 내 오른쪽 발 뒤쪽에 해당 도안을 새겨 주었다. 그림 타투는 비용도 비쌌는데, 레터링은 그림 타투를 하는 김에 아저씨가 서비스로 해주기로 했다.

산티아고 성당과 숙소 사이의 거리에 있었던 Tatoo 샵. 이 아저씨는 외모와 달리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다. 나의 부족한 설명에도 작업을 잘 해주었다.


그림 형태의 문신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아프고 시간이 길게 걸렸다.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그에 비하여 레터링을 새기는 것은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다. 3개의 타투를 새기는데,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아저씨와 상담 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스페인어인 'Que sera sera'는 기존에 있던 왼쪽 팔의 레터링 아래에 새겼고, 오늘 얻게 된 글귀인 'Road is made by walking.'은 타투 아저씨의 강력한 주장으로 왼쪽 발목 앞쪽으로 새겼다. 3개의 타투는 모두 마음에 든다.


그림 타투를 했다고 레터링은 무료로 해주었다. 땡큐. 덕택에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었다.


신발이 정말 고생 많았다. 100일간 가장 애쓴 동반자였다.

타투를 새긴 후, 여행을 출발해서 근 100일간 함께 했던 신발과 작별을 했다. 이 신발은 세계 여행을 하기 전에 남대문에서 산 30,000원짜리 등산화였는데, 이 신발은 주인을 잘못 만나서,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고, 순례길까지 걸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더이상 신을 수 없는 상태여서, 신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 안녕. 신발과 작별하고, 마트에 들려 가벼운 운동화를 샀다.




사십춘기 방랑기 D+100일(2017.6.17) 스페인 in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묵시아


이틀간 머물렀던 산티아고의 알베르게는 아주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성곽을 알베르게로 개조한듯하여 그 규모도 매우 컸을 뿐 아니라, 운영 시스템도 마음에 들고, 매우 청결했다. 어디 딴 곳을 특별히 나가지 않고, 알베르게 근처에서 일광욕을 해도 충분히 즐겁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만족스럽게 산티아고 생활을 마치고, 묵시아에 가기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평일에는 아침 8시 45분에 출발하지만, 오늘은 주말이어서 9시 45분에 출발했다. 그래도 교통편이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동양인들의 여러 무리가 보였는데, 오가는 말들을 들어보니, 한국 사람들이었다. 정말 순례길에는 한국사람들이 많다. 버스를 타자, 피곤했는지 연신 졸았다. 2시간 정도를 이동을 해서, 해안 마을인 묵시아에 도착했다. 묵시아는 이름이 열일을 한다. Muxia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메시야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뭔가 신비스러운 기운이 느껴졌었다.


묵시아에 도착했다. 묵시아는 정말로 예쁘고, 따뜻하며, 친절한 해안 마을이다. 그냥 걸어서 돌아보아도 30분이 안걸리는 조그마한 마을이지만,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활기차고 여유롭게 느껴졌다. 순례길을 완주하고 나서의 일정이어서 그런지, 홀가분한 마음에 이제 순례객이 아니라 관광객의 심정으로 묵시아 곳곳을 감상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거리 곳곳에 꽃들이 깔려있었다. 얼결에 꽃길을 걸었다. 해안쪽으로 난 길을 걸어가다 보니, 바다를 향해 서있는 성당이 나왔고, 그 옆 바닷가 언덕에 갈라진 채 서있는 거대한 돌이 있었다. 햇살이 따사로와서 근처 바위에 누어서 살짝 단잠을 잤다.

묵시아는 참으로 예쁜 마을이다. 마을 곳곳이 어여쁘다.
저 두개로 갈라진 바위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을 전체의 랜드마크가 된다.
묵시아의 순레 표지판도 0km라 주장하고, 피스테라도 0km라 주장한다. 서로 순례길의 마지막이 자신들이라고 하는 듯 하다.
해변을 맞대고 있는 교회. 전설에 따르면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여기에 뿌려졌다고 한다.


먼저 순례길을 걸었던 믿음이가 추천해준 숙소인 Albergue da Costa는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너무도 깨끗하고, 좋은 숙소였다. 숙소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바다를 감상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휴식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려 했다. 그런데 해가 저녁 10시가 넘어서 졌기 때문에, 9시 30분에 다시 밖으로 나와서 동네를 거닐며, 해지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깨끗한 묵시아의 도로에는 하얀색 물감들이 곳곳에 무질서하게 칠해져있었다. 그 모습이 참 예뻐서 감탄이 되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그것은 물감이 아니라 갈매기가 싼 똥이었다. 해질 무렵, 갈매기가 하늘을 잔뜩 날고 있는 장면이 낭만적으로 보였었는데, 직접 경험하니 하늘을 가득 채운 갈매기의 비상 아래, 여러번 똥을 맞았다. 멀리서 보면 낭만적으로 예쁘지만, 가까이서 보면 똥으로 가득한 것이 인생과 비슷하다.

스페인은 해가 정말 늦게 진다. 밤 10시가 되어서 이러한 상황이라니, 참 신기했다.


순례길 마지막 종착지인 피스테라 행 버스가 주말에는 운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내일이 주말이다. 나는 다음 약속이 있기 때문에, 피스테라로 이동을 해야 한다. 거리를 따져보니, 묵시아에서 피스테라까지 31km 정도였다. 의도하지 않았건만, 교통편이 없어서 내일 다시 순례자 모드를 가동해야 한다.




사십춘기 방랑기 D+101일(2017.6.18) 스페인 in 묵시아 → 피스테라


아침에 되었고, 우리 숙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늦잠을 잤다. 모두들 하루 더 숙소에 머무르다가, 내일 차를 타고 피스테라로 이동한다고 했다. 오늘 피스테라에 가야하는 나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머무르던 숙소에서 혼자 빠져 나와서 길을 나섰다. 북쪽 순례길을 끝내면서, 100일간 신고 있었던 등산화를 버렸었다. 그후 가장 싼 운동화를 장만했는데, 이 운동화의 바닥이 매우 얇았다. 그런데 오늘 가야하는 길이 비포장 산길이다 보니, 발바닥이 제법 아팠다. 더욱이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가르쳐준 사람 때문에 1시간 반 정도를 헤매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길을 모를 때는 그냥 모른다고 해야 한다. 괜히 선의를 베풀다가, 더 곤경에 빠트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차량이 없어서 순례객 생활이 부활되었다. 등산화와 괜히 작별했나.


날씨는 매우 더웠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순례객들의 얼굴이 전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반대편에 걸어오는 익숙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북쪽 순례길은 걷는 사람이 많지 않고, 알베르게가 많지 않다 보니 한번 만난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될 때가 많다. 그런데 매우 시크해서, 함께 걷는 일행과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녀석(이름도, 출신도 모른다)을 2주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석도 나를 알아보고, 아는 채를 한다. 시크한 녀석이 반가워하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서로 포옹을 한 후, 헤어졌다. 역시 서로의 이름 따위는 묻지 않았다. 초지일관 시크한 녀석... 나도 귀국하면 시크해져볼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순례길의 마지막 여정은 쿨한 녀석도 들뜨게 하나 보다. 내가 이 쿨한 녀석과 사진을 찍게 될 줄이야.

북쪽 순례길의 시작은 이룬이다. 이룬에서 내리 5일 동안 산길이 이어진다. 온통 자갈 투성이어서 걷기가 힘들었다. 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묵시아에서 피스테라로 향하는 길도 제법 산길이고, 울퉁불퉁했다. 처음과 끝이 같은 양상일 때, 수미상관이라고 한다. 수미상관의 효과는 대체로 강조... 이런 측면에서 이룬에서 시작되어 피스테라에서 마감하는 순례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수미상관이겠다.


오후 5시가 되어서 피스테라에 도착했다. 순례길을 진짜 마지막을 뜻하는 조형물들이 작은 마을 곳곳에서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무언가 정말 순례길이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순례길을 마감하는 기분으로 제법 비싼 만찬을 내 자신에게 선사했다. 오늘로서 순례 생활을 종료한다. 일단 내일은 새로운 나라인 포르투갈로 이동한다.

순례객을 맞이하는 조형물들.. 그래, 마지막까지 걷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여기가 순례길의 진짜 마지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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