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산티아고 순례길
이베리아 반도의 북쪽 산악지역을 관통하는 북쪽길도 결국 콤포스텔로를 향한다.5주차 여정: 아바딘부터 콤포스텔라까지 걷기
사십춘기 방랑기 D+93일(2017.6.10) 스페인 in 아바딘 → 빌랄바
15일까지 캄포스텔라에 도착하고자 한다. 남은 시간과 거리를 따져보았을 때, 하루에 25km 내외를 이동하면 예상했던 기간 안에 순례길을 마칠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래서 별일이 없으면 길게 걷는 것을 자제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다음 숙소까지 20km가 조금 넘는 이동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숙소를 나설 때까지 늦장을 피웠다. 9시가 넘어서 숙소를 나서니, 때마침 마트가 열어서, 간단한 먹거리를 장만했다.
오늘 길의 시작은 번화가였지만, 금방 한적해지면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걷기에는 좋은 길이 계속되었지만, 이동을 감당할 만큼 내 무릎과 발목이 건강하지 못하다 보니, 여전히 쉬는 횟수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많다. 또한 그렇게 쉴 때는 그냥 아무 바닥에나 주저앉아 있다 보니, 다른 순례자들이 보기에는 내게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가 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상태를 물어보고,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응원의 말을 해주고 간다.
안드레와 나는 서로의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았다. 어차피 말이 안 통했기에, 그냥 각자 말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은 정말 말이 많다. 그도 그러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내게 다가온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수다스럽게 내뱉었다. 내가 안되는 영어로 되물으니, 그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표정을 봐서는 나를 걱정해주는 것이 분명했다. 매번 있던 일이니, 새로울 것이 없었다. 괜찮다고 손짓발짓을 하여, 그를 먼저 보내고, 나 또한 걷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배가 고파서 식당에 갔는데, 그가 앉아 있었고,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그와 합석을 했다.
식사 후에 잠시 동행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걸음이 빠르고, 나는 그렇지를 못해서... 다시 떨어져서 각자 걷게 되었다. 온전히 혼자가 되어서 한참을 걷다보니, 오후 3시 30분 되었다. 제법 피곤했기에 근처에 있는 알베르게에 찾아갔더니, 그가 닫힌 알베르게 입구에 앉아있었다. 더 움직이기가 싫어서, 알베르게 문이 열릴 때까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이 많다. 쉴 새없이 무엇인가 이야기하는데, 그는 정말 영어를 전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힘겹게 안되는 영어를 해도 어차피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냥 우리말로 말했다. 그러니 서로 자기네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했는데, 이상하게 뭔가 통하는 느낌이었다.
'뿔뽀'라고 불리는 이 문어다리 요리는 와인 도둑이다. 금새 취하게 만든다. 우리 둘다 취했고, 이 때부터는 서로 아무 말 대잔치였다. 안드레와 나는 서로 각자 말로 이야기했다
영어 이름도 만들었기에, 내 이름을 “앤드류”라고 소개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안드레아’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영어의 앤드류가 이탈리아에서는 안드레아가 되는 듯 했다. 일단 이름이 같으니까, 뭔가 친해진 느낌이었다. 알베르게가 열려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워있는데, 그가 찾아와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한참을 떨어진 식당을 찾아 갔다. 문어 다리로 된 요리를 시켜서 함께 와인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와인이라는 게 생각보다 빨리 취한다. 안드레아는 이탈리아말로, 나는 한국말로 연신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거의 못알아들었지만, 계속 떠들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서로 얼큰하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올 때는 팔짱을 끼고 돌아왔다. 내가 미쳐가지고, 이탈리아 사람에게 “오 솔레미오”를 길거리에서 불러줬다. 안드레아는 조용하라고 말리고. 이럴 때 상대가 남자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이 되었을까.
사십춘기 방랑기 D+94일(2017.6.11) 스페인 in 빌랄바 → 바몽드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
순례자들에게는 간혹 나타나는 순례길의 표지가 반갑다. 이제 이 표지가 순례길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나는 학교를 떠난 사람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몸담은 학교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특별한 학교였다. 그러나 내부고발 의인이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의 증언 이후, 사람들에게 비리와 특혜가 가득한 곳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는 그런 세상의 인식에 항변했지만, 이는 그냥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서 문제가 많은 직장을 변호하는 앞잡이로 간주되었다. 물론 이건 내 자의식 과잉의 영향도 있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삶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 수 없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정황적으로 한마디씩 하고, 그렇게 한마디씩 댓글을 달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오해가 싫었다. 나는 밥벌이를 위해서 학교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내부고발자라는 사람이 하는 말 속에 교묘하게 섞여 있던 거짓이 싫었기 때문에 그와 대립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학교를 편드는 사람이 된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학교를 편드는 사람의 스펙트럼은 넓었다.
학교 편에서 내부고발자와 싸웠던 또 다른 선생(아, 이 사람을 선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의 명백한 잘못이 드러났다. 길을 걷다가 식사를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관련 소식을 들었다. 이것은 가십이 아니라, 명백한 추문이고 팩트다. 맞아야할 매는 맞아야 하고, 중요한 것은 맵집을 키워야 한다는 법이지만, 입맛이 썼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착착함과 답답함. 흐린 하늘에게 부탁했다. 비나 한가득 내려주오.
사십춘기 방랑기 D+95일(2017.6.12) 스페인 in 바몽드 → 빌랄바
나는 이제 실업자다. 한국을 떠나서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쳐있던 나의 몸과 마음은 회복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한국을 떠나 있는 결정을 한 것을 아쉬워한 적이 없었으나, 어제와 오늘은 한국에 있지 못함이 아쉽고, 미안했다. 너무도 미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 또한 오지랖임을 안다. 나는 이제 선생이 아니다.
통신의 발달은 한참이 떨어진 곳에서도 연결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서 어제와 오늘은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생동감 넘치게, 활기차야 되는 계절이건만, 나의 자랑이었던 공간은 지금 깊은 아픔이 가득할 것이다. 자랑이었던 학교는 가십이 되어, 여기저기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 자랑스러운 학교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자부심이 사정없이 찢겼을 것이다. 그 자존심이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와 어른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클 것이다. 산산조각이 난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울음판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동료였던 선생님들이 아이들 앞에서 처참한 기분을 억누르고, 버티면서 수업하려고 안간힘을 내고 계시는데, 나만 그곳을 떠나서 편하게 지내고 있어서 미안하다.
그래도 이 말을 하고 싶다. 내게 학교는 자랑이다. 그곳은 내 젊음의 가장 찬란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그곳은 올바른 생각을 품고, 자유롭고 다양한 생각대로 미래를 펼쳐갈 나의 제자들이 꿈을 키운 곳이다. 나는 내 제자들이 자랑스럽다. 너무도 세찬 비를 맞고 있어서, 춥고 외롭고 힘들 터인데, 홀로 걷지 않기를 바라며, 먼 곳에서 응원을 바친다.
순례길을 같이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혼자 걷는 내게도 힘이 된다. 길은 혼자 걸을 수도 있지만, 같이 걸을 때 더 행복하다.
사십춘기 방랑기 D+96일(2017.6.13) 스페인 in 프리올 → 보이모르토
순례길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무리하지 않고 걸어도, 앞으로 3일이면 캄포스텔라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그곳에 도착한다고 해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지는 않음을 잘 안다. 그래도 무언가 마무리를 지어간다는 느낌이 좋다.
안개 속을 걷는 길이 구름 속의 산책길 같았다.
숙소를 나오자마자 안개로 둘러쌓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구름 속을 걸어본 적 없으나, 구름 속의 산책길 같았다. 걷다 보니 점점 안개가 심해지면서,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길이 끝이 어떠한지는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는 했으나, 바로 앞은 그래도 보였다. 그렇게 바로 앞을 향해서 걸음을 내딛다 보니, 그렇게 길을 찾아 가게 되었다. 꼭 모든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확인하면서 움직일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때는 겨우 겨우 바로 앞을 확인하면서 걸음을 내딛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나아가다보면 길이 열리게 될 수도 있다.
갑자기 안개가 끼면, 온 세상이 가려진다. 그렇게 가려진 길을 걸어야 할 시기가 우리에게는 반드시 온다.
그렇게 가다보니, 안개는 걷혔지만, 비구름이 몰려와 비가 되어 내렸다. 시원하게 비를 맞으며, 마음껏 길을 걸었다.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걷는 것이 제일인 듯싶다. 걸음에 따라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에는 걷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생각이 단순해지면서 맑아진다. 30km 정도를 걸었는지, 목표로 했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날씨는 아주 맑게 개었다. 씻고 나와서 창밖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Que sera, sera는 될 대로 되라 또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스페인어이다. 무책임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에 충실하자는 의미일터인데... 이 말을 걷는 동안 계속 반복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Que sera, sera
사십춘기 방랑기 D+97일(2017.6.14) 스페인 in 보이모르토 → 안디이나
어저께 머물렀던 알베르게가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단지 6유로에 이렇게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거 자체가 감격스러울 뿐이다. 덕택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기분 좋게 일어나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북쪽길의 특성처럼 조용하고 한적한 길이 이어지다가, Arzua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제법 큰 번화가였다. 오른쪽 발바닥의 통증이 예사롭지 않아서,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평상시와는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순례객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도시 자체에 순례객들이 넘치고 있었다. 지난 30일 동안 만났던 순례객 수보다 오늘 만남 순례객의 수가 더 많았다. 아마도 이곳이 프랑스길과 북쪽길이 만나는 지점이었던 거 같다.
순례길의 끝자락, 자연을 따라 걷는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쉼을 끝내고, 다시 걷기 시작하니, 나의 앞뒤로 걸어가는 순례객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북쪽길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있어서 잠시 설레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편해졌다. 프랑스길의 분위기가 대체로 이러한 거 같은데, 프랑스길을 선택하지 않고, 북쪽길을 선택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다. 북쪽길은 조용하고, 힘들고, 외롭지만, 그만큼 충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고 시끌시끌한 느낌이 재밌으면서도, 그게 내게는 무척이나 불편하고 힘들다. 그 불편함을 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면, 나는 금방 소진해버린다. 알베르게가 독방이 아니다보니, 걷는 길에서까지 만나는 사람이 많았다면, 나는 금방 지쳤을 것이다. 북쪽길이 내게 어울리는 길이었다. 적당히 사람이 있고, 조용한 길...
순례길 안내지가 이제 '콤포스텔라' 가까워졌음을 알린다. 이제 정말 바로 앞이다.
이런 모순적이고, 개떡같은 습성 때문에 삶이 이 모양이다. 혼자 있는 게 좋으면, 외로움을 안타면 되는데, 혼자 있으면 겁나게 외롭다.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게 힘들면, 같이 안있으면 되는데, 같이 있으면 겁나게 재밌다. 이게 말인지 똥인지...
늘 도시가 싫다고 이야기했었다. 사람 많은 강남이 너무 정신없고, 싫었다. 그래서 기회가 있으면 서울을 떠나서 농촌에서 목장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목장을 하면 안된다. 순례길을 걷는 도중에, 매일 수많은 목장을 보게 되는데, 내가 벌레를 너무 싫어한다. 벌레만 보면 기겁을 하겠는데, 목장의 소한마리에 벌레가 최로 50마리 이상씩 붙어있다. 목장을 못하겠다. 그리고 순례길에 산길이 많은데, 산길을 걸으며 또 깨달았다. 나는 자연상태의 산길을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산 속의 아스팔트길이고, 그곳에 차가 안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니, 나의 개떡같은 습성은 대도시의 혼잡함이 싫으면서도, 천연 그대로의 자연은 부담스럽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힘들면서도, 있었으면 좋겠으나, 너무 많으면 못견디겠고, 그냥 모순적이다.
사십춘기 방랑기 D+98일(2017.6.15) 스페인 in 안디이나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 있는 길 바로 옆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남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늦장을 피우고 있었는데, 창밖이 소란스러워 2층의 창문을 열어보니, 사람들이 연이어 알베르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면, 순례객들이 줄지어서 간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숙소에 더 누워있기가 뭐해서, 8시경에 짐을 꾸려서 나도 출발했다.
북쪽길에서는 볼 수 없던 관경이다. 사람들이 줄지어서, 연이어 걷고 있다. 이후의 여정은 정신이 없었다. 길은 걷기에 좋게 잘 가꾸어져 있었지만, 사람들이 하도 많다보니, 지나가는 사람 인사하는 것도 나중에는 귀찮아졌다. 북쪽길은 순례객이 귀하기 때문에 오가는 길에 누군가를 만나면, 꼭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로 챙겨주는 등 따뜻함이 느껴졌었는데, 산타아고 입성을 앞두고 순례길이 합류되는 길에서는 그게 어려웠다. 너무 사람이 많았다.
산티아고 입성을 앞두고 서있는 십자가 조형물. 순례객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 언덕을 내려가면 '콤포스텔라' 시내이다.
산티아고까지 가는 여정은 양떼의 이동과도 같았다. 길찾기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앞사람이 가는 대로 뒷사람이 쭈욱 따라가는 거대한 흐름이 계속되었다. 그 광경은 참 묘했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일에는 매력을 못 느끼는 변태 청개구리 심보가 불거져 나오려고 했다. 그래서 힘들지도 않은데, 흐름에서 빠져나와 혼자 쉬웠다 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늦장을 부렸지만, 산티아고는 가까웠다. 오후 2시 경이 되니, 산티아고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그곳에 있는 십자가 조형물에서 사진을 찍고...
산티아고 입장 전에 보통 여기서 사진을 찍는다. 시내를 향해 내려가자, 캄포스텔라에 도착했다. “별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라는데... 제법 운치있는 이름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러야 순례길의 여정이 끝나기 때문에 도시를 가로질러 걸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산티아고는 처음에 이름을 듣고 예상했던 고전틱한 도시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세련되고 번화한 도시였다. 도시 곳곳에서 엄청난 수의 순례객들이 보이고, 그만큼 알베르게도 많았다. 오늘만 특별히 순례객들이 많은 것이 아닐 터이니, 이 도시는 관광수입으로도 충분히 운영이 될 듯 했다.
순례길의 종착지에 도착했다. 여기를 지나면, 이제 그냥 시내를 걷는 셈이 된다. 산티아고 성당까지 걸어간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앞의 광장에 이르자,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거기는 졸업식장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여기저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서로를 축하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재밌었다. 내가 조금 더 붙임성이 있었으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겠으나,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조용한 사람이다. 성당 앞 광장에 누워서 왜 걸어왔는지 생각을 했다.
이 건물이 뭔지는 모르겠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여기도 그냥 성당인가...
사하라 레이스를 마쳤을 때랑 느낌이 비슷했다. 종료지점에 이르는 것 자체는 내게 별 의미가 없었다. 영혼이 뒤흔들리는 깊은 감동을 느낀 것도 아니고, 내 삶이 근원적으로 변화는 거 같은 하늘의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니다. 그냥, 누워있으니, 따뜻했고, 더 오래 있으니 뜨거웠다. 그뿐이다. 나는 인생의 결정적 시기라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도 서서히 변하는 것이고, 성장도 서서히 되는 것이다. 순례길의 여정이 내게 어떠한 여정을 끼는지는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을 통해 알게 되겠지.
산티아고 대성당 앞의 광장. 요일에 따라 완주자의 수가 달라지나 보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사람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벅찬 모습으로 사진들을 많이 찍는다.
신발을 벗고 광장에 누워 있었다. 내 발과 신발이 참 고생이 많았다.
순례길을 완주하면, 인증서같은 것을 받는 거 같은데, 어디서 받는지 몰라서 일단 그냥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오늘은 쉬도록 하고, 내일 다시 한번 성당을 가보자. 숙소에 출입구 옆에 적혀 있는 문구가 나를 반긴다.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울림을 준다.
행복은 종착지가 아니라 삶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