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 4주차

13th 국가: 스페인 17th 여정: 순례길 4주차(6.2-6.9)

by GTS

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산티아고 순례길


4주차 여정: 세브라유부터 아비딘까지 걷기



사십춘기 방랑기 D+84일(2017.6.2) 스페인 in 세브라유 → 히혼


스페인에도 우기가 있는 건가? 요 며칠 일기가 그러하다. 밤에도 비가 내리더니만, 아침에는 아예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방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우비를 입는 것이 오히려 불편했기 때문에, 가방의 내부에만 방수를 철저히 하고, 옷은 그냥 비에 젖도록 해서 길을 나선다. 이동하는 내내 기분 좋게 비가 내렸다.

비를 맞고 걷다가 보니, 신발이 젖었고, 서서히 다리가 아파왔다. 그래도 기분이 괜찮았다. 터벅터벅 길을 걷다보니, 산길이 끝나고, 도로를 만나서, 도로를 따라 걷게 되었다. 그런데 한 차가 내 앞에서 멈춘다. 그러면서 창문을 열고 힘드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타라고 한다. 나는 손짓발짓과 안되는 영어로, 온 몸이 젖어서 차 안이 더러워져서 안된다고 했는데, 그는 상관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늘의 목적지로 정했었던 “Gijon”이라는 곳 근처에 내려준다. 나는 이걸 지존이라고 읽었는데, 이 사람은 비음을 가득 넣어서, “히혼”에 가깝게 발음한다. 그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는데, 그는 오히려 나를 도우며, 자기가 더 신나보였다. 나는 스페인이 좋다.




사십춘기 방랑기 D+86일(2017.6.3) 스페인 in 히혼 → 아빌레스


여전히 하늘은 찌뿌둥하고, 산산히 가는 비를 뿌려서 습하다. 그래서 걷는 맛이 있다. 북쪽길은 산길이 많고,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어폰을 통해서 음악을 들었었는데, 지금은 그냥 볼륨을 키워서 음악을 듣고 있다. 빗소리와 산새소리와 어울어지면서 음악을 듣는 맛이 참 좋다. 그런데 음악을 한참 듣다가 보니, 담아온 음악이 한정적이어서 다소간 질릴 때가 있다. 그래서 10일 전에, 한 15년 전인가, 도올 김용욱이 논어에 대해서 강연을 했던 내용을 구하게 되어, 틈틈이 이 강연을 듣고 있다. 개인적으로 도올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순례길에서 도울의 강연을 들은 것은 잘한 일 같다. 제법 많이 배웠다. 특히 오늘 들었던 이 한 구절은 너무 좋아서, 귀국하는 대로 오른팔에 문신으로 새기고자 한다.


大樂必易 大禮必簡(대악필이 대례필간) 큰 음악은 반드시 쉬워야 하고, 큰 예식은 반드시 간단해야 한다. 예기(禮記) 악기편(樂記篇)에 실려 있는 이 구절을 통해서 불혹 이후의 나의 삶이 지향해야될 방향을 잡고자 한다. 너무 세상을 어렵게 살려고 했다. 쉽고 간단한 것의 아름다움을 배워보자. 강의를 들으며 한참을 걸었다.





사십춘기 방랑기 D+87일(2017.6.4) 스페인 in 아빌레스 → 엘 피토


3일간 내리던 비가 그치고, 흐린 날씨가 낮부터는 거짓말처럼 개었다. 그리고는 스페인의 뜨거움과 어울리게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쬔다. 걷기에는 흐리고 비오는 날씨가 편했지만, 그래도 이베리아 반도의 뜨겁게 내리쬐는 날씨는 뭔가 더 기운이 나게 만든다.


한참을 걷다가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다른 순례자가 지나가면서 아는 척을 한다. 그늘에서 쉬는 나를 향하여 그가 무언가를 바르라는 시늉을 했다. 맥락상 선크림을 뜻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그의 말을 따라 선크림을 바르기 위해 얼굴을 살펴보았는데, 얼굴을 비롯하여 어마어마하게 탔다. 아프리카부터 시작된 뜨거운 햇살이 스페인 순례길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니, 얼굴이 완전 구릿빛이다. 얼굴은 안경테 부분만 하얗다. 햇살이 쎄다고, 선글라스를 오래 쓰고 있었더니 이렇게 된 거 같다. 신발을 벗으니 신발을 신었던 분위만 하얗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도저히 구릿빛 피부를 하얗게 만들 수는 없을 거 같아서, 하얀 부분을 태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남은 여정 동안에는 선글라스도, 안경도 길을 걷는 동안에는 안쓰기로 했다. 그렇게 얼굴색을 보다가, 다른 신체부위의 색도 궁금해서 살펴보았더니, 다리는 정확하게 세부분으로 구분이 되었다. 일단 반바지를 입고 다녔기 때문에 반바지가 있는 부분은 하얗고, 그 아래 종아리 부분은 매우 검게 그을렸다. 그리고 발목양말 부분은 다시 하얗다. 이 또한 어떻게 통일할까 고민 중이다.


팔은 바깥쪽 부분은 완전히 검게 그을렸고, 안쪽부분은 하얗지만, 그 격차가 심하지는 않다. 문제는 상체이다. 바람막이를 순례길을 이동하는 내내 입고 있었더니, 이 옷이 덥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상체가 햇살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해주었다. 그런데 팔과 얼굴빛에 비해서 상체가 너무 하얗고 노랗다보니, 이 또한 통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순례길이 끝나고 나면, 3일 정도 해변에서 지내면, 나머지 부위도 태워서 균형을 맞추리라 마음을 먹었다.


알베르게가 38km 지점에 있다고 하는데, 그곳까지 가는 것은 내 걸음으로 무리였다. 다행히 호텔에서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알베르게 비슷한 형태로 방 몇 개를 운영했다. 그래서 10유로를 내고, 모처럼 호텔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별 하나짜리 숙소지만, 알베르게보다는 시설이 좋았다.




사십춘기 방랑기 D+88일(2017.6.5) 스페인 in 엘 피토 → 빌라페드레


길을 걸으며... 노래를 많이 듣는다. 양화대교하고, 아버지라는 노래를 듣다가, 울컥해졌다. 이미 뻔히 알고 있는 노래였는데, 왜 이 노래들을 들으며 이토록이나 눈물이 났던건지 모르겠다.


부모... 내가 절대로 알 수 없는 경지... 어줍지 않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부모님의 양육했던 방식에 대해 비판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겪고 있는 어떠한 심리적 불편함들은 부모의 현명하지 못했던 양육방식 때문이었다고, 내가 키웠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나의 부모님이 나를 양육했을 시절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내 나이 때의 부모님은 국민학교에 입학한 나를 키우고 있었다. 과연 나는 부모가 된다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이를 키워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심정... 나는 그 심정을 추측만 할 뿐이다. 무릎과 다리가 아파왔지만, 오늘은 멈추기가 싫었다. 계속 걷고 싶었다. 그래서 6시 무렵에 알베르게를 지나쳐가게 되었고, 알베르게 이미 도착해서 쉬고 있던 독일 친구가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손짓했지만, 그에게 계속 걷겠다고 이야기하고, 계속 걸었다.

계속 걷는 길... 참으로 해가 늦게 졌다. 저녁 10가 넘어서도 해가지지 않았다. 10시 30분 정도가 되어서,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11시가 되어서 어두워졌다. 정말... 엄청난 낮의 길이다. 해가 지고 나자, 인적이 없는 밤길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밤김을 걷는 것은 익숙했지만, 한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뭇 긴장이 되었다. 그렇게 1시간 째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렸다.

밤에 만난 비는 어떻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시간 정도 내리는 비를 계속 맞다가, 버스 정거장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가림막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피신해서 휴식을 취했다. 잠시 앉아 있으니, 온몸이 젖어서 추위가 밀려왔다. 추위가 점점 심해져서, 침낭을 꺼내서 덮었는데,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나는 참으로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 듯 하다. 어디서든 잘잔다. 원래는 야간에도 계속 걸을 생각이었는데, 아침 5시까지 그렇게 쪽잠을 잤다. 밤새 비는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했다. 바닥에서 찬기가 올라왔는지, 온몸이 쑤신다.

주위가 밝아졌다. 6시가 되니... 세상이 밝아졌다. 낮이 진짜 길다. 낮 17시간, 밤 7시간. 버스 정거장에 뜸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또한 짐을 다시 챙기고 걷기 시작했다. 어저께 생각보다는 길을 많이 걷지를 못했다.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다. 젖은 몸을 말릴 셈으로 길을 걷는다. 오늘은 피로를 풀기 위해서라도, 몸이 힘들어질 때 만나는 아무 숙소에서나 머물기로 각오했다. 오후 3시 30분이 되었을 때, 더 걷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알베르게가 아닌, 근처의 호텔로 들어왔다. 22유로. 일반 알베르게보다는 훨씬 비쌌지만... 오늘은 열심히 걸은 나에게 상을 주고자 한다. 숙소에서 이동한 거리를 따져보니, 65km를 걸었다. 생각보다 많이 걷지는 못했다. 이게 현재의 몸상태로는 최대치인 듯 하다. 여기서 회복하고, 다시 알베르게 생활을 시작한다.




나는 베드벅을 잘 몰랐었다. 베드벅이 빈대라는 것도 이번에서야 알게 되었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산간 다 태운다.”라는 속담을 이리 잘 알고 있었는데, 빈대가 베드벅이었다니....


암튼 이 빈대는 묘한 녀석이다. 이녀석이 출현하면, 인간을 흡혈한다. 한번 물으면, 모기와 비슷하게 부어오르는데,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근을 일자로 물고다니기 때문에 그 주위에 여러 곳이 폭격을 당하는 수준이 된다.


5일 전인가... 산 중에 있었던 알베르게에서 빈대에게 폭격을 당한 거 같다. 그 이후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몸 곳곳에서 벌레물린 자국이 생긴다. 아무래도 나의 배낭 어딘가에 빈대가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오늘은 빈대를 박멸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숙소 바깥에 배낭과 옷가지를 격리해 놓고, 옷 전부를 빨래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뜨거운 물이 펑펑 나왔기 때문에, 삶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옷가지 전부를 구분해서 빨고, 뜨거운 햇살에 마르도록 내다 걸었다.

그리고 빈대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가방 2개를 역시 빨았다. 온갖 흙과 먼지같은 것들이 가방 안에서 잔뜩 떨어진다. 그렇고보니 90일 가까이 이 가방이 애를 많이 썼다. 러시아에서 눈을 맞고, 사막에서 뜨거운 햇살과 모래바람을 맞고, 스페인에서 비를 맞고... 빨래만 1시간이 넘게 했다. 5시간 되었는데도, 아직 바깥은 환하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너무도 편안했다. 아...한번쯤은 알베르게를 벗어나서 이러한 숙소에서 머무는 것도 좋은 듯 싶다. 피곤이 쭉쭉 풀리는 느낌이다.


오늘은 그냥 숙소를 벗어나기가 싫다. 숙소에서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인다. 아... 정말.. 그림같은 곳이다. 여기서 머물기를 잘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알베르게 생활의 시작이다. 제발, 제발, 빈대가 사라졌기를.



사십춘기 방랑기 D+90일(2017.6.7) 스페인 in 빌라페드레 → 아카리다


오늘은 최대한 늦장을 부리다가, 10시 정도에 짐을 챙겨서 길을 떠났다. 어제까지 3일 연속으로 비가 내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날씨가 화창했다. 길을 걸을 때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 것이 뭔가 성취감같은 게 느껴지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이동 중에 그간 잘 사용해왔던 쓰리심의 데이터가 전부 소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남은 기간 사용할 유심을 또 장만을 할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버틸 것인지 고민하다가, 스페인 생활이 한 달 가까이 되다보니, 이제는 와이파이 잡으면서 생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례길을 마치고, 리스본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유심없이 지내고자 마음을 먹었다.


길을 걸으면서 딴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다보니, 갈림길에서 화살표를 못보고, 그냥 가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그러했다. 엄한 산속 길로 들어가서 한참을 헤매다가, 갔던 길로 돌아 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요 3일 간의 이동이 계속해서 634번 도로를 따라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쪽길은 약간은 인위적인 요소가 있다. 순례길은 일반 도로와 구분되어야한다는 강박때문인지, 바로 앞의 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산길을 타고 뱅뱅 도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무작정 산길로 이동했는데, 이제는 순례길도 요령이 생겼난보다. 최종 목적지를 살펴보니, 634번 도로에 있었다. 그래서 순례길 표시를 무시하고, 643번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러면서 마음껏 딴 생각을 해보리라. 634번 도로 옆의 갓길은 충분히 넓었고, 크게 유명하지 않는 도로여서 그런지, 왕래하는 차들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참 만족스럽게 걸었다.



사십춘기 방랑기 D+91일(2017.6.8) 스페인 in 아카리다 → 아비딘

팔자에 로맨스가 없다보니, 이미 알고 있던 제자를 만난 것은 제외하고, 고된 생활에 딴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던 사하라 레이를 제외하면, 나는 90일간의 여정 중에서 아주 짧게라도 한국인 젊은 여성과 대화라는 걸 나눠본 것이 딱 2번이다. 첫 번째 만남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새벽에 화장실을 이용하다가 똥싸는 소리만 실컷 들려주고 민망하여 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냈었다. 두 번째로 만난 한국인 여성은 동양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북쪽길을 걷기 시작한지 30일 가까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사람으로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다. 다만, 그분은 워낙 영어를 잘해서 외국인들과 잘 어울리는 통에 같이 말을 섞을 기회도 없었다. 아침이 되어 외국인들과 함께 한국인 여자분은 떠났고, 언제나처럼 나는 혼자서 길을 나섰다. 아놔... 내 삶이 그렇지 뭐...


다음 숙소가 멀지는 않았다. 천천히 천천히 늦장을 피우면서 걷다보니, 오후 3시 경에 풍경이 예쁜 Rebadeo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보니, 빈자리가 없었다. 뭔가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면, 어딘가에 자리가 만들어질 것도 같았지만, 그냥 그러기가 싫었다. 그래서 어딘가에 있을 다음 숙소까지 그냥 걷기 시작했다. 이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걸었다. 숙소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밤을 새서 걷는 것을 택했다. 걸으면서 확인해보니, 해안을 따라 이동하던 카미노 북쪽길이 도착지점인 캄포스텔라를 향하면서, 해안길을 떠나 내륙을 향하게 된다.

그렇게 해안길과 작별을 할 때 즈음에 어두워졌다. 길을 걸을 때마다 항상 우측으로 보이던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 어색했다.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금새 어두워졌다. 도로와 맞닿아 걸어야했기 때문에, 어두워진 후에 길을 걷는 것이 위험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노숙을 택했다. 적당한 버스 정거장을 찾아서, 잘 준비를 했는데... 바닥의 냉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다. 다음 노숙 때는 바닥 냉기를 막을 수 있는 깔개를 준비해볼까한다.



사십춘기 방랑기 D+91일(2017.6.9) 스페인 in 아카리다 → 아비딘


아침이 되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흐렸던 날씨로 비가 내렸다. 노숙하고 씻지 못한 나를 위해 하늘에서 샤워기를 틀어준다는 생각에 시원하게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내리던 비가 그치고, 금방 햇살이 뜨거워졌다. 온 몸과 지면이 금방 마르면서, 땀내가 물씬 났다. 긴시간 동안 걷고 있다보니, 쉽게 지쳤다. 그래서 자리에 주저 앉아서 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캄포스텔라가 점점 가까워지다보니, 순례객들이 확실히 많아지고 있다.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이 쉬고 있는 나를 걱정한다. 얼굴들이 익숙하지 않은 걸 봐서는... 새로운 사람들이다. Long Day를 두 번에 걸쳐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을 따라 잡은 듯 싶다.


오늘은 일찍 숙소에 도착해서 쉬고 싶었는데, 적당한 숙소가 찾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걷다보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때 길에서 발견한 낙서 하나가 웃게 만들었다. Let’s go pilgrim. You are sexy. 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내가 섹시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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