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 → 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 → 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북쪽길은 이베리아 반도 북쪽 해안을 따라 걷는다.
3주차 여정: 산탄데르부터 세브라유까지 걷기
사십춘기 방랑기 D+79일(2017.5.27) 스페인 in 산탄데르 → 산티야나 델 마르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비가 내렸다. 무릎 주위가 얼얼해서 섣불리 걸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이틀 전 같은 숙소에서 머물렀던 한국분 부부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떠올렸다. 지금 머물고 계신 숙소가 마음에 들어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하셨다는 메시지였다. 그렇다면, 나도 이분들이 추천해주신 숙소까지 이동해보자. 거리를 따져보았더니 42km였다. 내 몸 상태로 전부 걷기는 힘드니 버스를 타고 30km 정도를 점프해서, 인근 도시까지 이동해서 걷자. 그렇게 하니, 오후 2시경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틀 전 숙소에서 만났던 한국인 순례객 부부. 두 분께서는 외롭게 길을 걷는 나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와인을 좋아하지 않았서 주량을 몰랐었다. 와인은 먹다 보니, 순간 훅, 취하게 된다.
내가 머물게 된 알베르게는 문을 연지 겨우 4일이 되었다고 했다. 시설도 매우 좋았고, 도시의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문제는 나의 체력인지라, 그대로 쓰러져서 2시간 정도 잠들어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 앞서 도착하신 분들을 뵙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혼자 외롭게 떠돌고 있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저녁만찬을 준비해서 나를 초대해주셨다. 두 분 덕택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두 분께서 해주신 이야기는 삶이라는 여정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을 걸으며,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도움을 받았었기 때문에, 이번에 길을 걸으면서는 만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혜자가 이번에는 내가 되었다. 이분들의 보살핌 덕택에 마음이 매우 따뜻해졌다. 사랑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다. 보살핌에 감사한다. 이분들과 함께 먹다보니, 와인이 달았다. 와인으로 취하면 이런 느낌이구나. 세상이 몽롱해졌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와인의 위력은 엄청났다. 밤새 괴로워하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아침에 먼저 출발하시는 두 분을 배웅하고, 침대로 올라와서 다시 쓰러져 잠들었다. 눈을 뜨니까 9시가 넘었다. 더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래서 숙소 주인에게 1박을 더 하겠다고 이야기한 후, 다시 쓰러져서 잠들었다. 그렇게 12시까지 쓰러져 있다가 일어났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숙소 밖으로 나오는 내게 숙소 주인은 자신들이 준비한 음악회를 소개한다. 알베르게 문을 연 기념으로 오늘 저녁 6시에 알베르게에서 음악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오늘 일정은 전무했기 때문에 흔쾌히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오후 5시까지 잤다.
이 사장은 평생의 꿈이었던 알베르게를 개업했다고 아주 신이 났다. 그래서 주최한 음악회에 나에게 꼭 오라고 한다.
5시 30분부터 음악소리가 났다. 음악회를 떠올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이미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었다. 알베르게에 머무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근의 사람들인 거 같았다. 음악회는 한 신부님의 연주회였다. 이분은 다양한 종류의 피리들을 연주하시는 분이셨는데, 그 피리들의 모양도 다양했고, 그 음색들도 특이했다. 몇개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금과 같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전무한 문외한이다보니, 이렇게 악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표현할 수 있는 분들을 보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백발의 노신사가 연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너무 매력적이다.
음악회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피리 연주를 해주신 신부님. 그 미소가 참 인자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사진을 찍어드릴까요?”라는 우리말이 들렸다. 놀라서 쳐다보니, 낯이 익은 분이 계셨다. 누구실까...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다. 조용히 말씀하신다. "지하 엄마에요." 와, 하나고에서 선생을 했을 때 지도했던 제자의 어머님이셨다. 나는 지하가 1학년 때 담임이었다. 하나고 5기 지하는 책을 좋아하고, 차분하며 생각이 깊은 학생이었다. 지하의 자소서를 지도하고, 추천서를 작성했었는데, 다행히 지하는 서울대 미학과에 합격했다. 알고 보니, 자녀의 수험생활 기간 동안 함께 수험 생활을 보내셔야 했던 지하의 어머니는 딸이 대학생이 되고 나자, 자신의 삶을 돌이키보기 위해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북쪽길에서 제자의 스승을 만난 것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뵙게 되다니... 정말 세상은 좁다.
아끼던 제자의 어머님과 북쪽길에서 만났다. 반갑고, 신기하다.
사십춘기 방랑기 D+81일(2017.5.29) 스페인날 in 산산티야나 델 마르 → 코미야스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온땅이 젖어있었고,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가득했다. 이틀 만에 다시 걷기 시작하는 길... 신발이 문제일까, 발이 문제일까... 역시나 쉽게 피로가 온다. 다행인 것은 이제 순례길을 걷는 내 적정 속도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리가 되지 않게, 다리를 달래면서, 그러면서도 제법 걸을 수 있었다.
북쪽길의 좋은 점은 바다뷰와 산뷰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 많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전원생활이란 이런 곳이다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북쪽길을 걷다가 만나는 풍경은 매우 풍요로운 농촌의 모습이다. 집들도 훌륭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서울이 부담스러웠는데... 북쪽길을 걸으면서, 농촌에서 목장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이겠지만. 걷다 보니... 구름이 잔뜩 끼었던 하늘이 비를 뿌렸다. 가방안에 옷들과 전자기기들의 방수를 철저히 하였기 때문에, 내리는 비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리는 비를 길동무 삼아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비오는 날 물안개가 낀 풍경은 너무도 신비롭다. 해안을 맞닿아 걸어가는 동안, 몇번의 감탄을 하게 된다. 정말... 북쪽길은 아름답다.
길을 걷다보면, 소들이 바로 옆에서 풀을 뜯고 있다. 울타리도 없이 이렇게 방목하는 소들... 여유로운 풍경이다.
순례길을 17일째 걷고 있다. 오늘은 5월 28일이다. 6월 23일 경에는 리스본에 도착해야 한다. 하나고 1기 제자인 현재가 방학을 맞아 유럽 여행을 온다고 해서, 동행하기로 했다. 남은 시간을 따져보니 23일 정도이다. 하루에 25km 정도를 걸으면,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나의 속도이다. 내 몸이 해야할 과제를 이렇게 정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길을 따라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 여정의 종착지인 코미야스에 도착했다.
사십춘기 방랑기 D+82일(2017.5.30) 스페인 코미야스→ 콜롬브레스
오늘 걸은 길은 풍경이 예쁜 북쪽길의 그간 여정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예뻤다. 특히 San Vincent라는 이름의 항구도시는 그 위치와 풍경, 오가는 길..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깝게 아름다웠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가 절로 생각날 정도로..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이 무엇인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이곳에 머무르면, 이 풍족한 생활을 잠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San Vincent는 어제 묵었던 곳에서 불과 10여 킬로 떨어진 곳이어서, 이곳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산 빈센트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걸음을 멈추고, 하루 머무르며 놀고 싶은 만큼 예뻤다. 그러나 혼자 마음이 급해서 계속 길을 떠났다. 왜 그렇게 걷기만 했던 걸까.
갈림길에서 한참을 고민을 하다, 콤포스텔라에 6월 18일까지는 도착해야 된다는 생각에, 더 걷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여유로움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후로 산길이 시작되었고, 흐리던 날씨가 개어서 뜨거운 햇볕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목표지점으로 삼고 찾아왔던 Colombres라는 예쁜 마을의 아름다운 알베르게는 가는 날이 장난이라고, 문을 닫고 운영을 안했다. 저녁 6시가 넘어가는 시간... 다음 알베르게까지 이동할 엄두는 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인근의 호스텔을 잡고 들어왔는데, 가격은 알베르게의 5배 정도이고, 시설은 별로이지만, 주인이 밝은 사람이어서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었다.
햇살은 뜨거우지고, 산빈센트를 지나고 나자 길은 산길이 된다.
휴식을 취하며, 순례길 이후의 여정을 고민했다.
첫번째, 다시 아프리가로 간다. 아마도 동선은 '르완다-우간다-케냐' 정도가 될 것이다. 체코에서 만났던, 르완다에서 선교 중인 전도사님의 초정이 있어서, 일단 르완다를 가면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문제는 비행기표가 어마무시하게 비싸서, 부담이 되었고, 다음 여행지로의 이동도 영 불편했다.
두번째, 이스라엘로 향하여 성지 투어를 해본다. 도착한다면, 7월 초인데 일단 너무 덥고, 투어비가 별도로 60만원 정도 들어가서, 이 또한 부담스럽다. 나는 돈이 부족한 실업자가다.
세번째, 7월 중순 인도 도착하기 전까지 그 사이의 나라를 거친다. (터키-코카서스 3국-두바이-인도) => 일단 앞의 두곳에 비해 비행기표가 싸며, 이동 동선이 매끄럽다. 이 3가지 방안을 고민하다가.... 세번째 일정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아프리카를 다시 못가는 것은 많이 아쉽다.
사십춘기 방랑기 D+83일(2017.5.31) 스페인 콜롬브레스 → 라 페사
어제 머물렀던 호스텔의 주인이 아침을 제공해주면서, 순례길을 걷는 도중에 먹으라며, 자신이 만든 카스테라 비슷한 빵을 챙겨준다. 알베르게가 문을 닫아서 갑작스레 찾게 된 호스텔이고, 덕택에 비용이 한참이나 많이 소유되었지만, 정이 많은 주인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 주인은 나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유독이나 어려워했다. "성호"라는 이름이 뭐가 어려운지 모르겠으나. 그래서 영어식 이름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산길을 걸으며, 이름을 찾았다. 그렇게 정한 이름은 Andrew이다. 나는 성경인물 중에서 "안드레"를 가장 좋아했다. "안드레"는 많이 유명한 사람은 아니다. "안드레'보다는 그의 형제 '베드로'가 유명할 것이다. 그런데 이 '베드로'를 예수께 소개한 사람이 바로 '안드레'이다. 이 사실이 사춘기 시절부터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최고가 될 사람을 기꺼이 안내하고, 기꺼이 그 다음이 되는 위치로 내려올 수 있는 사람. 안드레의 영어식 표현인 Andrew이다. 성이랑 함께 부르면 약간 중복되는 느낌이 있어서 애매하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이 성까지 함께 부를 일은 없을 거 같아서, 그냥 이렇게 정했다. 오늘부터 나의 풀네임은 Sungho Andrew Ryu이다.
북쪽길 안내 어플에도 나오지 않았던 '알베르게' 주인 아저씨는 알베르게를 예쁘게 운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기꺼이 순례객들과 손꼽놀이를 하듯이 지내는 사람이었다.
비가 추적내리기 시작했다. 산 중턱을 오르던 중, 다소 뜬금없는 위치에 있는 알베르게를 발견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카미노 북쪽길 어플에서는 나타나있지 않은데, '알베르게'라고 한다. 침대는 40개가 넘게 있었으나, 머무르는 사람은 나까지 포함해서 겨우 2명뿐이었고, 침구류는 전혀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 눅룩함 그자체였다. 그러나 그 모든 불편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 모를 알베르게는 즐거웠다. 알베르게의 주인장과 나를 포함한 2명의 순례객은 마치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함께 요리를 하고,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즐거움에는 쾌적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분명 중요하다. 그런데 그 모든 조건들이 누락된 상황에서도 사람과의 관계 만으로 즐거움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순례객 언니의 주도로 우리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파스타와 빵이 전부였지만, 식사 시간 내내 즐거웠다.
십춘기 방랑기 D+84일(2017.6.1) 스페인 라 페사 → 세브라유
산 중턱에 있는 이름 모를 알베르게에서 그렇게 소꿉놀이처럼 시간을 보낸 후, 아침에 작별을 하고 길을 나섰다. 아침에 일어나니 모기가 문 것처럼 몸 곳곳이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벌레에 물린 것이다. 이게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처음에는 모기가 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부위가 아니라 마치 줄 따라서 나란히 여러곳이 부풀어 올라서 가렵다.
길을 걷는 내내 비가 왔다. 가방 안에 충분히 방수를 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비를 맞았다. 산속 길을 2시간 정도 걸으니, 제법 번화한 곳에 도착했고, 그곳 슈퍼에서 대강의 음식을 산 후, 벤치에서 식사를 했는데, 쉬다 보니 추위로 인해 몸이 떨렸다. 그렇게 한번 추위가 오고 나니, 컨디션이 나아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비를 핑계 삼아 Colunga까지 20km 정도를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깜빡 잠이 들었다. 잠든 나를 기사가 깨워줬다. 확실히 스페인에서 동양인이 흔치 않다보니,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챙겨 준다.
북쪽길을 걷다 보면, 이러한 낙서를 종종 보게 된다. 혐오스런 낙서가 아니라면, 조금은 이렇게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 반갑다.
아침에 10km 정도를 걸었고, 중간에 버스로 20km 정도를 이동하고 보니, 그래도 명색이 순례길인데... 버스로 이동한 것보다는 더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내리는 빗속을 걸었다. 버스에서 쉬면서 몸 컨디션을 돌아와서 제법 걸을만 했다. 몸 컨디션이 돌아오고 나니, 다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가, 고가 다리 밑을 지나다가, 누군가가 써놓은 낙서를 보게 되었다. “Live a Life.”
순례길 중에는 종종 경구를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구에 가끔씩 심장이 쿵쿵 거릴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Live a Life.” 삶을 살아라. 길을 걷는 동안 계속 이 말을 되내였던 거 같다. 그 의미는 아직 모르겠으나,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빗줄기는 거세졌다가, 약해졌다가, 그쳤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산길 주위로 목장이 펼쳐 있었다. 목장길을 따라 걸으며, 삶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보니 알베르게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