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 2주차

13th 국가: 스페인 17th 여정: 순례길 2주차 5.21-5.26

by GTS

그간의 여정(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의 여정(매일 걷는다). 북쪽길은 산지가 많다.


2주차 여정: 라라베주부터 산탄데르까지 걷기



사십춘기 방랑기 D+73일(2017.5.21) 스페인 in 라라베주 → 빌바오

빌바오로 가는 길. 빌바오는 북쪽길의 여정에서 지나는 제법 번화한 도시이다.


순례길의 좋은 점은 매일의 삶이 거의 똑같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고, 길을 걷고 또 걷다가, 알베르게를 만나면 짐을 풀고, 씻고, 숙소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본 다음에 다시 잠들고, 다음날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러다보니까, 조급한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거 같기도 하다. 그냥 오늘 할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내일 하자. 이런 심정을 연습하게 된다.


그래도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서 한참이나 뒤쳐졌음을 뜻한다. 나만큼이나 잘 걷지를 못해서, 어쩌다보니 3일째 같은 알베르게에서 머물고 있는 마가레티나(?)라는 여학생은 나를 볼 때마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거냐?”고 물어온다. 그러고서는 내가 어디까지 간다고 하면, “너를 아는데, 거기까지 못갈거야”라고 핀잔을 준다. 이 어린 녀석과 라이벌이 된 건가.


오늘은 조금 더 많이 걸을 생각이었는데, 뜨거운 햇살에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그만 걷기를 포기했다. 그래서 오늘도 꼴랑 10km를 조금 더 걷고서, 숙소에서 쉬고 있다. 순례길 기간을 40일로 예상했었는데, 더 늘려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간 나는 걷는 것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사하라 레이스와 순례길을 걸으며, 내가 잘 걷는다는 것이 착각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잘 걷는 사람이 아니다. 40년 만에 나에 대해서 바로 알았다.




사십춘기 방랑기 D+74일(2017.5.22) 스페인 in 빌바오 → 포베냐


오늘은 먼길을 걸어보리라 굳게 마음을 먹고 숙소를 먼저 나섰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길눈이 어두운 인간이었다.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그 길 잃어버리기 어렵다는 순례길에서 정신줄을 놓고 걷다가 깔끔하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엄한 산을 하나 넘고, 두 번째 산을 넘어가려는 찰나, 뒤에서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아침 산책을 나온 2명의 사람들이었다. 스페인말을 전혀 못하지만, 카미노라는 말을 알아들었고, 그들이 하는 모션을 통해서 내가 길을 완전히 잘못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가끔씩 나타나는 이정표들. 목적지를 상기시켜준다. 산티아고까지 710km 남았다니.. 멀다.


그래서 결국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출발지로 돌아오니 딱 2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빌바오를 떠나서 다음 목적지인 포베냐를 향했다. 포베냐는 어저께 꼭 가겠다고 다짐한 곳이었다. 거리는 31km, 여태까지 걸었던 거리 중에서는 제일 긴 거리였다. 다행인 것은 처음을 제외하고는 산길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가 자전거 전용도로 옆으로 함께 난 도보길을 따라서 걷는 길이었다. 그래서 걷는 거 자체는 수월했다.

문제는 나의 다리였다. 통증이 심해져서, 조금 걷다가 퍼져서 쉬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사하라 레이스가 끝나고 나서부터 계속되던 한 증상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리가 저린 거였다. 걸을 때마다 발끝이 저렸다. 이 불편감에 한탄하다가 불현 듯,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는 작년에 대장암 수술을 하셨다. 대장암 3기셨던 아버지는 참을성이 강한 양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직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셨었다. 태산같던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듣는 것은 여러모로 무서운 일이었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나고, 6개월에 걸친 항암치료도 잘 견디셔서, 지금은 일차적으로는 완치판정을 받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불편감을 갖고 계시는 증상이 있는데, 손발이 저리다는 것이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2달에 한번씩 정기검사를 받기 위해, 담당의사를 만날 때마다 아버지는 “손발이 찌릿찌릿 저려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의사는 항암제 투여로 인한 당연한 증상이기라고만 했다.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가뜩이나 대화가 없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이다 보니, 그 때부터 아버지와 나의 대화에는 손발 저린 이야기가 습관처럼 들어갔다. “손발 저린 건 어떠세요?” “아직도 저려.” 아버지는 늘 손발이 저리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어떤 불편함인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오늘 길을 걸으며, 손발이 저리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고, 어떠한 불편함인지를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이렇게 저린 팔과 다리로 오늘도 아파트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셨을 것이다. 숙소에 6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오늘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살짝 울컥한다.




사십춘기 방랑기 D+75일(2017.5.23) 스페인 in 포베냐 → 엘 포르탈론


한국을 떠나있기에 소식에 있어서는 다소 둔하게 된다. 예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일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200일간 한국을 떠나있기를 선택한 것도 사실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다만, 여행과 동시에 시작한 페이스북은 한국의 소식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하여 오늘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일임을 알게 되었다. 벌써 8년이나 되었다. 8년 전, 그날의 슬픔과 그 눈물의 기억하고 있건만, 나는 그 날짜를 매번 잊는다. 망각이 나의 장기인 것처럼 잊는다. 몇몇 사람들의 추모글이 아니었다면, 올해는 완전히 서거일을 잊었을 거 같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근사한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길을 걷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기보다는 멋진 사람으로서의 모습이다. 삶의 의미는 ‘-것’이 아니라 ‘-함’에 있다는 이야기를 대학생 때 듣고, 그러한 삶을 꿈꿨었다. 인간 노무현 같은 선생이 되고 싶었다. 아직까지는 신통치 않지만,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도해보련다.




사십춘기 방랑기 D+76일(2017.5.24) 스페인 in 엘 포르탈론 → 산토냐


순레길로 유명한 곳은 프랑스길이라고 한다. 보통 여기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프랑스길을 걷지 않고, 곧장 북쪽길을 택하여 걷고 있다. 그런데 북쪽길에 오는 이들은 보통 2번째 순례길인 경우가 많다. 10일이 넘는 여정 동안 북쪽길을 순례길로 처음 걷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북쪽길은 매니아틱한 측면이 있다. 길은 걷는 동안 사람을 만나는 것이 빈번하지 않고, 거의 대부분 혼자 걸을 때가 많다.


70일이 넘게 집을 떠나서 떠돌아다니다보니,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었다. 특히 이집트를 경험하고 나서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항상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북쪽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도 친절했다. 내가 뭐라고, 길을 묻던가, 알베르게를 물으면, 아주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고, 응원해줬다. 처음에는 여기에 무슨 저의가 있는지 의심했었는데, 북쪽길을 10일 정도 걷다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건 여기 사람들에게 내가 무척이나 기특해 보였던 것이다. 북쪽길을 걷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양인들이다. 10일이 넘는 여정 동안 동양인을 딱 4명 만났을 뿐이다. 서양인 대 동양인이 99대 1정도의 비율이다. 그렇다보니, 북쪽길을 걷는 동양 순례자들은 그 자체로 주목받는다. 그리고 그 주목은 대부분 응원의 양상을 띠고 있다. 마치 서양친구가 우리나라 판소리를 배운다고 국악원에 다니고 있다면, 그 모습이 무척이나 기특하게 보이는 것처럼, 동양인이 순례자가 되어 북쪽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기특했는거 같다.

북쪽길을 걷는 동양인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따듯한 환대를 받는다.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흐뭇한 표정으로 날 지켜본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너무도 어색했는데, 이제는 인정하려고 한다. 나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참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




사십춘기 방랑기 D+77일(2017.5.25) 스페인 in 산토냐 → 구에메스


뜨겁다. 여기는 하루가 참으로 길다. 아프리카보다 훨씬 뜨겁고, 무엇보다 해가 길다. 나미비아에 있었을 때, 해가 저녁 6시를 넘으면 져서, 랜턴이 있어야 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해가 9시가 넘어야 진다. 9시까지는 여전히 밝고, 10시 정도가 되어야 어둑어둑해진다. 처음에 적응이 되지 않던 시간 개념에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다.


걷는 거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요즘은 25km 전후로 하루 할당량을 정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휴식 시간이 긴 편이다. 걷다가 그늘이 나오면, 20분이고 30분이고 쉬었다가 이동할 때가 많다. 그렇다보니 아침에 8시 정도에 출발한다면, 대략 3시에서 4시 사이에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오늘도 그러했다. 오늘 하루는 너무도 뜨거웠고, 땀을 있는 대로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드디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언덕 중턱, 근처에 아무런 슈퍼마켓도 없는 곳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알베르게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콜라를 사서 먹는 것이 나름의 휴식법이었기에, 다소 황량한 곳에 있는 알베르게의 위치가 아쉽지만, 이곳을 더 지나서 다음 알베르게까지 갈 엄두가 안났기 때문에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구에메스에 있는 이 알베르게는 매우 특이하다. 꼭 한번 머물기를 권한다.
알베르게의 주인은 순례자들과 파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알베르게 곳곳에 이러한 흔적들이 가득하다.
3층 침대는 본 적이 없다. 내 침대의 위치는 다행히 2층 침대였다. 엄청난 규모의 숙소. 원한다면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렇게 머물게 된 알베르게는 제법 특이한 곳이었다. 식사는 꼭 같이 해야 하며, 저녁 7시와 아침 7시에는 다같이 모여서 오리엔테이션같은 것을 한다고 했다. 이것저것 고려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원칙에 동의하고,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했다. 샤워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알베르게를 둘러보니, 이 알베르게는 그간 머물렀던 알베르게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숙소도 시설도 과연 최고 수준이었다. 숙소의 규모가 크다보니, 아주 모처럼 한국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매번 혼자말만 하다가,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기쁨이었다. 부부가 함께 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멋지고, 부럽다. 캄포 스텔라까지 걷는다고 하시니, 가는 여정에서 꼭 다시 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 어머님과 페이스북 주소를 교환했는데, 순례길을 걷는 동안 계속 연락을 나누게 되었다.


알베르게의 주인은 순례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인 듯 했다. 전체 순례자들에게 알베르게의 특징과 순례 코스에 대해 안내를 하고, 저녁식사 시간 때는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과 와인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그 모든 비용은 직접 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기부금 박스에 넣으라고 했다. 저녁 식사시간에 전체 순례자들이 모였다. 30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서로 말들은 안통하지만, 일단 와인이 들어가고 나니, 서로서로 되든 안되는 이야기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확실한 것은 이 알베르게의 주인은 이러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알베르게를 통해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행복해 보인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궁금하다.




사십춘기 방랑기 D+78일(2017.5.26) 스페인 in 구에메스 → 산탄데르


후덥지근한 날씨다. 오늘은 가까운 해양 도시인 산탄데르까지만 이동해서 머물 생각을 하였다. 산탄데르에 가기 위해서는 Somo라는 항구로 이동해서 페리를 타야했다. Somo까지 가는 길은 쉬웠다. 다리가 불편하더니만,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빠졌다. 사하라 레이스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 이제서야 빠진 것이다. 사하라 레이스가 끝난지 3주가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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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에서 페리를 타고 산탄데르로 들어 간다. 페리 안에서 순례객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Somo의 선착장에 도착하니, 산탄데르로 떠나는 순례자들이 제법 있었다. 오가면서 한두번씩 만났던 이들이어서 새삼 반갑다. 다리 통증 때문에 잘 걷지 못해서 산탄데르에 머물기로 한 캐나다 친구(이름을 들었는데.. 까먹었다)와 함께 숙소를 향했다. 긴 장발의 이친구가 예수님을 닮아서... 왠지 친근한 느낌이다. 이 친구 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산탄데르에 이틀간 머무른다고 한다. 이 친구와 산탄데르 알베르게에 들어왔다.


예수님을 닮은 친구. 무릎을 다쳐서 잘 걷지를 못한다. 이 친구와 함께 산탄데르 알베르게에 머물렀다.

머리 스타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제법 길다보니 덥기까지 했다. 그래서 숙소 주변의 미용실을 찾았다. 그리고 손짓발짓으로 시원하게 잘라달라고 했는데, 미용사 친구가 무언가 버벅거리는 느낌이었다. 매우 열심히 하는데, 답답한 느낌, 이러한 내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이야기했다. 자기네는 미용실이 아니고, 미용학교라고, 미용실습을 겸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알았다고 하자, 모처럼 만나는 동양인 두상 실습에 그곳에 있는 친구들 상당수가 내 주위로 몰려들었고, 그렇게 다같이 토의하면서 내 머리를 잘랐다. 3시 30분에 시작한 작업이 5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운영 방식이 신기했다. 실습생들이 방문객들의 머리를 자르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2명의 선생님께 묻는다. 이 선생님은 실습생들을 지켜보다가, 조언을 해주고 그 녀석들이 실수를 저지르면, 수습해주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내 머리를 담당한 친구의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어서, 선생님이 많이 와서 뒷처리를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머리는 점점 짧아졌다. 어차피 시원한 것을 원했으니, 그냥 잘 된일이라 생각하련다. 그렇게 머리를 자르고 5.8유로를 지불했다. 싸게 잘 잘랐다고 생각하련다.

머리가 급 짧아졌다. 뭐, 그냥 시원하니까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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