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 1주차

13th 국가: 스페인 17th 여정: 순례길 1주차 5.13-5.20

by GTS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⑮ 남아공 케이프타운⑯ 나미비아 나미브사막⑰ 스페인 바르셀로나 → ⑱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스페인 북부 해안과 산안지역을 걷는 여정이다.


1주차 여정: 이룬부터 라라베주까지 걷기



사십춘기 방랑기 D+65일(2017.5.13) 스페인 in 이룬


찌뿌둥한 몸상태는 여전하다. 그래도 이룬으로 향했다. 이룬역에 내려서, 잠시 가야할 곳을 잃었다. 순례길을 걷는 경우 '알베르게'라는 순례자 숙소를 이용한다는데, 시작점이다보니 모든 게 익숙하지 않다. 일단 '알베르게' 찾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알베르게', '알베르게'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이룬의 알베르게. 여기에서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된다.


'알베르게' 사무실에서 필요 서류를 작성했다. 웃는 모습이 귀여운 알베르게 주인 할아버지는 환영한다며 안아주고서는 통행증을 만들어 주며, 도장을 찍어준다. 이용료를 물었더니, 기부금이니까, 원하는 만큼 내라는 답을 준다. 감사한 마음으로, 기부금을 내고, 배정 받은 침대에서 쉬웠다. 물론 알베르게 시설이 그간 묵었던 곳보다 좋지는 않다. 좋은 공간에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래도 이렇게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너무도 다행이다.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이 첫날이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어쩌면, 다음 어딘가의 '알베르게' 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리 친해지면 좋겠으나, 내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다음을 기약하자.

순례자 증서 발급.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마다 도장을 받게 된다. 이 증서가 없어도 알베르게에 머무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증서가 있으니, 설렘이 더 크다.




사십춘기 방랑기 D+66일(2017.5.14) 스페인 in 이룬 → 산세바스티안


아침 6시가 되자, 이룬의 알베르게에 불이 켜졌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서로 동선이 겹치지 않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식당을 이용했다. 빵을 잔뜩 주고, 함께 먹으라며 권하는 사람들. 그 무리에 자연스럽게 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애써 서두른 것도 아닌데, 7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길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순례자의 길 표시를 뜻하는 노란색 화살표가 생각보다 잘 보여서, 화살표만 따라가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적당하게 있어서, 외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신없지도 않았다. 또한 북쪽길이 해안을 접하고 있다 보니, 길을 걸을 때마다 펼쳐지는 장면들도 단연 좋았다. 북쪽길을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순례길은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중간 중간 이렇게 파란 바탕에 노란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다. 이 표시를 따라 걸으면 된다.
그렇게 보이는 광경들.. 아름답다... 감탄하면 족하다.
해안을 따라 걸을 때면, 해변에서 머뭇머뭇하게 된다. 그냥 여기서 쉬고 싶은 생각이 커진다.

문제는 길이 아니라, 나에게서 생겼다. 생각보다 발의 피로도가 높았다. 한발 한발을 내딜 때마다 너무도 아팠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족저근막염과 똑같았다. 통증도 심했으며,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계속 저렸다. 북쪽길을 특성상 산길을 많이 오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무릎과 발목이 아팠다. 순례길에서도 가장 끝으로 뒤쳐졌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중, 예쁜 숙소가 보였다. 알베르게 마크가 없었기에 일반 숙소라고 생각하고 지나치려다가, 숙소 입구 벤치에 앉아있던 한 노신사에게 ‘알베르게’라고 물었더니 그 노신사가 알베르게 맞다고,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숙소 안을 돌아보는데, 이룬의 알베르게하고는 상대도 되지 않을만큼 좋았다. 가격을 물으니, 그런 건 따로 없으니, 나중에 기부금을 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피곤이 쌓인 김에 덜컥 짐을 풀고, 샤워부터 했다.

뜬금 없는 곳에 위치했던 알베르게. 종교 공동체가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였다.

다 씻고, 숙소 침대에 누워있으니, 여기 숙소가 너무 예뻤고, 더 놀라운 것은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좋은 숙소에 왜 사람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숙소를 돌아보다가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농장 같은 분위기, 숙소 곳곳에 놓여있는 성경 안내 책자들, 그리고 시간을 비껴있는거 같은 사람들... 여기는 종교 공동체였다. 잠자리를 그다지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이국 땅에서 홀로 하룻밤을 머물러야 될 숙소가 정체를 모르겠을 종교공동체라는 점에서 살짝 당황했다. 그런데 염려는 기우였다. 내가 머물었던 숙소는 종교 커뮤니티가 맞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매우 신사적이고, 겸손했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노신사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띄엄띄엄 들은 바에 따르면, 이들은 현대 문명에 대해서는 매우 경계하고 있었고,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평화적인 사람들. 나는 이들이 품은 신앙에 대해서는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을만큼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이들이 내게 했던 몇몇 이야기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략 옮기자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이 우리의 예배이다.", "비용은 이미 신께서 지불하셨으니, 무료이다.", "우리의 보화는 하늘에 쌓아 놓기 때문에, 이땅에서의 부에 대해서는 우리는 관심이 없다.", "당신 삶의 이유는 무엇인가?" 등이다. 나는 이 커뮤니티의 보살핌으로... 순례길 첫째날의 피곤한 몸을 쉬게 하고, 회복할 수 있었다.




사십춘기 방랑기 D+67일(2017.5.15) 스페인 in 산세바스티안 → 오리오


스승의 날이다. 걷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다양한 감정이 몰려들었다. 외로움, 허전함, 그리움, 아련함... 12년을 교사로 지냈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28살 이후로, 단 한번도 선생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교회 주일학교 교사까지 포함하면, 22살부터 선생님으로 불리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스승의 날은 생일보다도 긴장이 되는 날이었다. 생일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축하를 받는 날이... 5월 15일이었다.


순례길은 보통 무탈하다. 어제 걸었던 것처럼 오늘 걷는다. 그리고 이게 계속 반복이 된다.


이제 나는 선생이 아니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선생이 아닌 상황에서 스승의 날을 맞이하였다. 겨우 이틀째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데, 교사였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나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교사라는 짐을 막상 내려 놓고 나니,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으나, 나의 삶에서 교사였던 부분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그러기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호칭이어야할 유성호씨가 나에게는 가장 어색한 호칭으로 들린다.


해안을 따라 걸어가야 하는 카미노 북쪽길은 참으로 다양한 길들이 혼재되어 있다. 북쪽길을 선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화려한 해변과 잘 닦여진 도로를 지나다가, 갑자기 돌맹이 투성인 언덕길이 나오고, 밀림처럼 우거진 산길을 지나면, 절벽처럼 가파른 급경사를 오르기도 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길을 걸으며, 길의 난이도에 따라 그와 연결되는 기억들이 자연히 소환되었는데... 그 기억들이 대부분 학교와 아이들이었다. 마음이 참 묘했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원래 예정했던 곳보다는 6km 정도를 못가서 있는 '오리오'라는 동네의 알베르게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짐을 풀고,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예전번호로 된 G패드에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나니, 제자들이 보낸 메시지들이 와있었다. 메시지를 읽다가, 순간 울컥해졌다. 나는 이제 선생이 아닌데, 선생으로 기억해주는 녀석들이 있구나.




사십춘기 방랑기 D+68일(2017.5.16) 스페인 in 오리오 → 데바


좋은 숙소에서 편한 휴식을 취하고 나니, 피곤함이 한결 풀렸다. 알베르게를 나설 때부터 기분 좋은 걸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북쪽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풍경은 경이롭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만을 모아서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듯 하다. 거기다가 이베리아 반도의 5월의 날씨는 기분 좋게 뜨겁다. 타죽일 듯이 뜨거운 느낌이 아니라, 생동감을 넘치게 하는 정열적인 느낌이다. 스페인은 심리학자가 굶어죽기 딱 좋은 나라이다. 마음 속에 우울이 가득한 사람도, 이베리아 반도의 화창한 햇살을 쐬면서 2~3일만 걸으면, 저절로 생동감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날씨가 우울증을 치료한다. 이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 중간 중간 물을 공급받는다. 비용은 기부금.


나 또한 태생적으로 우울이 가득한 성격이다 보니, 사춘기 시절부터 온갖 심리학 서적을 탐닉했었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우울은 늘 함께 있었다. 그런데 카미노 북쪽길을 걸으면서, 우울은 왜 지금 나는 우울한가에 대해서 고민하며, 이러한 상태를 이겨내기 위해서 골몰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햇살을 쬐면서 걷다보면 저절로 물러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기분이 좋은 상태이다. 막 즐거워서 미칠 거 같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편안하고, 무언가 힘이 생기는 그런 기분 좋은 상태이다.


데바라는 항구도시의 알베르게에서 순례길을 걸은 지, 3일만에 한국분을 만났다. 결혼 40년을 맞이한 부부는 작년에 프랑스길을 걷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올해는 북쪽길을 걷고 계신다고 한다. 어쩌다보니, 내가 결혼을 못한 것을 밝혔고, 농담삼아 순례길에서 인연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한 말씀 하신다.


“그러면, 프랑스길로 가야지. 거기는 온통 한국 여자들 천지인데... 여기는 사람들이 없잖아.”

아, 맞다. 북쪽길에는 사람이 없구나. 프랑스길로 갔어야 하나.




사십춘기 방랑기 D+69일(2017.5.17) 스페인 in 데바 → 마르키나-제메인


산길이 많아 힘들 수도 있음. 카미노 북쪽길 4일차에야 한줄 서술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다. 산길의 위력은 생각보다 컸고, 그 산길이라는 것이 인가가 보이는 산길이 아니라, 첩첩산중에서 풀숲을 헤치면서 가야하는 경우가 있는데, 행여 뱀이라도 물리면 구출될 방법이 요원하여, 제법 스릴을 느꼈다.

산길이 나오면 호되게 힘들다. 북쪽길의 산길은 제법 고되다.

그러다가 오른쪽 신발에서 무엇인가가 발을 찌르는 것을 느꼈다. 참고 걸으려고 해도 불편함이 심해서 결국 신발을 벗고, 털어보았더니 아주 작은 돌맹이들이 나왔다. 겨우 이런 게 그토록 불편하게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던 찰라, 2주 전의 사하라 레이스가 떠올랐다. 그때는 이보다 더한 모래와 돌맹이들이 신발 안에 가득 차더라도 신발을 벗을 틈이 없어서 그냥 참고 걸었었다. 그때에 비해서 나는 엄살을 피우는 것일까?


2주 전의 나는 거의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이었다. 그때 나의 신체는 비정상적인 7일을 보내야만 했었다. 그 순간에는 너무도 많은 신체 기관들이 망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약한 통증들은 통증으로 느껴지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 뿐, 그 순간에도 내 신체는 손상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하라 레이스가 끝나고 나니, 내 신체에 내려졌던 계엄령이 해제되어, 그때 느끼지 못했던 통증들을 일시에 경험하게 된 것이다. 나의 신체는 비정상에서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신체는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비정상의 상황에서 입었던 피해들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 치유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인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통증은 지금 현상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 이전 순간의 상처에 대한 치유일 수도 있다.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의지의 승리로 미화해서는 안된다. 고통의 아우성이 없다는 것은 그러한 아우성을 지르지도 못할 만큼, 탄압적인 상황일 수 있다.




사십춘기 방랑기 D+70일(2017.5.18) 스페인 in 마르키나-제메인 → 볼리바르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에 되어서 더욱 심해졌다. 왠만하면 알베르게에 그냥 머무르려고 했는데, 이번에 머무른 알베르게는 아침 8시 30분에 모든 사람들이 출발한 후, 문을 닫았다가 오후 4시에 다시 열리는 형태였다. 결국 옷가지와 전자기기들이 물에 젖지 않도록, 지퍼팩과 비닐봉지 등에 한번 더 담아서 짐을 꾸린 후 7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판쵸우의라는 것을 챙기기는 했지만, 방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중국산이었고, 그러다보니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온몸이 젖고야 말았다. 거기에다가 이어지는 여정은 어제와 만찬가지로 산길이다 보니, 땅도 진흙투성이가 되어 이래저래 힘들었다. 그렇게 산길을 한참을 걷다가, 한 허름해 보이는 성당을 지나게 되었다. 성당 처마에 비를 피할 곳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젖은 몸을 말리며 쉬고 있었다. 시간은 아직 11시... 출발한지 2시간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피곤함이 심했다. 거기다가 날씨가 몸이 젖은 상태에서 바람이 부니, 추위가 심해졌다. 결국 성당 한 구석에서 젖은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침낭을 꺼내서 덮은 채, 비가 조금이라도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 비가 내렸다. 갈 길 잃고, 비에 젖은 순례객들을 위해서 수도원은 일찍 숙소를 제공했다.
비를 피해 수도원으로 피신해오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기다렸을 때, 한 수사님이 다가왔다. 그러면서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조금이라고 답을 했더니, 성당에서 알베르게를 함께 겸하고 있는데, 오후 3시에 문을 연다. 혹시 오늘 머물고 갈 생각이라면, 숙소를 조금 더 일찍 열어줄터이니, 들어가서 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마다할 제안이 아니었다. 연신 감사하다며, 수사님을 따라갔다. 쉬는 동안 비가 그쳤고, 그동안 성당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참 예쁜 곳이다. 생각해보니, 지난 5일의 여정에서 이틀을 종교시설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지치고 힘든 이들이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하는 것은 얼마나 보람찬 일일까. 나는 이들이 품고 있는 신앙을 볼 수 없지만, 이들의 행동을 통해서 신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가출한 십대들 또는 잠시 방황하는 십대들. 이 친구들 마음 놓고 쉬었다가 힘을 얻고, 다시 길을 떠날만한 곳이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될까. 내가 그러한 곳을 운영해보면 어떨까. 혹시 그게 내 사명일까.




사십춘기 방랑기 D+71일(2017.5.19) 스페인 in 볼리바르 → 게르니카


비가 완전히 갠 것은 아니다. 어제의 폭우 이후로, 이베리아 반도의 뜨거움은 잠시 물러갔다. 성당 알베르게에서 머무른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폭우로 인하여 갑자기 피신해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어제 하루 수사님이 그 많은 사람들을 보살피느라, 매우 바쁘셨다. 순례길 여정 중에, 웬만하면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지 않는데, 이번 숙소에서는 특별히 아침을 먹다가 사진을 찍었다. 같이 큰비를 맞고 피난해온 처지여서 그런지, 사뭇 친밀해진 느낌이다. 북쪽길의 특성상, 알베르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많이 뒤처지지만 않는다면, 또 만나게 되기는 할듯 싶다.

수도원에서 하루밤을 머무른 사람들. 기분이 좋아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서는 길을 걷는 것이 편했다. 이틀 전에 어마무시했던 산길의 압박 정도도, 이번 코스에서는 사뭇 약해져서, 걸을 만 했다. 그렇게 걷던 중, 터널처럼 생긴 곳을 지나는데, 거기에 여러 낙서들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낙서들 중에서 바로 이 글귀를 발견했다. “You will never walk alone”


이 중2병과 같은 낙서를, 길을 걷는 내내 떠올렸다. 그래서 오늘은 걷는 내내 제법 힘찬 걸음이었다.




사십춘기 방랑기 D+72일(2017.5.20) 스페인 in 케르니카 → 라라베주

어제 쉴만큼 쉬었기 때문에, 오늘은 멀리 가볼 의향이었다. 빌바오.. 거기까지 34km 정도였는데, 사하라 레이스 생각을 하면, 이거야 가뿐하게 가고도 남을 거리다. 스페인에서 5월의 해는 거의 9시가 넘어야 진다. 그러다보니, 저녁시간까지 충분히 걸을 만 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머물게 되었다.


Larrabetzu라는 동네를 지나는 중이었다. 이 마을의 광장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친근함의 정도로 보건대, 외지인들이 아니라, 전부 마음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다. 뭔가 팀별로 옷을 갖춰 입었고, 그 상태에서 요리 경연대회도 하는 거 같고, 자기네끼리 막 즐기고 있다.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자기들끼리 신났다. 그 모습을 지나쳐 걷다가, 이 작은 마을에 끝자락에 있던 알베르게를 보게 되었다. 꼭 아둥바둥 '빌바오'까지 갈 이유가 있게는가. 예상보다 빠른 시간이지만,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대강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에, 축제가 진행되고 있는 광장으로 나갔다. 프로그램도 별 거 없이, 그냥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같이 이야기하고, 술마시고, 노래하고 그러고 있는 것뿐인데, 사람들이 표정이 하나같이 밝았다.

어느 시골 마을의 츤데레 아빠. 나는 이 친구가 사준 콜라를 마시면서 축제에 동참했다.


사람들을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콜라가 먹고 싶어서 옆에 있던 한 남자에게 슈퍼마켓이 이 마을에 있냐고 물어봤더니, 오늘은 축제라 문을 닫았을거라 한다. 내가 아쉬워하자, 이 남자가 갑자기 따라오라고 했다. 웬일인가 싶어서 따라갔더니, 근처 바에 들어가서 코카콜라하고, 샌드위치같은 것을 주문했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 나를 막더니, 축제니까 축제에 온 손님에게 준 선물로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네 마을 축제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이 친구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 수준히 나하고 비슷하다보니, 오히려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했다. 이 친구는 77년생으로 나보다 한 살 많았고, 두 아이의 아빠였다. 졸지에 그의 아내하고도 인사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원이 1200명 밖에 안되는 마을 사람들이 1년에 한번 다같이 모여서 노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했다.

축제는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스페인은 참 놀기 좋은 나라이다. 그냥 날씨가 열일을 한다. 여기에 오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들뜨는 기분이다. 스페인의 축제를 엿보며, 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으면, 그 순간을 편안히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왜 그토록이나 일만 하고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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