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th 국가: 나미비아 15th 여정: 나미브 사막 4. 30-5.7
사하라 사막 마라톤 여섯째날 (2017.5.5) 40Km
Long Day에서의 혈투가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는가 싶다. 대회 관계자들도 그렇고, 참가 선수들도 그렇고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체를 한다든가, 엄지를 치켜올린다든가, 괜히 말을 건다든가 한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러한 관심에 우쭐해졌는가보다. 다른 사람들이 가뿐하게 해내는 일들을 겨우 간당간당하게 해내는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아직 사하라사막 마라톤의 전체 일정이 다 끝난 것이 아니었건만, Long Day라는 큰 산을 넘고 나니, 나머지는 별거 아닌줄 알았다. 내 자신의 깜냥도 모른 채...
출발 전 관계자가 코스 브리핑을 하는 것도 건성으로 듣고, 출발 준비도 천천히 천천히 하다 보니, 출발이 5분이나 늦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완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체크포인트1에 이르는 동안 많은 참가자들이 절뚝이며 걷는 것을 보고,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에 우쭐해졌다. 그리고 내 뒤에는 '폴'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그 친구보다는 확실히 내가 더 앞서있었다.
그래서 체크포인트1을 지나서 2에 도착하는 동안... 평상시에 하지 않았던 짓거리를 했다. 그것은 바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근사한 사막에서의 사진이 한두 장 있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었다. 그러다가 체크포인트2에 도착했을 때, 체크포인트 3까지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해야 하며, 거리는 9km이지만, 전부 모래언덕으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가장 힘든 코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의 후유증으로 무릎의 통증이 극심해서, 속도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모래언덕을 걷고 있던 내가 있던 곳으로 지프차가 다가 왔고, 차에서 내린 대회 관계자는 모래 언덕 위의 내게 찾아와 내 뒤의 폴이 체크포인트2에서 시간을 넘겨, 컷오프 탈락을 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내가 체크포인트3에서 컷오프탈락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알렸다. 그 때부터 미친 듯이 모래언덕을 넘었다. 무릎이 부서져라 모래언덕을 넘어 다녔다. 1시간 10분 정도의 혈투의 결과... 체크포인트3에 4시 5분에 도착했다. 5분을 넘겼지만, 체크포인트 4까지 기회를 준다고 했다. 6시 30분까지 남은 10km의 거리를 이동하면 되는데, 이미 나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정신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포기하려고 하는데, 관계자(자원봉사자) 중에서 한국인인 형찬씨(오른쪽 2번째)와 퍼디낸드(퍼)(오른쪽 3번째)가 바로 내 뒤에 따라 붙어서 계속 걸을 것을 독려했다. 어제 그 불가능한 일도 해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선생님을 무어라고 부르는 줄 아느냐.. '미라클보이'라고 한다... 오늘도 사람들이 컷오프타임 전에 선생님이 도착할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 지옥같은 것을 다시 할 생각이냐... 힘내라... 등등 이러한 말로 계속 격려하는 형찬씨와 앞서 걸으며, 최적의 루트를 안내해주던 퍼디낸드 덕택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눈을 뜰 힘도 없어서, 그저 이 둘이 일러주는 방향을 향해서 무작적 걸어가기만 했다.
그렇게 2시간 정도를 걸어가니... 세상에는 어둠이 깔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 불빛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거기서 2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윽고 사람들의 환호가 들렸고... 나는 6시 29분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형찬씨를 찾아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이 사람이 없으면... 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컷오프 탈락한 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폴을 부여잡고 또 울었다.
참... 컷오프는 잔인하다. 이 때문에 더 처철히 노력할 수 있었지만.... 어저께 Long Day라는 죽음의 레이스를 함께 통과한 폴과 나는 오늘 한명은 탈락자가 되어, 그리고 다른 한명은 통과자가 되어 구분되고야 말았다. 그래서 통과가 기뻤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은혜가 없는 규정은 영혼을 피폐하게 한다. 나는 컷오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일곱째날(2017.5.6) 10km
지난 밤, 잠이 안와서, 텐트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보았다. 매일매일 경주에 지쳤을 때는, 사막의 밤하늘이 이렇게나 예쁜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밤하늘 광경에 심취해있다가, 숙소로 돌아와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마지막 레이스를 위해 배낭을 채비를 하고 있을 때, 관계자로부터 행복한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컷오프 타임이 없다. 그리고 선수들을 기록에 따라 차등적으로(8시와 8시 30분) 출발시킬 것인데, 네가 원한다면, 더 빠른 시간에 출발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래서 나는 7시 30분에 제일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그건 내가 이 전체 선수들 중에서 압도적인 꼴찌이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보다 30분에서 1시간 먼저 출발했지만, 뒤늦게 출발한 선수들로부터 대부분 역전당했다. 극심한 통증에 절뚝이며 걷는 내 옆으로, 뛰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과의 훈련량 차이와 함께 역량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출발했지만, 끝에서 3번째 순위로 결승점 지점에 도착했다. 결승점 앞에는 모래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을 올라서서 그 아래 결승점까지 이르는 동안 세레머니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오늘은 담담한 느낌이었다. 어제 너무도 많은 감정을 쏟아내었기 때문인 거 같다. 그래도 완주 메달을 받으니 기뻤다.
관계자로부터 완주 메달을 수여받고, 사진을 촬영하는데, 폴이 지켜보고 있다가 악수를 해왔다. 아... 폴의 눈빛이 슬퍼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폴은 마지막 구간에서 완주를 못하고, 중도 탈락을 했다. 내가 걸고 있는 메달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폴을 안고, 서로 고생했다며 이야기했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9월에 싱가폴에 방문했을 때, 만나기로 약속했다.
모두가 결승선에 들어와서 전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국 선수들과도 따로 사진을 찍었다. 지난 일주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서로 서로 기념촬영을 하고, 완주를 하고 나니, 그 거들먹거리던 사람이 와서 축하를 해준다. 그 순간, 그간의 감정이 전부 사라졌다. 그리고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참가한 나를 보듬어준 손길들이 보였다. 어쩌면 내가 지금 누군가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힘겨운 삶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의 다른 표현일 수 있으며,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완주해내고 나면, 슬며시 사라지는 것들이지 않을까.
버스는 사하라 사막 레이스가 끝난 곳까지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량이 정차된 곳까지 여러 개의 닷지에 옮겨 타서 이동을 해야 했다. 온몸이 흙먼지로 범벅이 된 사람들과 좁은 닷지에 다닥다닥 붙어서 이동을 하는 불편한 이동이었지만, 사하라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기쁨에 연신 싱글벙글하게 되었다. 눈에 마주칠 때마다 포옹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면서 서로서로 축하했다. 이동 중 모래폭풍을 만나 더 심하게 모래범벅이 되었지만, 그 상황 자체가 즐거웠다. 버스에 옮겨 타고 한참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바퀴가 펑크 나서 대책 없이 길바닥에 한 참을 대기하는 등의 우여곡절은 그냥 소소한 이야기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렇게 나미비아에 와서 처음으로 집결했던 숙소에 7일 만에 돌아왔다. 씻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누우니, 내 피부가 완전히 벗겨지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살펴본 발의 상태는 심각했다. 발바닥을 가득 덮고 있던 물집들은 여기저기 터져서 마치 화상을 입은 것처럼 되어 있었고, 발톱 1개는 빠졌고, 남은 1곳의 발톱도 흔들리고 있었다.
호텔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참가자들의 최종 만찬이 있다고 했다. 대회였으니까, 순위 안에 들어온 참가자들을 호명했다. 그들과 나의 기록 사이에는 어머어마한 격차가 존재했다. 그리고 사하라 레이스를 완주한 이들이 소개되었다. 무엇보다 제자들에게 해냈다고 자랑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만찬 중에, 대회 관계자가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보여줬다. 사막에서의 생활은 지옥과 같았지만, 영상으로 보니, 매우 멋있었다. 힘든 시간은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낭만이 되는 법이다. 그래도 다시 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사막 마라톤은 이제 충분히 경험했다. 이만하면 됐다.
2017 사하라사막 마라톤 하일라이트 영상 : (148) Sahara Race 2017: Highlights - YouTube
(20:30 부분에 결승점 세레머니가 있다)
만찬이 끝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몇몇과는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언어적 차이로 깊은 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내 영어 실력이 조금 더 나았다면, 나는 사람들과 좀 더 자 소통할 수 있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나라 사람들과도 잘 소통하지 못하는 나를 떠올리고, 그냥 그만 아쉬워하고, 국어를 통한 소통에라도 정성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뻗어버렸다.
사하라사막 마라톤 다음날(2017.5.7)
폭풍같은 레이스는 거짓말처럼 끝났다. 선수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국 선수들도 대부분 귀국편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는 나미비아에서 하루 더 머무르면서 요양을 하고, 스페인으로 이동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계획했다. 마라톤 후유증이 있는 상태에서 또 길을 걷는 게 가능한 일정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언제 걸어볼 수 있을까. 그래도 산티아고 순례길은 서로 경쟁적으로 걷는 여정은 아닐 테니,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걸어보기로 하자.
사하라레이스 홈페이지에 경기 결과가 업데이트가 되었다. 완주자 77명 중에서 77등이었다. 완주가 목표였으니,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침대에 누워서,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고민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10년이 넘은 소망이었지만.... 그 시작을 모르겠다. 다만... 하고는 싶었지만, 실행에 옮길 여지가 없던 화석화된 소망을 다시 움직이게 한 계기들은 있었다. 그런데... 그 계기들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를 하는 내내 계속 떠올랐던 것은 "왜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하고 싶어했을까"하는 고민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신체를 단련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유도라는 운동도 사실 그렇게 해서 시작을 했고.. 교사였을 때, 진행했던 야성회복 프로젝트같은 프로그램도 비슷한 맥락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의 신체는 그렇게 강건하지 않다. 대학 유도부 중에서 가장 물렁물렁한 몸뚱아리를 지니고 있었고, 달리기라든가, 구기운동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못할 만큼 운동신경이 둔했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때, 나는 나의 결핍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결핍을 뛰어넘는 것에 대한 동경이 늘 있어왔던 거 같다. 사하라사막 마라톤은 이러한 경향성의 확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결핍에 대한 집착이 싫은 것도 아니고,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성향이 유성호라는 인간의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많기에 그간 문제로 여기지는 않았던 거 같다. 못하는 것을 계속 열망하여 시도하다 보면, 의지가 강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사하라사막 마라톤을 하면서, 이제 나는 몸을 힘들게 하여 의지를 단련하려는 내 오랜 집착에서 이제 좀 벗어나려고 한다. 의지는 중요하다. 의지는 전혀 못할 거 같은 인간이 사하라사막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게도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독한 의지로 간신히 완주하고 있을 때, 그 옆을 웃으면서 뛰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참여 하는 내내, 울트라 마라톤 같은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들에 내가 재능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번의 도전의 끝으로, 내가 잘 못하는 것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 도전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인생은 짧고.... 우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서 전념하며, 즐거움을 누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잘 못하는 것을 그만 좀 극복하려고 하자. 그것이 사막에서 내가 발견한 답이다.
나는 앞으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일에 도전하며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