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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춘기 방랑기 # 2.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다

1st. 러시아 블라디보스톡(2017.3.11-2017.3.21)

by GTS

세계 여행의 시작지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사십춘기 방랑기 D+1일(2017.3.11.)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지

블라디보스톡의 바다는 얼어 있다. 그래서 노을을 향해 걷기가 좋았다.


나는 나의 방랑의 시작을 블라디보스톡으로 정했다. 그것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꼭 타고 싶었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3월 14일에 출발하는 것을 예매했다. 급하게 돌아보지 않더라도, 이틀이면 관광지는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 블라디보스톡! 3월 10일에 도착했기 때문에, 매일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굳이 3월 14일 밤으로 하는 것은 여행의 템포를 죽이는 것이 분명했다. 식당 웨이팅을 지독하게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이번에는 무려 2일이나 웨이팅을 기꺼이 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암호같은 키릴어 천지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러시아 열차 사이트에 들어가서 예매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블로거의 안내글의 도움이 컸다. 그의 이름은 ‘정믿음’

https://blog.naver.com/belief0115 요리사가 꿈인 이 친구는 청년 방랑식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하는 중이었고, 이러한 내용을 블로그에 담고 있었다. 그의 여정은 나보다 이틀 후에 시작했다. 나는 순전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예매하겠다는 목적으로, 그의 블로그를 검색하여 찾아들어간 것이었는데, 그 와중에 그의 블로그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청년 방랑식객 정믿음. 25살밖에 안된 젊은 녀석이 너무도 멋져 보였다. 일단 요리하면서 전세계를 방랑하겠다는 그 객기 넘치는 각오가 참 마음에 들었다.

시베리아 횔단 열차를 예매하는 방법과 함께 자신의 표(출발시간과 좌석)를 블로그에 올려놓은 믿음이. 나는 이 표를 보고 앞자리를 예매했다.

블로그의 내용을 따라하다 보니, 수월하게 예매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요즘같은 시기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기가 출발하는 열차 번호와 일시, 좌석 번호까지 다 공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살펴보니, 이 친구의 맞은 편 자리는 아직 아무도 예약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이 친구의 앞자리를 예약해서 동행하면, 그 여정은 어떨 것인가? 나이는 한 참 차이나지만, 재밌을 거 같았다. 그래서 이 친구에게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이 친구 앞자리를 예약해버렸다. 이런 무모함과 무례함에 대해 나름 핑계를 대자면, 나는 결코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나는 그간 40세가 되도록, 이성이든 동성이든 매력이 있는 누군가에게 같이 '차 한잔 합시다' 또는 '술 한잔 합시다'라는 말도 못 해본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수동적인 사람인데, 내 생에 처음으로 저지른 능동적인 만남 신청인 셈이다.


덕택에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탑승하기 전까지 시간이 많아서, 산책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산책을 할 때마다 생각을 제법했었다. 일기장에는 그 흔적이 담겨 있었다. 다시 읽는 내게 무언가 흔들림을 준다.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체득한 생존법이었던 거 같다. 왜냐하면 나는 지극히도 팔랑귀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말을 너무도 잘 믿는다.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은 필요한 친구들, 후배들한테 돈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주고 참... 많이 어렵게 지내봤다. 이것은 내가 착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인간이 이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군대에서, 친척들간의 관계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생활하며 믿음에 대한 배신을 당했다. 내가 당한 배신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냥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혼자 곰곰히 곱씹고, 그렇게 그렇게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인간 관계에 있어서 매우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믿을만 하지 못하다. 이러한 의심병이 나의 생존법이 되어 버린것이다.

이러한 의심병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면서부터 발휘되었다. 도착 후 유심을 구입하러간 가게에서 서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다 보니, 매장 직원이 권해준 유심을 구입하면서, 이 사람이 나를 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그리고 한국 여행객 2명이 '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톡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갈 건데,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게느냐'는 요청에 응하면서도 혹시 이들이 나를 속일지 모른다는 긴장을 했다. 그리고 택시기사가 숙소 근처라고 내려 준 곳에서 숙소가 즉각 보이지 않자, '그러면 그렇지. 이 택시기사놈들' 이라고 원망했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속인 사람은 없었다. 유심가게 직원은 너무도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구입해주었으며, 동행했던 여행객 덕에 나는 시내까지 싼 가격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택시 기사가 내려 준 곳은 진짜 숙소로 가는 골목의 앞이었다. 내가 숙소를 못찾고 헤매고 있자, 내 조카 정도 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젊은 아버지가 내 숙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나를 숙소까지 안내해주었다.

나는 왜 사람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거의 대부분의 관광지가 걸어서 10분에서 길게는 20분 안에 다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관광지 중의 하나인 혁명광장이라는 곳에 가던 중... 지하도를 건너게 되었다. 그 지하도에서 다리를 다친 한 남자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를 그냥 지나쳐가는 내 옆으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무리 3명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한명이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에게 다른 2명이 핀잔을 주었지만, 그 녀석은 동전을 찾아서 구걸하는 그에게 주고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살았던 것일까.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도 꼬마 스승을 따라서 주머니속의 동전을 그에게 주었다.



D+6일(2017.3.15.)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

사진 출처: Yandex.ru 이미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 출발 시간은 6시 2분이었지만, 러시아라는 나라가 어마무시하게 크다보니, 횡단을 하는 과정에서 시차가 생기고 만다. 그렇다 보니, 각 지역별로 시간을 정하는 것이 어려워서, 모스크바 시간으로 통일해서 정하게 된다. 그래서 6시 2분은 모스크바 시간을 따른 것으로, 모스크바가 블라디보스톡보다 7시간이 빠르게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출발시간은 새벽 1시 2분이 되는 것이었다. 아주 늦은 시간에 기차를 타야 되다 보니, 이게 제법 긴장이 되었다. 날씨도 춥고, 갈데도 없어서 숙소를 체크 아웃하고, 7박 8일 간의 음식을 마트에서 산 후, 기차역 대합실에서 하염 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다행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동행. 7일간 강제로 동행한 믿음이, 3일간 동행한 러시아 청년 도일랏.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예상보다 훨씬 편안하고, 예상보다 더 깨끗했으며, 예상보다 느리고, 예상보다 훨씬 역에 자주 정차한다. 동행하기를 희망했던 25세 방랑 식객 믿음이(이제 32세가 되었다니)도 만났고, 동행하는 러시아 사람들과 어울려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믿음이는 처음에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기차 안에서 아침이 되어서, '나 당신을 안다'라고 했을 때 표정은 흡사 스토커를 만난 듯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죽이 잘 많았다. 나보다 15살 어렸던 믿음이는 금새 나를 형이라고 불렀고, 강제로 동행하게 된 7박 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며,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는 제 1호 팬이 되었다. 믿음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멋진 청년이었고, 나는 이 멋진 친구와 친해질 수 있어서 너무도 기뻤다. 만약 내가 매력적이었던 믿음의 앞자리를 예약하지 않았으면 나는 이 멋진 친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성별과 상관 없이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 꼭 이야기 나누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겠다는 다짐을 40세가 되어서야 하게 되었다. 후기를 첨언하자면, 믿음이는 자신의 세계 여행을 온전히 마무리했고, 그렇게 귀국한 이후, 책을 썼고, 그 추천의 글을 내게 부탁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우리는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



다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순간들이 좋았다. 그저 창밖을 설경을 쳐다보다가, 앞에 있는 믿음이와 이야기하고,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함께 식사를 하다가, 기차가 정차역에 참시 멈춰서면, 새롭게 기차에 타는 사람들로 인해 다시 부산해져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시간이 지나면, 창밖을 보든가,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등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지루함일 수 있겠으나, 내게 있어서는 편안하고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먀냥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좋았다기 보다는, 무엇인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지만, 그저 순간 순간을 즐기고, 순간 순간에 몰두하다보면, 모스크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던 거 같다.


열차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설국열차라는 영화의 장면들이 연관하여 생각이 난다. 설국열차에서 열차는 세계의 전부였고, 각 칸의 사람들을, 각 계급에 맞게 생활하게 된다.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가장 싼 티켓인 2등석 4호차에 탑승하고 있다. 이 열차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3월 14일 저녁 6시 2분에 출방해서 3월 21일 오전 11시에 도착하는 것으로, 금액은 17만원 정도 되는 가장 열등한 승객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인 기차 안을 탐색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열차 후미 쪽으로는 나와 같은 2등석칸이 3개가 더 있었고, 4인실칸이 있었고, 끝에는 식당칸이 있었다. 식당칸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등치가 큰 러시아 군인들이 잔뜩 모여있었고. 낯선 이방인이 지나가자 엄청 말을 걸었다. 마치 용산전자상가에 처음 홀로간 느낌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말로 못할 그 고얀 암내들,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이 암내를 뚫고, 열차 후미에 도달하자, 갑자기 시설이 좋아졌다. 식당칸이었는데, 역시나 가격이 쎄서, 감히 사먹을 엄두는 못내었다.


후미칸까지의 탐색을 마치고, 돌아와서 새롭게 파트너가 된 도일랏이라는 친구와 손짓발짓 섞어서 이야기하였다. 몇 번의 정차역을 지나면서, 믿음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있다. 수줍은 미소를 지닌, 도일랏이라는 청년은 처음에는 외국인인 우리들을 경계하다가 서로 싸온 음식들을 나눠먹으면서 친해졌다. 모스크바에 일을 하러 간다는 그는 성격이 매우 좋고, 매너있는 청년이다. 처음에 역에 정차할 때마다 경계하기 바빴던 나와 믿음이는 이제 정차역마다 내려서 기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기차에서 내려서 사진을 찍고, 간식도 사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며, 같은 칸에 있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 '소빌'이라는 타자키스탄 친구와는 더 친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 넷은 자주 같이 밥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좌: 러시아 청년 '도일랏' 우: 타지키스탄 동갑 친구이자 가장이었던 '소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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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일(2017.3.21.) 모스크바 도착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지인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동행한 믿음이와 4일간 동행한 '도일랏'과는 더욱 각별한 느낌이 들어서 우리끼리의 석별의 정을 나눴다. 믿음이와 도일랏이 없었다면,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이렇게 따뜻한 느낌이지 않았을 것이다. 모스크바 역 근처의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서로의 페이스북 주소를 교환했다, 도일랏과 먼저 헤어졌고, 그후 믿음이와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면서 헤어졌다. 믿음이의 다음 여행지는 '슬로바키아'였고, 나의 다음 여행지는 '우크라이나'였다. 모스크바에서 지내는 동안 번개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서로 헤어졌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종착지 모스크바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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