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사하라 사막 마라톤 1부 - 버티고 버티기

12th 국가: 나미비아 15th 여정: 나미브 사막 4. 30-5.7

by GTS


나미브 사막에서 열린 사하라 마라톤. 매일 해당 거리를 이동해서, 우측처럼 세워진 곳에 도착해야 한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첫째날 (2017.4.30) 39Km


첫날 출발 광경. 이때까지는 모두 설레는 모습으로 선두에 서고자 했다.

아침 8시에 사하라 사막 마라톤은 시작되었다. 처음의 시작이 늘 그렇듯이 희망차고, 들뜬 분위기였다. 각국에서 모인 참가 선수들이 시작 신호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그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한쪽으로 피해 있다가, 선수들이 전부 출발한 후에, 걷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속도는 염두해둔 것이 아니었다. 아직 아침이라, 햇살은 뜨겁지 않았고, 바닷가 인근에 있는 나미브 사막은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기에, 걷기에 좋았다. 시간이 30분 정도 지나자, 함께 마지막 순위를 경쟁하게 될 한국사람 3명이 모여 함께 걷게 되었다.


2017 사하라사막 마라톤 첫번째 날 레이스는 총 4개의 체크포인트가 있으며, 마지막 체크포인트가 오늘 야영을 하게 될 장소이다. 이 마지막 체크포인트까지 오후 5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하며, 각 체크포인트마다 또한 도착 제한 시간이 있다. 1번 체크포인트와 2번 체크포인트까지 도착하니 오후 12시 40분이었다. 비록 현재까지는 꼴등이었지만, 도착 제한 시간은 1시간 정도는 앞당긴 속도였다. 그런데 2번 체크포인트를 지나면서 발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은 등산신발로, 사막을 걷거나 달리기에는 우려되는 신발이었으나, 내게는 이것밖에 없었고, 또 최선이었다. 튼튼하지 않은 게이터였지만, 그래도 모래가 신발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아주었다. 그러나 왼쪽 발목에 무리가 갈 것을 의식했는지, 걸음이 잘못되었는가 보다. 오른쪽 발바닥과 세번째 발가락, 그리고 뒤꿈치에서 통증이 있었다. 그리고 그 통증은 계속해서 심해졌기에, 다시 왼발에 하중이 실리는 걸음으로 나도 모르게 바뀌었는가 싶다. 나미브 사막은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일반적인 모래사막과 다르게, 여러 형태의 돌 파편들이 흩어져있는 곳이다. 칼날처럼 솟아올라 있는 돌무더기들을 지나다가, 발목이 돌아갔다. 그냥 계속 걷기는 했으나, 속도는 나지 않아서 같이 가던 일행 중에서도 뒤에 처지고 말았다. 다행히 이 일행들이 다음 체크포인트에서 기다려주었고, 또, 최종 도착지 앞에서도 나를 기다려줘서 공식적으로는 이 3명이 동시에 들어오기는 했으나, 실상은 내가 전체 참가 인원들 중에서도 꼴등을 한 셈이다.

첫날 끝으로 들어온 3명. 뒤에 처진 나를 위해 일부러 속도를 늦춰 함께 걸은 2명의 한국인 참가자분들.


그래도 4시 30분에 도착해서... 최종 마감 시간은 넘기지 않았다고 좋아했는데, 먼저 도착한 한국인 친구들이 한마디씩 농담을 건넨다. 거기에 악의가 없었다. 충분히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말이 계속 자극을 한다. 약자를 희화화하는 농담은 잔인하고, 참으로 품격 없다.


"왜 이제 왔어요. 나는 2시간 전에 왔는데..."

"한 번도 안 뛰었어요? 한번은 뛰었어야지..."

"나도 내일 마지막에 들어와야겠다.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받고 좋네요.."

"오늘 오랫동안 걸으면서 생각 많이 했을 테니, 시상 많이 떠오르겠네요."

"오늘도 글을 쓸 건가? 그렇게 체력이 약하면, 일찍 들어가서 그냥 쉬는 게 낫지 않을려나?"

이럴 때 정색하기도 뭐해서, 함께 웃어넘기지만, 웃음이 쓰다. 자신을 무리들의 농담 거리로 던져 넣는 행위는 자신의 존엄을 파괴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 사하라사막 마라톤 열등생의 입장에서, 나의 존엄이 짓밟히는 것을 용인했다 그것은 내가 이곳에서 약자였기 때문이다. 사막을 뛰어 다니는 사람들의 틈에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약자가 된다. 이 때 그를 향하여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라고 맞불을 놓는 것도 뭔가 애매하다. 그러다보니, 입맛이 쓴 농담에 동조한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특정 집단을 농담거리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그 집단 내에서 힘있는 사람이기보다는 조금은 약하든가, 이질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농담거리의 주인공이 되어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은 참 곤혹스럽다. 인생의 답을 찾고 싶어서 참가한 사막 마라톤에서 일단은 인생의 매너를 하나 배워간다.


6군데의 물집과 2개의 발톱 이상을 홀로 치료한 후에, 내일 온전히 걸을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만약 끝까지 걷지 못한다면, 이 거리를 능히 걷고 뛰는 이 사람이 얼마나 조롱할까. 어떻게든 완주하겠다고 이를 악물어본다. 참... 입맛이 쓴 하루이다. 첫날까지는 상태가 괜찮아서 글을 썼다. 그러나 둘째날부터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첫날 레이스 후에는 석양을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부터는 어림도 없었다.



사하라사막 마라톤 둘째날(2017.5.1) 40Km

사하라사막 마라톤 둘째날이다. 어제밤에 물집과 깨진 발톱을 치료하고 자기는 했으나, 아침이 되었을 때 걸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신발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인듯 싶다. 이를 본 신발을 두개 가지고 온 최고참 형님이 자신의 신발을 신으라고 주셨다. 훨씬 가볍고 좋았다. 문제는 이미 갖고 있던 신발을 버릴 수가 없어서 배낭에 넣고 움직이다보니, 배낭 무게가 더욱 들었고, 이것이 무릎과 허리에 무리로 작용할 듯싶었다. 그래도 일단 발을 위해 가벼운 신발을 신고, 배낭을 무겁게 하는 쪽을 택하였다.

사하라 레이스는 따로 길이 없다. 중간 중간에 빨간색 깃발을 꽂혀 있는데, 그 깃발을 따라 걸으며 ㄴ된다.

둘째날 레이스가 시작했다. 어제보다는 조금 늘어난 거리였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깃발만 바라보며 걷는다. 이렇게 long day 전까지 조금씩 거리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시작과 동시에 걷기 시작했다. 매일의 일상이 단순해졌다. 나의 걸음으로는 시속 4.5~5 Km/s의 속도가 나온다. 체크포인트(CP)에 도달할 때마다 대략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보니 8시에 출발하여 10시 30분에 도착, 10시 40분에 도착하여 12시 50분 도착, 1시에 출발하여 3시 40분에 도착, 3시 50분에 도착하여 5시 23분에 도착했다. 도착지의 컷오프 시간이 5시 30분이라는 것을 볼 때, 컷오프 7분 전에 꼴등으로 도착한 것이다. 오늘은 싱가폴의 참가자 폴이 잘 걷지를 못했다. 어쩌다보니 마지막 구간을 함께 걷게 되었고, 둘째날 레이스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나는 어제도 꼴등이었고, 오늘도 꼴등이고, 내일도 꼴등일 거 같다니까, 폴이 앞으로는 자기가 함께 해주겠다고 한다. 꼴등이라도 좋으니, 끌까지 완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막을 걸으며,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선택을 왜했는지... 도대체 이렇게 정처없는 길을 왜 걷는지 의아해했다. 햇살은 뜨거워졌고, 모래는 푹푹 빠져서 힘들어졌다. 왼쪽 발목은 점차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 완치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압박붕대를 하지 않고 나왔더니, 나의 체중을 버티기 힘들어했다. 내일은 압박붕대를 꼭 하기로 다짐해본다. 레이스를 하면서, 뜬금없겠지만 대현이 생각이 났다.


대현이는 하나고 5기 졸업생이다. 작년에 대현이의 추천서를 쓰면서, 대현이가 썼던 자소서를 읽었었다. 대현이의 자소서 중에서, 유도부를 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로 통증에 대해서 썼던 부분이 있었다. 유도부에서 운동하면서, 다양한 통증을 느꼈고, 이러한 통증을 경험하는 가운데 통증에 둔감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드러내는 글이었다. 사막을 걸으면서 대현이가 썼던 이 표현이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통증에 둔감하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 나의 통증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통증에 대해서...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막은 모래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래 못지 않게 자갈, 바위 등도 많았다.

일단은 나의 통증에 집중해본다. 내가 미처 단련하지 못했던 나의 각 신체들이 지금 아우성을 치고 있다. 두발바닥과 왼쪽 발목, 두 무릎과 양어깨, 그리고 허리가 서로서로 힘들고 괴롭다고 아우성이다. 이 아이들을 달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해서 일단은 걸어야 한다. 이를 악물어보자.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 일정이 내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정이 된다. 여전히 도착지에 한참 먼저 들어온 한 사람은 계속해서 거들먹거린다. 아... 이 사람을 어찌 해야 하나.




사하라사막 마라톤 셋째날(2017.5.2) 43Km


사하라사막 마라톤 셋째날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거리가 늘어났는데, 발의 상태는 더 좋지 않다. 조금이라도 짐을 가볍게 하려는 마음에, 그간 2달 가까이 입었던 점퍼를 버렸다. 처음부터 입다가 버릴 생각으로 챙겨온 것이었기 때문에 낭비는 아니었다. 이 점퍼는 사막야영을 도와주는 나미비아 현지 사람들이 챙겨갔다. 언제나처럼 아침 8시...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고, 나는 끝자리에서 걷기 시작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이후, 정말 많은 발자국들을 보아왔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알지 못했던 나의 문제점 중의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 걸음걸이가 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들을 보면서, 나의 걸음이 다른 이들에 비해 얼마나 팔자걸음이고, 불균형적인지를 알게 되고, 그것이 장시간의 이동 시에 다리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도 알게 되었다. 문제를 인식했다고 내 걸음이 쉽게 고쳐질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일을 할 때에 기본의 충실함을 꼭 지키겠다는 다짐 정도를 배웠다고 하면 될 듯싶다.


사막을 걷는 무서움은 시간과 기간에 익숙해지기보다는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거 같다. 겨우 본격적인 걷기 3일째가 되는 것이지만, 걸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워진다. 어제는 통증에 민감해지기 위해서 온 몸이 내는 통증에 집중하려고 애썼다면, 오늘은 최대한 다른 생각들에 집중해서 통증을 잊기 위해 애쓰는 날이었다. 마치 신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처럼 두 다리로 하여금 무조건 다음 체크포인트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말도록 명령하여 실행시키고, 머리는 그와는 별개로 온갖 공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오늘의 생존법이었다.

해질 무렵의 레이스. 통증이 상당하지만, 함께 걷는 이가 있으면 더 괴롭다.

문제는 거리가 늘어나면서... 체크포인트 도착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되더니, 체크포인트 3에 도착했을 때에는 레이스 종료 2시간 45분 전이었다. 남은 거리는 9.5km.. 몸의 상태를 봤을 때는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을 듯 싶었다. 곁에는 어제 함께 꼴찌를 했었던 싱가폴인 '폴'이 있었다.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컷오프 탈락이 된다. 10분을 휴식한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폴'이 시간 안에 들어가 보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앞서 걷기 시작하는데... 이 친구가 다리를 다쳐서, 30분이 채 가지 못하고 느려지기 시작한다. 그때 내가 앞서 걸어서 폴에게 떨어지지 말고 따라오라고 했다. 폴은 근성이 있어서 따라왔다. 폴이 했던 "우리 한번 시간 안에 도착해보자"라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런데 나도 30분이 지나자 지쳤다. 그동안 단련을 안 한 나의 저질 체력이 원만스럽다. 그런데 그 순간.. 폴이 앞으로 나가면서 내게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페이스를 이끌어주었다.

폴과 나는 사하라 마라톤의 열등생이다. 우리가 들어 오면 레이스가 끝난다.

그렇게 한참을 갔지만, 야영지는 보이지 않고, 세상은 어두워졌다. 랜턴을 켰지만, 참으로 암담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렸다. 폴과 나는 힘을 내었고, 마지막 10분을 남기고는 서로 뛰었다. 그리고 도착지를 앞두고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6시 28분... 컷오프타임 2분 전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우리들을 위해 사람들을 박수를 쳐 주었고, 폴과는 포옹을 했다. 폴에게 이야기 했다. 네가 있어서 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꿈꾸는 기분이었다.


발톱은 빠지고, 물집은 터지고, 모래는 신발 안에 들어와서 범벅이고, 음식이 안 땡기지만, 살기 위해서 억지로 무엇인가를 먹어야 했다. 다들 거지꼴이다.


내일은 80km를 밤새서 가야하는 Long Day이다. 40km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발의 상처들은 더 심해졌고, 모래로 범벅이었지만, 씻을 수도 없어서, 알콜솜과 물티슈로 닦은 후, 가져온 약들로 대충 치료를 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불에 댄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 그냥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제자들에게 사하라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이야기한 상태다. 이걸 완주하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그러니 포기할 수 없다. 내일 걱정으로 잠이 잘 안 온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나,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많이 초췌해졌다.




사하라사막 마라톤 넷째날 (2017.5.3) 81Km Long Day


오늘은 사하라 사막 마라톤의 가장 혹독한 날인 80km를 밤새서 가야하는 Long Day로 불리는 날이다.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비장하다. 현재까지 레이스를 낙오한 사람들은 없다. 오직 컷오프 시간에 들어오는 나하고 싱가폴 사람 '폴'이 있었을 뿐이다. 40Km의 이동에도 허우적거리는 상태에서 80Km의 이동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마음이 분주해서인지 발치료에 시간이 조금 더 걸렸고, 짐을 싸는데도 시간을 더 허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5분 늦게 출발했다. 그동안 사람들과의 격차가 벌어졌다.


맨 뒤에서 걸을 때, 앞에 뛰는 사람들이 보인다. 정말 감탄스럽다. 저들과의 격차가 확 느껴지는 순간이다.

언제나처럼 익숙하게 맨 뒤에서 걷기 시작했다. 날씨는 끔찍하게도 뜨거웠다. 그동안의 사하라 사막 마라톤 중에서도 가장 극심했다. 모래사막 위에 검은색 자갈들이 산산히 부서져서 코팅된 것처럼 뿌려져있었는데, 이것이 꼭 아스팔트같은 역할을 했다. 머리위의 열기와 아래서 올라오는 열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람들도 힘들었는가 보다. 5명의 선수들의 속도가 뒤쳐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앞장서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체크포인트1에 도착했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에 체크포인트2로 향했다. 날씨는 더욱 극심해졌다. 체크포인트 2까지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었다.


체크포인트3를 향하는 길은 뜨거운 열기로 시야가 흔들렸다. 걸음도 쳐졌고, 힘을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휴식은 체크포인트에서 취한다는 나만의 원칙을 어겼다. 그늘을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늘이 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구름이 태양을 가려서 사막에 그늘이 생길 때면 그대로 쓰러져서 쉬었다. 구름이 걷히면 다시 걷고, 구름이 태양을 가르면 쉬고, 이렇게 더디게 길을 걸었다. 앞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체크포인트 3에 5시 10분에 도착했다. 10Km를 이동하는데 3시간 40분 정도가 걸린 것이다. 체크포인트 3에서 내 뒤에 5명 이상이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포기했고, 너하고 '폴'만이 끝에서 걷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꼴찌가 되었다. 체크포인트3에서 발치료를 다시 하고, 30분 정도를 실신해있었더니, '폴'이 도착했다. 그래서 체크포인트 4까지는 '폴'과 동행했다.

사막은 많이 뜨겁다. 갈증의 수준이 다르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열기로 인해 중도 포기를 했다. 체크 포인트에 악착같이 도달하려는 것은 물을 보충받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폴은 나만큼 지쳤다. 5시 50분에 출발한 우리는 3일째 동행하며, 제법 친해졌다. 폴은 내게 왜 레이스에 참여했냐고 물었다. 나는 삶의 목적을 찾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직업을 묻길래, 과거에는 12년 동안 교사였지만, 지금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직업은 물었더니 싱가폴 IT업계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도 매일 야근하고, 밥먹고, 자는 것 빼고 하는 게 없어서 삶의 자극이 필요해서 참여했다고 했다. 레이스가 끝나고, 싱가폴에 방문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했다. 이렇게 방문할 곳이 하나 더 생겼다.

체크포인트 4를 향하는 길에 날이 어두워졌고, 이제 랜턴을 키고 깃발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이동하는 길은 멀고 멀었다. 나의 걸음보다 '폴'의 걸음이 더 느렸다. '폴'에게 보폭을 맞추려고 하다보니, 나 또한 더욱 지쳤다. 그렇게 더디게 체크포인트 4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었다. 밤샘 이동을 하기 전에 휴식처같은 곳이었다. 늦게 들어온 우리들을 맞아주면서 충분히 휴식을 하고 출발하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폴과 나는 거의 탈진할 채로 10시 30분까지 누워있기로 약속하고 누워 쉬었다. 잠시 누워있으니, 온몸이 쑤신다.

중도 포기한 이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며 손을 흔든다. 포기 의사만 표시하면 나도 당장 쉴 수 있지만, 억지로 참는다.

발바닥은 상처투성이에 모래와 흙이 잔쯕 끼어있어서 통증을 더 심하게 했지만, 씻을 수 있는 물이 없다. 왜 여기에 와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포기하기가 싫었다. 끝까지 걸어보리라 다짐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폴도 거의 정신을 놓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출발 시간이 되었다. 출발 전에 최종 컷오프 타임을 물었다. 내일 오전 10시라고 한다. 38Km가 남았는데... 남은 시간이 11시간 20분이다. 서둘러야 한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다섯째날 (2017.5.4) 81Km Long Day

체크포인트4에서의 휴식이 회복에 도움이 되었는 거 같다. 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확실히 낮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고, 밤이 되자 사뭇 걷기가 좋아졌다. 주최측에서는 참가자들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깃발 옆에 야광봉을 꽃아 놓았다. 이 야광봉의 불빛들을 따라서 길을 걷다보며, 다음 체크포인트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10Km 떨어져있는 체크포인트5로 이동하는데 10시 40분에 출발해서 1시 10분에 도착했다. 2시간 30분이 걸렸다. 생각보다 빠른 이동 속도에 나도 그렇고 '폴'도 그렇고 고무되었다. 컷오프 타임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20분간 휴식하고 1시 30분에 출발했다. 그런데 체크포인트6에 이르는 길에서 갑자기 땅이 안 좋아졌다. 잘게 부셔진 자갈들이 밟을 때마다 푹푹 꺼져 들었고, 이 자갈들이 신발 속으로 들어와 발바닥과 발가락을 사정없이 찔렀다. 나와 '폴' 모두 절뚝였고, 속도는 계속해서 늦어졌다. 이상스레 보이지 않았던 체크포인트6에 도착하니 이미 5시 20분이었다. 이동하는데 3시간 50분이 걸린 것이다. 그간의 사하라 사막 마라톤 구간 동안 최악의 구간이었다. 현재의 몸상태로는 도저히 컷오프 시간인 10시까지 도착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남은 거리는 18Km였다. 폴과는 컷오프 시간 상관없이 끝까지 걷자고 말했다. 그간 신었던 신발은 자갈로 인하여 바닥이 찢어졌기에 버리고, 등산화를 다시 꺼내 신었다.

5시 45분에 체크포인트7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간 휴식처에서 만날 때마다 격려해주던 주최측 사람이 오늘도 컷오프타임 안에 들어오는 기적을 만들 것을 믿는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10시에 마지막 체크포인트에서 기다리겠다는 하였다. 현재의 몸상태로 그 시간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였지만, 그냥 끝까지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폴은 완전히 지쳐서 나를 따라오지는 못하였다. 폴에게 끝까지 걸으라고 이야기하고, 결승점에서 기다리겠다고 이야기한 후, 그 때부터 앞서 걸었다. 어떻게 걸었는지 모르겠다. 체크포인트7까지 8시 10분 근처로 도착하지 못한다면, 가능성이 없어진다. 땅이 괜찮으면 뛰고, 안 좋으면 빠르게 걸었다. 땅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 폴과의 거리는 계속 벌어져서, 나중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체크포인트7에 8시 5분에 도착했다. 그러다보니, 이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배낭을 벗지도 않고 쓰러져서 물보충을 받았다. 그렇게 5분을 쉬고, 8시 10분에 체크포인트8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발이 너무도 아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냥 내가 걸을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걸었다. 한참을 걸었지만, 체크포인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9시 30분이 되었는데, 저 멀리 체크포인트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힘을 내어 걸었지만,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9시 40분이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사력을 다해 뛰었다. 뛰다가 지치면 걸었고, 다시 뛰었다. 9시 50분이 되자, 체크포인트8이 확실히 육안으로 보였고, 사람들의 함성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9시 59분 30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후 엎어진 나를 그늘로 데려가서 쉬게 해주었고, 물을 마시게 해주었다. 컷오프타임을 지켰다고 사람들이 축하해줬다.

간신히 들어왔다. 체크 아웃 타임 30초 전이라니, 해냈다.

축하를 받으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직 폴이 안 왔다. 나는 폴을 혼자 두고 먼저 온 것이다. 폴을 기다렸다. 주최측에 폴을 위해 부탁했다. 그가 아직 걷고 있다고... 주최측에서는 Long Day에는 컷오프타임 규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폴은 11시 30분이 되어서 도착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폴은 해냈다. Long Day 기간 동안 16명의 사람들이 포기를 했다고 한다.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 중, 가장 열등한 나와 폴은 끝까지 걸었다.


같은 텐트에서 머물고 있는 스페인 아저씨 '카를로스'가 나를 찾아서 안아주었다. 영어를 못하는 아저씨와 나여서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카를로스' 아저씨는 첫날부터 내가 완주를 하면, 나를 찾아서 안아주었었다. 엄청난 체력으로 사막 마라톤을 문제없이 해내는 아저씨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고, 언제나 선한 미소로 격려해주었다. 격려와 포옹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카를로스 아저씨로 부터 배웠다. 나또한 남은 삶을... 아저씨를 닮은 모습으로 살고 싶다.

카를로스 아저씨는 정말 멋진 어른이다.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오늘 낮에는 푹 휴식이다. 상처난 발을 치료하는데, 발톱이 3개가 빠졌고, 물집은 세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발전체에 가득했다. 그런데 생각도 않았던 왼쪽 무릎에서 극심한 통증이 왔다. 의사가 만져보더니, 왼쪽 무릎 연골이 상했는데, 안 걸으면 된다고 한다. 끝까지 걷겠다고 했더니, 진통제를 준다. 그걸 먹고, 휴식을 취한다. 조금만 더 몸이 버텨주길 바란다.

롱데이가 끝난 후, 치료를 받는 진료소 안. 여기서 꼴찌로 들어온 폴과 나는 환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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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년 전, 사직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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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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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모스크바에서 제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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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미인을 찾아서 우크라이나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5


# 5. 아크로폴리스가 멋진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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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산토리니, 신혼여행지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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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발칸 반도, 친절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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