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th 국가: 남아공 14th 여정: 케이프타운 4. 24-4.27
사십춘기 방랑기 D+47일(2017.4.25.) 남아공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에 저녁 8시에 도착을 했다. 케이프타운은 국제선보다 국내선 터미널이 더 컸다. 아마도 요하네스버그로 입국한 관광객들이 케이프 타운으로 이동해오기 때문에 그런 듯 싶었다. 케이프타운이야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워낙 악명이 높은 남아공이다보니, 저녁 9시가 넘어서 숙소를 찾기 위해 시내를 헤매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생긴 거에 비해서 겁이 많다. 애매하게 시내로 나가서 고생하기 보다는 그냥 공황에서 노노숙을 하기로 결정했다. 유심을 구입하고, 충전 어댑터까지 구입한 후에, 머무르기 적당한 곳을 찾아서 공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공항임에도 무언가 도난에 취약한 느낌이다. 다행히 나름 괜찮은 장소를 찾았다. 오늘은 뭔가 말랑말랑한 것이 보고 싶어서, 오래 전 드라마인 "네멋대로 하라"라는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영어를 아주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끔 겸손한 표현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심으로 내 영어는 쓰레기다. 내 시대의 영어교육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그냥 내가 영어 공부를 안 했던 탓이다. 말하기도, 듣기도, 쓰기도, 읽기도 전부 엉망이다. 이런 수준으로 48일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들리는 단어 몇개와 상황적 맥락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미아가 되지 않고 있지만, 단편적인 어휘 + 손짓발짓으로 의사 소통을 하다보니, 자격지심일 수 있으나,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미묘한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현재 내가 지닌 복잡한 생각들을 표현할 영어라는 도구가 없다보니, 나의 표현은 결국 유치원생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나를 처음 대하는 외국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이 단순하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그러나 내 안에는 복잡한 사고의 흐름이 가득차 있다. 이 처절함에 대해서는 떠돌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결코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소아마비나 지체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생활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나는 그들의 어눌한 표현에만 집중하여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의 복잡성과 깊이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했었다.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도 그랬던 거 같다. 표현되지 못하는 고민과 깊이에 대해서 잘 고려하지 못하고, 섣불리 재단했었던 나의 흔적들이 떠올랐다. 반성하자.
왜 갑자기 영어이야기냐면, 세계 여행 출발 후 47일이 지났고, 아프리카이다보니, 머리를 손질할 때가 되었다. 다행히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미용실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표현할 언어가 내게 없었다. 어디에서 왔냐고 해서, 코리아라고 했더니, 김정은을 안다고 해서, 나도 안다고 답하면서 서로 농담을 했었는데, 이 친구가 김정은 머리처럼 잘랐다.
더불어 이제 사하라 사막 마라톤이 3일 남았다. 진행처에서 뭔가 유의사항이라는 것을 보내왔는데, 읽어 보니 숙소 배정 내용이었다. 천막별로 10명 정도씩 남녀 섞어서 배정해주는데, 전체 숙소 중에서 내가 속한 텐트만 전부 남자였다. 로맨스는 개나 줘버려라.
사십춘기 방랑기 D+49일(2017.4.27) 남아프리카 공화국
어제 계속해서 내리던 비는 늦은 밤에 그쳤고, 아침이 되어보니, 도시는 샤워를 하여 더욱 상쾌한 모습이다. 간단히 짐을 챙겨서 '테이블 마운틴'으로 향했다. 워낙 인터넷상 퍼져있던 과장된 글들(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순위에 남아공의 도시가 꼭 들어가 있었다)에 쫄아 있었다 보니,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남아공에서는 좀 더 거리를 느끼고 싶어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이동했다. '테이블 마운틴'은 케이프타운 어디에서든 보이기에, 길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1시간 정도 걸었더니, '테이블 마운틴'을 갈 수 있는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었다. 옆으로 등산 코스도 있었지만,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있어서,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케이블카 탑승을 기다리면서, 한 때 말이 많았던 세계 7대 자연경관 중 하나로 '테이블 마운틴'이 선정되었다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있는 것을 봤다. 그와 함께 '제주도'의 이름도 보인다.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단체에서 진행한 사기성 짙은 해프닝이었지만, '테이블 마운틴'을 관광하러 온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제주도'가 홍보되고 있는 점은 뭔가 기분좋은 일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는 광경이 참 장관이다. 그리고 세상에나 중간에 케이블카가 360도 회전도 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테이블 마운틴' 정상(사실 정상이 하도 넒어서 어디가 정상인지 모르겠으나...)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감탄이 나온다. 걸스데이의 민아, 유라, 혜리, 소진처럼 예쁜 애 다음에 예쁜 애, 그 다음에 예쁜 애 이런 느낌이다. 멋진 광경 다음에 멋진 광경, 그 다음에 멋진 광경.... 테이블 마운틴은 경이로웠다. 10시 30분경에 산 정상에 이르렀는데, 오후 3시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테이블 마운틴'이라는 이름처럼 이 산의 정상은 탁자처럼 평평하다. 걸어서 산 정상을 한바퀴 도는데, 2시간은 잡아야 할만큼 넓다. 그리고 그렇게 산 정상을 트랙킹하면서 보는 광경은 산토리니나 플리트비체에 견줄만 했다. 아주 좋았다. 종종 이 '테이블 마운틴'에는 구름이 낀다. 이렇게 끼는 구름을 식탁보라고 부른다. 내가 갔을 때는 이 식탁보가 있다가, 점점 사라지는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구름속의 산택이 되었다. 정말 경이로왔다.
'테이블 마운틴'은 케이프타운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그래서 사방을 막힘없이 관찰할 수 있다. 참으로 상쾌한 광경이다. 그렇게 산책과 풍경감상에 열을 올리다가, '로빈섬'을 보게 되었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로빈섬을 직접 갈수는 없었기에, 바다 가운데 동떨어져 있는 조그만 섬을 계속 관찰했다. 그곳은 배를 타고 가야지, 헤엄쳐서 갈 수는 없을 만큼 제법 육지와 떨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섬은 인종차별정책 유지를 위한 감옥이었다.
'케이프타운'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름답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차별하는 정책을 당연하게 집행했던 나라의 심장부였다.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이들을 '로빈섬'에 감금시켰다. 남아공 모든 지폐에 그려져있는 인물인 '넬슨 만델라'는 이 로빈섬에서 20년이 넘게 갇혀있으며, 매일 '테이블 마운틴'을 쳐다봤었다고 한다. 왜 남아공은 인종차별 정책을 최후까지 실시해야만 했었을까? 그것은 이곳 백인의 비중이 다른 아프리카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백인이 남아공에 많이 살았던 이유는 얄궂게도 이곳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좋고,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에 힘있는 백인들이 많이 모였고, 그것을 독점하고 싶었기 때문에 차별을 백인들이던 것이다. 좋고 아름다운 곳은 매혹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 좋고, 아름다운 곳은 힘있는 자의 독점이 나타날 여지가 높으며, 이러한 독점으로 좋고 아름다운 곳은 더이상 좋고 아름다운 곳일 수 없게 된다는 점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이제 계속 꿈꿔왔었던 사막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 '나미비아'로 이동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