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세계 3대 폭포, 빅토리아 폭포에 가다

10th 국가: 짐바브웨 13th 여정: 빅토리아 폭포 4.22-4.24

by GTS

현재까지의 여정(2017. 3.10 출발)


① 한국 → ②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시베리아 횡단 열차) → ③ 러시아 모스크바 → ④ 우크라이나 키이우 → ⑤ 그리스 아테네 → ⑥ 그리스 산토리니 → 그리스 고린토스 → 알바니아 티라나 → 몬테네그로 포드코리차 → ⑦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 ⑧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 오스트리아 비엔나 →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 ⑨ 체코 프라하 → ⑩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 ⑪ 네덜란드 뒤셀도르프, 노테르담 → 벨기에 브뤼셀 → ⑫ 이탈리아 베니스 → ⑬ 이집트 카이로 → ⑭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 보츠와나 국립공원



사십춘기 방랑기 D+44일(2017.4.22.) 짐바브웨 첫째날 in 빅토리아 폴스

아프리카 국가의 비행기 이동은 안전하지만, 환승이 많다. 보통은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해서 환승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행기를 너무 오래 동안 탄 거 같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린다. 그래도 카타르 항공의 비행기는 너무도 좋아서, 만족스럽다. 오일머니 최고다. 저녁 7시 20분에 시작한 비행은 2번의 환승을 거쳐서 다음날 오후 1시 20분경에 끝났다. 활주로 옆으로 가득한 나무숲이 밀림처럼 느껴지면서, 진짜 아프리카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빅토리아 폭포로 가는구나. 세계 3대 폭포에 대한 설렘은 나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그러나 그 설렘은 짐바브웨 입국수속을 하면서 산산히 부서졌다. 심사 부스가 적은 것도 아닌데,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 생각을 안했다. 입국심사와 비자구입까지 하나의 창구에서 병행하면서 생기는 문제로, 비자만 따로 구입할 수 있도록 창구하나만 만들면, 한결 나아질 문제였다. 그렇게 1시간이 넘게 기다렸다. 온통 짜증이 났는데, 심사대의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너무도 성실하게 비효율적 방법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진을 다 빼고서야 출국장에 나올 수 있었다. 공항을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빅토리아 폴스 시내까지 가는 방법은 택시밖에 없는 거 같다. 이럴 때는 그냥 착한 기사를 만나는 게 좋다. 필립은 정직한 기사였다.


공항을 나와서, 카이로처럼 로컬버스로 숙소를 찾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공항에는 어떤 종류의 버스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택시 뿐, 공항 주변에는 그냥 숲이었다. 숙소까지 20km인데, 걸어갈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잡았다. 숙소까지 30달러를 이야기한다. 25달러로 합의를 봤다. 더 깎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그 사람도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택시 기사의 이름은 필립이었다. 20분 정도를 달리니, 숲길이 끝나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여기가 아프리카구나. 필립은 자신이 근무하는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라고 이야기한다. 필립의 제안을 속는 셈 치고 받아들였다. 의심만 하고는 못살겠다.


필립은 내가 좋은 고객(호구 고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친절했다. 나 또한 적정한 선이라면, 기꺼이 호구가 될 생각이었다. 운전을 하던 필립에게 숙소 근처에 교회가 있느냐 물었다. 그러자 필립이 자기도 크리스챤이라며,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가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고, 그래서 내일 9시에 만나서 같이 교회를 가기로 약속했다.


숙서가 특이하다. 리셥션은 매우 깨끗했고, 각 숙소는 모두 독채 형식이었다. 독채 내부의 시설들은 탁월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안전하고, 머물기 괜찮았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이름은 “Rest Camp” 내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숙소였다. 그간 머물렀던 숙소 중에서 부지로는 단연 압도적으로 넓었으며, 걸어서 빅토리아 폭포를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미소가 멋진 지배인이 체크인을 도와줬다. 매우 젠틀한 그는 아프리카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흑인의 느낌이 아니었다. 숙소는 전부 독채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숙소로 가는 길 동안 원숭이가 강아지처럼 따라왔다.


확실히 관광지이다. 아프리가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안전한 느낌이다.


여기는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였기에,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아프리카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트도 아주 세련되고 있었고, 멋지게 꾸민 흑인형들과 누나들도 많았으며, 거리도 매우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도 살짝 쫄림은 있다. 거리를 거닐 때마다 따라붙으며 물건을 팔기 위해 말을 거는 흑인형들과 나를 보며 서로 쑥떡거리는듯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은밀하게 다가와 마리화나를 원하냐고 묻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밤에는 절대 나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게 된다. 재밌는 것은 돈을 기념품처럼 팔고 있었다. 블루마블같은 가짜돈이 아니라, 실제로 짐바브웨에서 발행한 돈이었다. 사상 최대의 인플레이션으로 2010년인가 전까지 이런 돈을 대거 찍어냈다고 한다. 50억달러로 빵하나 살 수 있었으려나. 뭔가 든든해진 느낌 ㅋㅋㅋ 다섯장의 지폐. 그냥 나는 겸손하게 50억 정도만 벌자.

20만 짐바브웨 달러, 75만 짐바브웨 달러, 1,000만 짐바브웨 달러, 250억 짐바브웨 달러, 500억 짐바브웨 달러




사십춘기 방랑기 D+45일(2017.4.23.) 짐바브웨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프리카의 밤은 생각보다 추웠다. 새벽에 깨어서 비어있는 옆침대의 이불까지 갖고와 덮고 나니 괜찮아졌다. 겨울에 출발해서 짐이 되고 있는 겨울옷들을 버릴 생각이었는데, 일단 아프리카에서는 계속 갖고 다녀야겠다.

택시 기사 필립이 소개해 준 교회.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아프리카에서 기대한 특유의 엄청난 환대가 있다.

아침 9시에 ‘필립’을 만나서 교회로 갔다. 예배가 끝나고, 빅토리아 폭포로 갈 예정이어서, 나의 복장이 제일 부적절(반바지와 민소매티)했다. 교회로 모이는 사람들의 복장은 매우 단정하고, 세련되었다.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은 처음 찾아온 동양인이 신기하고, 기특해보였나보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그곳의 교회 책임자 분들을 만나서 거의 다 인사를 했던거 같다. 그리고 예배 중에는 특별히 앞으로 불러내서 교인들에게 인사까지 시켰다. 아, 부끄러운 나의 영어 예배의 형식은 낯설었지만, 마음이 너무도 편하고 좋았다. 그리고 피아노하나 없지만, 엄청난 리듬감과 성량으로 조화되어 계속 울리는 찬송들... 어떻게 표현하지 못할 만큼 놀라왔다. 예배가 거의 끝났을 무렵, ‘필립’이 공항에 오늘 도착한 손님을 데리러 가야한다고 급히 나오는 통에, 사람들과 인사를 못하고 나왔다. 그게 다소간 아쉽다.


빅토리아 폭포로 가는 길... 흑인 노동자 3명이 나를 에워쌌다. 비가 오는 거 같아 '우비'를 입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가 아니라 빅토리아 폭포물이 만들어낸 물방울이었다.

예배 후에는 빅토리아 폭포에 갔다. 빅토리아 폭포는 현재 우기 중이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내려와 폭포이상의 안개를 만들어 시야를 온통 가렸다. 여행 중에 노숙 때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판쵸우의를 꺼내 입고, 빅토리아 폭포를 향해 걸었다. 갑자기 흑인 친구 3명이 나를 에워 싸서 순간 무서웠는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이상한 우의를 입고 걸어 가는 동양인이 신기했나보다. 빅토리아 폭포 공원에 입장하고 나니, 그야 말로 완전히 들이붓는다. 그 결과 휴대폰이 물을 먹었고, 카메라렌즈에 습기가 차는 불상사가 생겼다. 싸서 예비폰으로 준비했던 화웨이. 싼 게 비지떡이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는 여행이라니...

빅토리아 폭포는 우기가 아니라 건기에 와야 한다. 물이 너무 많아서, 근처에 폭우처럼 쏟아져 내린다. 어떻게 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 그냥 압도될 뿐.


빅토리아 폭포는 소리가 열일한다. 물 떨어지는 소리는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안개와 폭우로 인하여 빅토리아 폭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그 떨어지는 소리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짐바브웨쪽에서 보는 빅토리아 폭포는 2월에서 7월 사이에 우기로 폭포의 물이 어마어마한다. 폭포물로 날씨는 흐리지만, 소리로 압도당하는 느낌이 매력적이다. 만약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우기 끝자락인 7월 이후로 방문하길 권한다. 한 10년 후, 내가 50세가 되었을 때까지 나의 삶이 허락된다면, 그때에는 건기에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그때는 그 무지개까지 함께 볼 수 있으려나.




사십춘기 방랑기 D+46일(2017.4.24.) 짐바브웨 셋째날


밤새 비가 내렸다. 우기의 아프리카였기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침이 되었고,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사파리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총 175달러로 매우 비쌌지만, 한번은 무리를 해보고 싶기도 했고, 또 광활한 들판을 뛰어노는 야생동물을 보는 것은 아프리카가 아니고서는 접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니까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출발할 때까지는 사파리 여행 생각에 차 안에 있는 사람들처럼 나도 설렜다.


기껏 본 동물이 이게 다다. 사자도 기린도... 보기 힘들었다. 동물을 볼 수 없는 사파라.. 그냥 바람 쐬러 나옸다고 생각하자.


사파리는 짐바브웨가 아니라, 이웃나라인 보츠와나 ‘초베 국립공원’에서 진행되는데, 보츠와나는 비자가 필요없으니, 충분히 가볼 만한 일이었다. 사파리 투어는 자연의 바람을 맞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창문이 없는 차를 이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우기였기에 날씨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모여서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40년 인생 처음 방문한 아프리카는 때마침 우기였고, 평생에 한번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사파리에는 때마침 비바람이 불었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그때 차에는 창문이 없었을 뿐이고, 동물들 또한 궂은 날씨에 자신들의 거처에 숨어 있어서 눈에 잘 띠지 않았을 뿐이다. 타이밍은 이처럼 중요하다. 오늘의 사파리 투어는 지지리도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나의 연애사를 떠오르게 했다. 그래도 '초베 국립공원'을 가기 위해, 보츠와나 출입국 수속을 밟으면서, 한국 관광객분들을 만났고, 혼자 여행하는데 힘내라고 응원도 들었다. 놓친 타이밍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앞으로의 타이밍에 집중하리라 다짐해본다.

여권에 출입국 도장 찍는 재미가 있다. 보츠와나로 출국했다가 다시 하루도 되지 않아서 짐바브웨로 돌아온다. 외국에서 한국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사직서 쓰고, 사십춘기 방랑기] 이 전의 글들


# 1. 7년 전, 사직서를 썼다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2


# 2.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다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3


# 3. 모스크바에서 제자를 만나다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4


# 4. 미인을 찾아서 우크라이나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5


# 5. 아크로폴리스가 멋진 아테네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8


# 6. - 산토리니, 신혼여행지 답사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9


# 7. - 발칸 반도, 친절한 남자

https://brunch.co.kr/@b355e3bd564c4ea/10








keyword
이전 06화# 13. 피라미드 관광은 KFC 2층에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