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th 국가: 이탈리아 11th 여정: 베니스 (4.16-4.17)
현재까지의 여정(2017. 3.10 출발)
사십춘기 방랑기 D+38일(2017.4.16) 벨기에 브뤼셀 첫째날
어제 공항에서 노숙을 했다. 노테르담 공항은 밤 12시 30분까지만 비행기가 도착을 하기 때문에 항공사 직원들도 그 시간 이후로는 퇴근을 한다. 그런데 공항 자체는 폐쇄가 되는 것이 아니어서, 노숙을 하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따뜻하고, 안전하고, 전기 얻기 편하고, 무료 인터넷도 되고, 참 좋았다.
문제는 날이 밝으면서 벌어졌다. 6시 55분 이륙하는 비행기가 있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을 체크인을 한다. 그 덕에 일찍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짐을 꾸리고, 노테르담 중앙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짐이 무거워서, 자리에 내려놓고 화장실에 다녀 왔는데, 경찰이 짐은 늘 들고 다니라며 민망할 만큼 뭐라고 한다. 황급히 공항을 나와서 노테르담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지만, 1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찬찬히 시간표를 보니, 평일과 달리 공휴일에는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운행하는 차편이 없었다. 첫차가 9시 15분이었다. 1시간 이상 남아서, 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더니 화장실을 가고 싶어졌다. 역시나 화장실을 이용하기에 짐이 지나치게 크고, 무거웠다. 자리에 짐을 놔두고,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경찰이 다시 찾아와서 더 크게 소리를 지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년 3월에 옆나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고 가는 짐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는데, 내가 경찰 눈에는 위험인물로 보인 거 같다. 가지고 있는 짐을 전부 풀러서 보여주고 나서야, 공항을 나올 수 있었다.
9시 15분에 버스를 탔고, 로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는 로테르담 인근을 조금 더 둘러보고, 교회까지 갔다가 벨기에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노숙한 이후로 피곤해서 그대로 브뤼셀로 이동했다. 휴일이다보니, 버스 매표소는 문을 닫았다. 그래서 다소 비쌌지만, 기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오후 1시 20분 경에 브뤼셀에 도착했으나, 숙소까지 이르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브뤼셀역에는 총기를 든 군인들이 많아서, 다소 살벌한 느낌이었다. 테러로 인한 고통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검문하고 있었고, 나는 잔뜩 짐을 들고 있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더군다나 숙소비가 저렴해서 예약했던 숙소는 브뤼셀의 할렘가에 있었다. 숙소를 향해 도로를 따라 걸을수록, 흑인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더니만, 나중에는 거의 90% 정도가 되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당황했다. 흑인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며, 나를 쳐다보면 무언가 무서워진다. 일찍 브뤼셀에 오기를 잘 했다. 밤에 이 거리를 걷는 것은 엄두가 안났을 일이다. 힘겹게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밤이 되어서 눈을 떴지만, 숙소 밖을 나갈 엄두가 안난다. 그냥 오늘은 이렇게 숙소안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불현듯... 오늘이 4월 16일임을 떠올리게 된다. 페이스북과 포털 사이트 등에서 이 아픈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내 오른팔에는 Remember 0416이라는 글귀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으나, 과연 내가 이 슬픈 사고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십춘기 방랑기 D+39일(2017.4.17) 이탈리아 베니스
오전 10시경에 체크아웃을 하고, 브뤼셀 공항으로 향했다. 브뤼셀에서는 잠만 자고 이동하는 셈이어서, 벨기에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거의 경험을 하지 못한 셈이 되었다. 나중에 다시 방문하는 계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항공료가 싼 라이언에어로 이탈리아 베니스를 향한다. 비행기가 트레비조 공항에 착륙하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라이언에어는 이런 느낌이 좋다. 공항에서 나오는데, 검문소에서 잡는다. 그리고서 묻는 이야기가 돈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유로와 달러 둘 다 있다니까, 보내줬다. 돈 없는 거지인줄 알았는가?
트레비조 공항에서 베니스로 향했다. 차가 막혀서 1시간 정도 걸렸지만, 일단 베니스에 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바다가 일상이 된 도시, 전에도 왔었지만, 참 신기한 곳이다. 전에는 섬 외각에서 잤는데, 오늘은 특별히 섬 내부의 숙소를 잡았다. 다소 비쌌지만, 그 중에서는 가장 싼 숙소였다. 정말 숙소 찾는 것이 어려웠다. 꼬딱지만하게 붙여놓은 "백패커스 호텔" 표시... 이걸 물어물어서 찾아간 내가 새삼 용하다. 큰 기대를 안해서인지, 숙소 내부는 오히려 마음에 든다.
잠시 쉬다가, 이탈리이아로 신혼여행을 온 30년 지기 절친 세민이를 만나러 산타루시아역 광장으로 갔다. 친구의 신혼여행을 찾아가는 진상이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40일만에 이국땅에서 만난 친구. 40일 전에는 나와 같은 싱글이었는데,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게 낯설지만, 보기 좋았다. 세민이의 와이프인 혜미씨는 이제 2번을 보는 것이다. 긴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이탈리아에서의 첫날일 터인데, 졸지에 남편의 친구를 만나야 되니... 더욱 미안했다. 그래도 업보라 생각하시라고 했다.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한 30년 지기 세민이는 이탈리아에서 성악 공부를 했었다. 그렇다보니 이탈리아어를 아주 잘 한다. 역시 현지 언어를 아는 이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 저녁은 세민이와 혜미씨에게 빌붙어서 이들이 시켜주는 대로 먹었다. 7시 40분에 시작된 식사가 저녁 9시 5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원래 밥먹을 때, 말을 하지 않고 빨리 먹는데, 유럽 여행을 하다보니 유러피안 스타일이 되었는가 보다. 그렇게 신혼 부부를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게 되었다.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내가 한 행위가 얼마나 민폐행동이었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신혼 여행을 온 신랑, 신부를 첫날 저녁 식사를 내가 뺏은 것이니.
둘과 헤어져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술취한 이탈리아 청년 세명이서 시비를 건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대응해주다가, 이 친구들이 계속 따라오면서 시비를 거니, 나중에 짜증나서 정색을 하고, 우리말로 욕을 하니 떨어진다. 역시 우리나라 욕이 최고다. 나를 떠난 따라오던 세명은 다른 사람을 찾아서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여자라면 구해줄 터인데, 남자여서 그냥 지나쳤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유럽을 떠나서 아프리카로 입성한다. 아프리카는 처음이다보니... 유럽에 갈 때보다 더 떨리는 심정이다. 그래도... 사람사는 곳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발을 내딛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