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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4일(2017.4.12)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부르크, 본
이틀간 머물렀던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서 제자들과 함께 뒤셀도르프로 이동하였다. 아침부터 서둘렀지만, 뒤셀도르프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원영이는 스웨덴으로 가고, 준이와 상현이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며, 나는 네덜란드로 간다. 이 녀석들과 보내는 마지막날이다. 왠지 살짝 울컥해진다. 뒤셀도르프를 작별 장소로 정한 이유는 원영이가 스웨덴으로 떠나기 위해 가장 싼 비행기 편이 여기에 있었기도 하고, 나와 교회를 같이 다녔던 후배(이제는 친구에 가까운)가 뒤셀도르프로 출장을 와 있었다고 해서, 잠시 만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볼 것이 없다고 말하는 뒤셀도르프에 겸사겸사 오게 되었다. 뒤셀도프르 중앙역에 도착한 후, 아이들은 먼저 숙소로 가고, 나는 후배인 용희를 만났다. 용희가 해외로 출국한 이후로 못봤으니, 최소 12년 이상을 못만났던 녀석이다. 각자 서로만의 세상을 살다가, SNS로 연락이 닿아서, 12년 만(엄밀히 말하면... 그 이상의 기간)에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남에 서먹서먹할까봐 염려가 안된 건도 아니지만, 집을 떠나 사람이 그리웠는지...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20대에 헤어졌던 2명의 남자가 40살과 39살이 되어서 재회하게 되었다. 잠시 서양인들 틈에서 동안이라고 착각했던 나에게, 용희는 진정한 동안의 클라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거의 15년만에 만났는데, 반가웠다. 우리는 어쩌면 어색해진 친구와 다시 만날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용희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 서로 지난 이야기를 하다가 새삼 시간의 흐름에 놀랐다. 서로에 대한 기억은 20대였을 때가 마지막이어서, 주로 하는 이야기들도 파릇파릇한 20대 초중반의 교회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 때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어보이는데, 어느새 둘다 중년이 가까운 나이다. 한국을 떠나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용희앞에 서니, 불과 30일 남짓 서울을 떠나있는 나는 고개가 숙여진다. 나와 헤어진 후에 업무 때문에 급히 사업장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떠돌이 생활을 온전히 마친 후, 일상후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준이, 원형이, 상현이를 다시 만나서 뒤셀도르프를 걷는다. 그저 제자들을 따라가 움직일 뿐이다. 그게 너무도 좋았다. 청계천 비스무리한게 있어서 그 길을 따라서 걸었다. 유럽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어느 도시나 걷기 좋은 길들이 제법 있고, 또 그 길을 걷는 이들이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쉼이 더 많아지기를...
나의 자랑, 나의 제자들. 너희 덕택에 내 시간이 풍부했다.
원래 계획은 숙소로 돌아와서 닭볶음탕을 해먹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취사가 가능한 숙소도 다소 무리해서 잡은 것이다. 그런데 뒤셀도르프에 도착하니, 몇몇 식당들을 제외하고, 식료품점들이 전부 문을 닫았다. 그것은 유럽에서 명절과 같은 부활절 연휴로 인한 휴무였다. 닭을 살 곳도, 쌀을 살 곳도 전부 문을 닫았다. 그래서 우리의 닭볶음탕은... 원영이가 공부했던 레시피에도 불구하고,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거리를 떠돌았다. 그러나가 한국분위기가 물씬나는 술집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고 들어갔는데... 문을 넘어서자마자 독일에서 서울 신촌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 아무말 대잔치를 하기에는 한국식 술집이 최고인듯 싶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온 나그네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이 나그네들과의 술자리는 즐거웠다. 언제 다시 만나려나... 잘들 지지내거라. 이제 날이 밝으면, 이 녀석들과 헤어진다. 자신들의 소중한 휴가를 나같은 인간을 위해 함께 해준 이 녀석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하라 .
뒈셀도르프의 한인 식당. 마지막 회포를 풀기에는 딱 좋았다. 모두들 행복하라.
사십춘기 방랑기 D+37일(2017.4.15) 네덜란드
뒤셀도르프에서 제자들과 헤어졌다. 아침이른 시간부터 각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터미날을 향했다. 상현이와 준이는 프랑크푸르트로, 나는 네덜란드로, 원영이는 스웨덴으로 떠난다. 아쉬움을 아는지,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출발 시간이 늦었던 원형이는 숙소에서 더 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배웅하기 위해 일찍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내가 타야할 버스가 늦게 오자, 오히려 자신이 걱정하며, 버스가 올 때까지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참으로 곱디 고운 성품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원영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한국외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노테르담으로 향했다. 여기에서 첫 교직 생활의 제자인 대원외고 중국어과 민상이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을 시작하며, 10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이제 30살이 된 이 녀석은 아내와 함께 네덜란드 노테르담에서 있다고 했다. 10년 만이었지만, 이 녀석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노테르담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우역곡절이 있어서 예상 도착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노테르담에 도착하기 직전, 내가 예약한 숙소가 '여성만 사용이 가능한 도미토리룸'이어서, 사용이 불가하다는 메일을 받았다. 내 불찰이다. 급히 다른 숙소들을 검색해보지만, 부활절 연휴이기 때문에 숙소도 적고, 이용대금도 지나치게 비쌌다. 여행 초기였으면 많이 당황했겠으나, 나는 이제 떠돌아다닌지 40일 가까이 되는 나름 여행 고인물이다. 그리고 극단의 P.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노테르담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왕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복잡한 고민이 해결이 되었다. 민상이와의 약속이 저녁 7시였기 때문에, 5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튤립축제를 열고 있는 '쿠켄호프'라는 지역을 향했다. 노테르담에서 쿠켄호프는 기차와 버스를 모두 이용해서 가야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3시경에 '쿠켄호프'에 도착했는데, 인파가 어마어마했다.16유로 입장권을 끊고, 튤립축제를 즐겼다.
네덜란드는 튤립이지. 튤립축제를 한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날씨가 춥지만, 꽃은 피었고, 아름다웠다.
꽃 축제에 남자 혼자 오는 것은 뭔가 많이 애매하다. 꽃구경도 좋지만, 함께 오면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막눈이지만, 꽃이 피어있는 모습은 기분이 좋았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혼자 온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보니, 외로움과 궁상맞음이 배가 되어 느껴진다. 내가 네덜란드까지 와서, 튤립축제를 40세가 되어 혼자서 관람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예쁘기는 하지만, 남자 혼자 튤립축제는 아무래도 아닌듯 싶다. 그래도 제법 꿋꿋하게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녔는데, 날씨도 춥고, 바람도 불고, 이래저래 힘들었다.
로테르담 중앙역으로 다시 돌아와서, 민상이를 만나게 되었다. 민상이는 와이프와 함께 나왔다. 머나먼 타국에서 10년만에 연락이 닿아서 만난 제자, 만나기 전에는 살짝 염려도 되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고, 그 공백의 시간만큼 서먹서먹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들... 그러나 염려는 기우였다. 서로간의 공백은 만나서 이야기하며, 다시 채워가면 될 일이었다. 민상이와 그의 와이프 현정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네덜란드에 대한 이해와 신혼부부부의 애정생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새로운 희망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네덜란드로 떠나온 민상이와 이러한 남편의 결정에 응원하며, 기꺼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현정씨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하는 애정의 깊은 단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이 멋진 신혼부부의 도전에 대해 축복하며, 응원한다.
고등학교 교사로서 첫 제자였던 친구가 결혼을 해서 가장이 되었다. 확실히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 이 어른스러움이 부럽다.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가 주책없이 숙소 예약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민상이와 현정씨는 자신들의 집으로 가서 머물고 가기를 계속 권했지만, 나는 끝까지 거절했다. 성스러운 신혼의 보금자리를, 내가 오염시킬 수는 없다, ^^ 민상이와 현정씨를 배웅한 후, 밤 11시 30분에 공항행 버스를 타고, 노테르담 공항에 자정무렵 도착했다. 공항을 한바뀌 둘러보고, 노숙할 장소를 찾았다. 밖은 추웠지만, 이 안은 제법 밤을 지세울만 하다. 다행이다. 나는 아무데서나 참 잠을 잘 잔다. 신이 내게 주신 축복이리라. 노숙은 나의 힘!!
이제는 공항 노숙의 전문가가 되지 않았겠는가. 공항에서 판쵸우의 하나깔고 잠을 청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