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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09. 2024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읽고 있습니다.

너의 한계가 그분의 한계는 아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회색인인 거 같습니다. 떠돌이, 탕자, 잃어버린 영혼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함께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으며, 가장 소중한 친구의 형님께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제게 편지를 남겼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자.' 이 편지를 몇년간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이 편지에 가타부타 제대로 답을 해야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성경을 읽으며, 생긴 온갖 종류의 생각들입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형님의 요청에 정직하게 답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곱. 창세기 18장 17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이 전적인 신임의 단계.. 아브라함은 여호와께 전적으로 신임받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호와께서는 계획하신 것을 기꺼이 아브라함과 공유하기를 희망하셨다. 그것은 초청이다. 감동적인 초청이다.


나는 선택을 앞두고 고민이 많은 편이다. 이럴 때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나 인생 선배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가끔씩 제자였던 친구들이 성장하여, 이제 나와  함께 고민을 하고, 내게 조언을 해주는 일도 생기게 될 때마다 감격스럽다. 그것은 관계적 도약이다. 나의 제자였던 이들이 어느 순간 나의 삶을 나누는 동료로서 승격되는 그런 관계적 도약.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관계적 도약을 허락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아브라함과 여호와의 관계 속에서 찾아보자. 그것이 나의 숙제이다.


여덟. 창세기 20장 13절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겁이 많다. "네 고향 본토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는 명령에 대해 결과만을보고서 이야기하면, 아브라함이 용감하게 자신의 집을 떠나, 기꺼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랐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실제로 그러지 않았던 거 같다.


매우 겁이 많았던 그는 자신이 이동하는 중에, 이방 민족에게 공격당하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장 근원적이고 독점적인 소유라고 할 수 있는 아내(보통은 아내를 다른 이들에게 침범을 당하는 것을 거부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로 인하여 다른이방 족속의 지배자들과 갈등관계에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자신의 아내에게 새로운 지역을 떠돌면서 "우리의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는 비겁한 제안까지 하게 된다 .                   

그런데 이러한 그의 본성은 믿음의 조상으로 여호와께 인정받은 후로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위의 구절은 애굽에서 있었던 아내를 여동생으로 속였던 사건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그는 여전히 겁이 많고, 여전히 과거의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반복한다.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의 이러한 반복적인 실수에 대해서 내 예상보다 훨씬 관대하셨다. 그의 약함을 비난하시기 보다는, 그가 싸지른 똥을 기꺼이 치워주시는 역할을 담당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인간을 한계를 잘 알고 계심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인간적인 한계에 대해서 생각보다 훨씬 관대하시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시선일 것이다. 인간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아브라함이 되게 만들었던 그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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