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Apr 12. 2024

이제 이삭에 대해서 읽고 있습니다.

무난한 삶이 아니라 묵묵하게 강한 이의 삶이었다.


일곱. 창세기 24장 2절~67절

 (생략)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생략)



매우 긴 내용으로 전체를 옮길 수가 없다.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노총각 아들인 이삭의 베필을 가나안 여자 중에서 찾기를 싫어하여, 자신의 충복인 종에게 이삭의 아내를 찾아오라는 특별 임무를 맡긴다. 이 임무를 맡은 종은 아브라함의 고향집을 방문하여 이삭의 베필을 구해오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직한 종. 성경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의 노년에 그의 모든 재산 운영의 전권을 맡고 있었던 심복 중의 심복이다. 보통의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신뢰를 받은 이의 배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이 충직한 종이 자신의 주인을 위해 맡은 바 사명을 온전히 훌륭하게 완수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 충직한 종의 모습은 매우 놀랍다. 아브라함의 명령은 아들인 이삭을 위해서 아내를 자신의 친족 중에서 구해오라는 것이었다.


이 미션은 참으로 어렵다. 누군가에게 이성을 소개해주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람마다 가치관도 다르고, 좋은 여자, 좋은 남자의 기준 또한 매우 어렵다. 그래서 소개해 주고 좋은 소리 듣기는 참으로 힘들다. 그런데 이 종은 이 사명을 매우 훌륭하게 완수해낸다.


특히 이 이야기의 백미는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을 찾기 위해 그가 세웠던 판별기준인데, 이는 나그네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우물가에서 기다리다가, 후보가 될만한 여자를 발견하면,  물을 달라고 청하고 반응을 살펴본다. 왜 이러한 판별 기준을 세웠을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이 종이 아브라함을 오래동안 살펴보면서 주인이 가장 우선시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자발적이고 따뜻한 보살핌. 아브라함은 평생 이 삶을 실천했고, 아들 이삭 또한 이 삶을 배웠을 것이다. 이삭에게 어울리는 베필은 이러한 떠돌이들에 대한 보살핌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이여야 한다는 생각을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했던 것은 아닐까. 아브라함의 종은 이러한 덕목을 지니고 있는 리브가를 우물가에서의 행동을 보고서 찾아냈고, 방심하지 않고 자신의 주인에게 이 여인을 데리고 돌아오는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해냈다. 참으로 멋진 사람이다.



여덟. 창세기 26장 12절~25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후략)


이삭이 파놓은 우물에 대해서 이웃 족속들이 강제로 점령하고 훼방을 놓는다. 이 때 이삭은 이들과 다투기 보다는 새로운 우물을 파는 결정을 하고, 새로운 우물을  파내지만, 이에 대해서 또 이웃 족속들이 소유권 분쟁을 일으킨다. 이삭은 이때도 그들과 다투지 않고, 새로운 우물을 파는 선택을 한다. 그렇게 3번의 우물을 더 파고 나서야 우물로 인한 분쟁이 그치게 된다 .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에 비해 이삭의 일생은 참으로 평탄하게 보인다. 창세기에서의 서술에 따르면, 이삭에게는 사건 사고가 많지 않았다. 그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서 기도로 간구했던 좋은 남편이었고, 평생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1부1처제를 실천한 성경에서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로 바치려는 상황에서도 사춘기인 그는 크게 저항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렇다면 그의 성품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가정적이고 섬세한 쪽이었다고 보인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그렇듯이 순한디 순한 사람들의 삶은 밋밋하게 그려진다. 내게 있어서 이삭의 느낌이 그러했다.


그렇게 순하고 착한 이삭은 여호와의 축복으로 인근에서 최고로 부유한 사람이 된다. 자연히 그런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사사건건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것이 가장 크게 불거졌던 것이 우물 해꼬지 사건이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우물을 인근 족속의 유지가 강제로 점거한다. 지금도 그렇겠으나, 목축을 하는 이에게 식수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우물을 강제로 점거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시비이다. 우물을 두고 한번 싸우자는 선전포고이다. 그런데 그는 싸우지 않고, 새로 우물을 파는 선택을 한다. 우물을 새로 파는 것은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을 초래한다. 손익만을 계산했을 때, 참으로 타산이 맞지 않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이삭은 우물로 인하여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렇게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한다. 소유하고 있던 우물로 분쟁에 휩싸였을 때,  1차로 에섹(타툼)우물을 새로 팠고, 그렇게 새로 판 우물인 싯나(대적함)에 인근 족속이 분쟁을 일으키자, 새로 르호봇(장소가 넓음)이라는 우물을 파는 등, 무려 자신의 소유였던 우물을 3회나 포기하고, 우물을 새로 파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3회에 걸쳐서 우물을 새로 파고 나서야, 이삭과 분쟁을 일으키던 이들은 잠잠해진다. 처음에 이 사건을 읽었을 때는 그냥 이삭은 착하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내가 떠돌이가 되어서 다시 읽다보니, 다른 것이 보였다. 그것은 엄청난 이삭의 자신감과 저력었다.  


다른이들이 1번도 하기 힘든 우물을 새로 파는 일을,  3번이나 반복했다는 것은 이를 감당한 재력이 그에게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삭에게 시비를 걸던 이들은 순간 깨달았을지 모른다. 자신들의 시비에 대응하지 않고, 우물만 새로 파는 나약해 보이는 이삭이, 만약 어느날 마음을 고쳐먹고, 그 엄청난 재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였을 때, 자신들을 능히 무찌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묵묵히 우물만 새로 파고 있는 이삭이 무서워졌고, 이제 더이상 이삭의 우물에 대해서 시비를 걸지 못하게 된 것이지 않을까.


한번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이삭의 모습이 여운이 깊다. 나는 너무 투쟁적으로 살아 왔다. 깊은 물은 쉽게 요동하지 않는다. 이삭처럼 묵묵히 새로운 우물을 파는 저력, 그 행동양식을 배우고 싶어졌다.     

이전 04화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읽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