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왜 언니는 안 때려?

21세기에도 남아있는 신분차별

by 써니

몇 년간 약물과 상담치료를 해왔기에 많은 감정과 생각이 앙금이 되어 가라앉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둥둥 떠올라 괴롭히며 순식간에 원점으로 돌려놓곤 했다.


그 아주 오래된, 최근까지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은

엄마 언니를 나처럼 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둘의 사이는 원만했기 때문에 나만 맞고 혼나던 이유가 나의 문제로 기인한 것뿐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만 비정상이고 나만 정상이란 건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의 눈치를 자주 봤다.

전등을 갈거나, 무언가를 구매할 때, 학교 수련회에 나를 보낼지 말지도 모두 언니가 집에 와야 결정할 수 있었다. 결정과 지시가 떨어지면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언니가 해외에 1년간 살고 싶다 하자 엄마는 빚을 내서 자금을 보내주는 언니가 원하는 것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언니도 엄마가 존경스럽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은 엄마와 어린 동생의 기대와 무게를 짊어진 언니가 안쓰러웠다.

나를 무시할 때도 8살 차이의 어린 동생이 얼마나 멍청하고 등신 같고 답답하면 럴까 싶어 부끄러웠다.

'우리 집 가장이자, 내 남편'이라고 말하는 엄마 때문에 부담스러울까 봐 걱정됐다.

나만 없었으면 언니는 외동딸로 사랑받으며 단둘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란 엄마의 말에 더욱 미안했다.

언니는 키도 크고 예쁘고 똑똑하고 성격도 좋은데, 괜히 못난 내가 태어나 오점을 남겼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나한테 모질게 대한 건 사춘기라서 그랬을 거라 이해했다.

엄마는 언니에게 미안해하고 감사하며 살라고 자주 말했다.


언니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잘 해낸 일도 혼을 냈다. 어려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 물어보면 "어떻게 그것도 모를 수 있냐, 애들이 너랑 친구는 해주냐"라고 말했다.

올바른 이야기를 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너밖에 없을 것"이라 했다.

기억력이 좋다는 장점을 말한다면 "회사에 너 같 사람 있는데 내가 한 얘기 다 기억할까 봐 무섭고 소름 돋아서 그 사람이랑 말 안 한다"라고 비웃었다.

친구 얘기를 하면 "역시 어린애들이라 그런지 못 배운 티 내며 철없이 논다. 어차피 1,2년 안에 인연 끊길 거니 많이 놀아두라"라고다.

"못생겼으니 턱 보톡스를 맞아라, 인모드를 맞아라, 살 좀 빼라"며 강요했다.

변명한다면 "어려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10년만 지나도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할 뿐이었다.

언니 영향 때문인지, 형부도 점점 나의 일상 속 표정, 억양, 걸음걸이 등 거친 말로 거칠게 지적해 댔다.

언니는 막아주지 않고 형부와 함께 웃었다.

형부도 "저런 언니 없다, 언니한테 항상 감사해야 한다"라고 자주 말했다.


그런 순간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언니와 형부에게 혼나지 않을 고민하며 끊임없이 나를 검열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과잉으로 제 멋대로 어난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 속에 스스로 갇혀 괴로워하던 중 불현듯 떠올라 유의미하게 번쩍거리는 이 있었다.

이미 죽고 없어진 남자 관련된 이야기였다.


1919년난 한 남자는 두 명의 아내를 두었다.

첫 번째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알코올중독자에게 막걸리 값을 주고 헐 값에 두 번째 아내 사 왔다고 한다.

둘째 부인이 낳은 세 번째 딸이자, 남자의 다섯 번째 아이 역시 딸이었다. 그리고 그는 두 해가 지나 실부인에게서 드디어 장손을 보게 됐다.

장손의 바로 윗 누나인 다섯째 딸에 의하면 아버지는 자식들 간 차별을 많이 다고 한다. 자신이 특히 자주 비교를 당했고, 동생보다 받아쓰기 높은 점수라도 맞아오면 아버지의 째 아내인 자신의 어머니가 시험지를 숨겼다고 했다. 친척 어른들이 오신 날엔 방에 들어가 숨죽여야 했고 모두 장손만 챙겼다고 했다.

첫째 부인의 큰은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기에 차별에 관조적이었고, 둘째 딸은 자가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자주 혼을 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우물대며 위축되어 갔다.


여자는 첫 번째 머니와 그녀의 자식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눈치를 보기도, 존경하도, 두려워하기도 했다. 결혼식 혼주석에 첫째 어머니를 앉힐 정도였다. 자신을 포함한 두 번째 어머니가 낳은 6명의 서자들은 무시하고 흉을 봤다.


그 남자가 노인이 되어 저물어갈 무렵이 되었다. 이제 60대가 된 여자는 병상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백골 같은 노인의 들리지 않는 웅얼거림에도 작은 반항은커녕 호랑이 선생님 앞에서 숙제를 두고 온 어린 소녀처럼 주눅 들어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녀는 누구보다 많이 울었다. 후련함이 아닌 죄송함과 후회였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도 아버지와 관련된 사물 하나를 떠올리는 것조차 진저리 나게 싫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아버지의 모난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이었다.


자신과 같기에 싫어한 걸까, 싫어해서 닮게 된 걸까.



그 여자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왔 때 아직 미혼이었다. 또래보다 많이 늦은 나이였다. 서울대를 나왔다는 남자와 을 봤고 서둘러 결혼날짜가 정해졌다. 결혼식 전날, 그 남자의 가족들이 방 안에서 조용히 쑥덕거리는 소리가 옆 방의 여자에게 들렸다.

"걔가 알아?"

"모르지. 모르게 해야지."

"너 대학 나왔다고 공갈다고 갈라서자 그러면 어떡해?"

"지는 첩년 인데 내가 꿇릴 게 뭐 있어."

여자는 망설였지만 파혼한다면 집안의 수치가 될 거라 생각했다. 결국 둘은 평생 함께할 것을 서로의 가족과 지인들 앞에서 맹세하 속에서 길을 떠났다. 그녀는 이제 두려움이 가득했던 집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기대 속에서 꾸리게 됐다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남편이 산골에서 일했기에 달에 한두 번 겨우 얼굴을 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으로 여자를 괴롭힌 만큼 건강하게 태어나 우렁차게 울어대는 아이를 품에 안게 됐다.

이번에도 그녀의 말이지만 결혼한 남자는 매우 폭력적이고, 냉정했다고 했다. 이 여자의 외도로 생긴 것이 아니냐 의심하면서 그는 더욱 난폭해졌다고 했다.

여자의 이혼이 용납되지 않던 90년대 초, 폭력에 견디지 못했던 여자는 추운 비닐하우스 집에서 린 딸을 끌어안고 서로만을 의지하며 살았다고 했다.


몇 년 후, 녀는 연하의 남자 만났다. 딸과 함께 살 집을 알아보다 부동산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자는 돈도 없고 키도 작았지만 유쾌함이 있었다. 여자의 친정은 넓은 대지에 일꾼도 여럿 두고 살던 양반가였고 남자는 혼외자에 대학도 안 나왔기에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는 여자의 딸을 친자식처럼 예뻐다. 그 점에 끌려 연애를 시작했고 곧 뱃속에 아이가 생게 됐다. 예상치 못한 아이였고 여자는 이미 38살이었다. 낙태가 불법이기에 결국 혼인신고만 하고 아이를 낳게 됐다. 큰 딸도 곧 초등학교에 입학해 아빠가 필요할 테니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극심한 성격차이로 둘은 자주 싸웠다. 남자는 매사 여자가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꼈다. 친자식을 낳자 큰딸을 전처럼 예뻐해주지 않았다는 여자의 불만도 있었다. 경찰도 여러 번 집에 찾아왔다. 느 날은 막내딸이 좋아하던 해바라기가 그려진 여자의 민소매 티가 찢겼다. 물건들이 자주 박살 났다. 그녀는 또다시 이혼을 겪은 후 술에 취해 두 딸을 껴안고 자주 울었다...


아! 머리가 띵했다.

그래, 나도 서자였구나.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도 생각 않고 구별 없이 날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맞았구나.


언니는 엄마가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첫 번째 부인의 자식들처럼 정식으로 결혼한 첫 번째 남편의 자식이다. 그들을 언니에게 투영한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자기 자신을 그토록 싫어한 엄마처럼, 서자였다. 혼외자와 서자가 낳은 천민이었다. 엄마는 우연히 태어나버린 어린 딸을 보며 자신을 느꼈을 것이다. 감히 언니보다 잘난 것이 보기 싫어 기를 죽여놨을 것이다. 내게 했던 말들은 자신을 향한 말들인 것이다.

언니 역시 특별한 존재이기에 나라는 서자를 가엾이 여길 필요도, 이해할 공도 들일 필요 없이 간편히 무시한 것이다.


노력하여 바꿀 수 없던 것이기에 오히려 후련했다. 무수한 노력으로도 결코 편안해질 수 없던 이유를 기어이 찾아내어 버렸다.


아직도 아버지가 떠오를 때마다 몸서리치게 싫어하지만 그를 가장 많이 닮은 여자,

그 여자가 자신을 투영한 나.

아버지가 달랐다면, 그녀가 사랑을 받아봤다면, 그녀가 만난 세 명의 남자들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누렸을 조금 다른 만약의 날들이 궁금하다. 그녀에게 붉음이 물든 기억이 없었겠지. 나의 삶도 달랐을 거야.

여자의 일생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는 만큼 찾아오는 죄책감이 아직 나를 더욱 옥죄고 힘들게 한다.

매일 나의 인생이 그 여자의 길을 따라갈까 너무도 두워하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내겐 희망이 있다.

엄마는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고 아픔을 방치해 두며 타인을 향한 원망과 자신을 향한 슬픔만 즐겼만, 나는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두고 도망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 나의 아픔, 그것들의 원인과 이유를 성찰하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다.

그렇게 어디서부터 굴러왔는지 모를 운명의 수레바퀴 멈추고 달아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증명해 내는 중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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