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몇 달에 한 번씩은 보고 있는 여고 친구들을 만났다. 한 명은 보건교사, 또 한 명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보건교사 친구는 내 대학 선배의 아내다. 사회복지학과 교수 친구는 아직 미혼 여성이다. 이 친구들 만날 때마다 내가 늘 꼴찌다. 일등은 늘 보건교사 친구다. 미모도 보건교사 친구가 일등이다. 방부제를 먹고사는 건지, 남편의 애정을 먹고사는 건지 그건 모르겠다.
남의 부부 사는 얘기도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다고 하나, 내가 십 년 넘게 동문회에서 겪어본 선배는 최고의 신랑감이다. 머리 좋지, 능력 있지, 인품 좋지, 게다가 아직도 펄펄 기운이 넘친다고 한다. 10점 만점에 평점 9점이다. 그만한 남자 만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을 친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친구의 평점이 9점만 못해서가 아니다. 일 저지르는 남편 때문에 속 썩고 살아본 여자 입장에서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선배한테 따로 뒷돈 받는 것도 아닌데, 나는 만날 때마다 그녀에게 그만한 남자 없다고 상기시킨다.
아직 미혼인 수정이는 <청춘 스케치>에 등장하는 그 수정이가 맞다. 다음 달이 지나면, 우리는 또 한 살을 먹고 세포도 더 늙었을 거다. 불현듯 불안해진 내가 수정이에게 물었다.
"너 생리하니?"
"응~"
"그럼 월요일에 당장 병원 가서 난자부터 얼려놓자~"
"사유리처럼 혼자 애 낳으라고?"
아, 내 설명이 미흡했음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내가 의도한 건, 더 이상 난자 생성이 되지 않기 전에 마지막 남은 난자라도 얼려놓고 보자는 말이었다. 정자야 얼마든지 정자은행에 가면 있다. 그리고 운명같은 남자가 언제 찾아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난자를 생성시킬 수 있는 시간에는 오히려 한계가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건교사 친구가 우리를 만류한다. 어떻게 생명을 잉태해서 아기를 낳았다한들, 그 아이가 스무 살이면 우리는 일흔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아기에게 못할 짓이라고 안된다고 우리를 설득한다. 수정이도 그건 못할 짓이라는 데 동감하는 표정이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같이 키우면 되지~ 국가도 있고."
내가 언제부터 공동체로 연대하는 걸 좋아하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지구별에는 거스를 수 없는 것들만 존재한다. 시간이 특히 그러하다.
"내가 지난번 브런치북에 썼잖니? '이번 생은 별로~'라고 말이야. 처음엔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썼다가, 별로라고 고친 거야. 난 다음 생을 노려 보려고.. 다음 생엔 마돈나처럼 살 거다."
내가 다음 생엔 마돈나처럼 살 거라는 말의 의미를, 집에 텔레비전도 없이 사는 수정이는 잘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지금 마돈나 36살 연하 남친이랑 연애중이래. 마돈나 언니, 나랑 띠동갑 58년생~ 와, 정말 존경스럽지 않니?"
나는 진심으로 마돈나를 존경한다. 2012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보고 나서부터 존경하기 시작했다. 한국 나이로 마돈나가 55세 때였다.
나는 기필코 마돈나처럼 건강하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 이혼할 때 위자료도 팍팍 주고, 내가 원하는 남자도 똬악 만나고, 애들도 쑥쑥 낳아서 잘 기르고 그렇게 살고 싶다. 인생 한번 뿐이라는데, 이왕이면 마돈나다.
마돈나는 전생에 무슨 일을 했길래, 이생에서 마돈나로 살까? 그것이 궁금해지는 십일월의 수요일 저녁이다.
수정이는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