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우연히 고개를 높이 들었다. 완충녹지지역을 차도와 분리하느라 경계를 세워놓은 높은 담벼락 위에서, 노란색 꽃 하나가 모가지를 내놓고 있었다. 모가지가 낭창낭창하다. 그래서 안전해 보였다.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을 거 같다.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 저 꽃은 운명을 맞이할 거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맞은편 도로가에 젊은 여자가 하얀색 강아지 한 마리를 목줄로 길게 잡은 손잡이를 들고 서 있었다. 이쪽에서 한 남자가 쌩 달리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그 강아지가 덩달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 강아지는 제가 그 남자만큼 빨리 달린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니면 본능적으로 달리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 여자였다. 뛰는 폼이 영 어설픈게 달리기를 못하는 몸치 같았다. 강아지는 여자의 손에서 줄이 늘어지는 길이만큼만 뛰다가 금세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개도 잘 달리는 건강한 주인을 만나야 살맛이 날 거 같았다. 개든 사람이든 인연 맺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저 개는 목줄에 묶여 있으니 마음껏 달리지를 못하는 건데, 목줄도 없는 나는 왜 마음껏 달리지 않고 사는 걸까 별 희한한 반성을 해본다. 백 미터도 못 가서 멈추었다. 목줄이 없어도 내가 달릴 수 있는 최대치는 백 미터인가 보다.
코로나 터지기도 몇 해전이니 벌써 오륙 년 전 일이다. 나라에서 무상으로 체력 측정을 해주는 게 있다. 국민체력 100이라고 치면 나온다. 예약해놓은 측정일이 되었다. 불면증으로 한창 잠을 못 잘 때였다. 전화를 걸어 다음으로 연기할 수 없느냐 물으니,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던 측정을 못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심하게 아픈 게 아니면 나오라고 한다.
동반 측정자인 남편은 십수 년째 체육관에 등록하고 운동을 했다. 그런데 몸무게부터 비만으로 나와서, 측정은 했어도 등급 매기기가 어렵다고 했다. 비실비실 들어갔던 나는 1등급 금메달을 땄다. 운동처방사가 아줌마는 이대로라면 전국대회 나가도 되겠다 한다. 다만 참가 연령대가 장년층, 중년층, 노년층 등으로 나뉘다 보니, 지금 나가면 30대 중반이랑 경쟁하니까 불리하단다. 몇 년 뒤 중년층 나이에 진입할 때 나가보라고 한다. 상금도 준다고 했다.
이제 내 나이가 국민체력 측정 기관에서 중년층으로 분류되는 시점에 비슷하게 이르렀다. 국민체력에 다시 신청 접수를 해야 하는데, 고작 달리기가 백 미터다. 큰일이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너무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 앉아있는 게 죽음을 부른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노란색, 붉은색 낙엽들이 뒹굴고, 다음 달이면 크리스마스다. 첫눈도 곧 내릴 거 같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해진 친구들은 공연히 정체 모를 위기감을 느끼는 듯하다. 전우 같은 남편이 버젓이 있고 부모가 부자면 더 좋을 것을 기대하는 자식들도 있는 나도 쓸쓸한데, 혼자인 친구들은 또 얼마나 쓸쓸할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도 없다.
오십 줄에 들어서 있는 내가, 산책 길 벼랑 위에 피어 있는 노란색 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