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연애세포

by 도라지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탔다. 아들이 전역하면 엄마 차는 아들 차가 되어버린다는 공식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들 녀석이 내 차를 타고 나가버리고, 나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코로나 이후로 이 친구들과 모임은 처음인 거 같다. 결혼 생활 2년 만에 이혼을 하고 이십 년째 솔로인 친구는 능력 있는 싱글녀이다. 우리는 가끔 그녀의 연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다. 몇 해전 영어공부를 하러 학원에 갔다가 알게 된 친구들이다. 여자 셋이 공교롭게도 나이도 같고 직선적인 성향도 비슷해서 친구가 되었다.

처음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보자는 취지로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모국어도 아닌 영어가 아줌마들의 수다를 담아내기엔, 극명한 한계와 모순이 존재하는 법이다.


돌싱인 그녀는 여전히 골드미스다운 매력을 뿜어내지만, 다른 두 명은 영락없는 아줌마 필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딱 봐도 아줌마라고 해서 연애세포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위험한 생각이다. 세포 또한 늙어갈 뿐이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더러 증명해 보이라고 하면 그건 좀 곤란할 듯하다. 51세 연애세포가 살아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돌싱 친구가 증명해 보이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대체로 만족해하는 편이다.


그녀가 요즘 두 살 연하의 미모의 남성과 연애 중이다. 우리는 그녀의 핸드폰을 보면서 그의 미모에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보냈다. 미모에선 그녀보다 그가 한 수 위인 건 분명했다. 그다음에 궁금한 것 역시 남자들이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철학을 공부했어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남녀관계에 관한 질문에선 예상 질문 번호까지 똑같다고 보면 된다. 1번 예쁘냐? 2번 잤냐? 아마도 이 질문은 순서까지 동일하게 전 세계적으로 공통일 거 같다.


같은 질문이지만, 이십 대에 우리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이 질문들과 오십일 세에 은근슬쩍 던지는 질문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질문이 같다고 해서, 그 뒤에 펼쳐질 대화의 수준과 깊이까지 동일할 수는 없기에 그러하다. 사실 우리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함께 정을 통해서 행복의 나라에 도달했는지 어떠했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이차적으로는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궁금한 것은 과연 아직도 우리가 그 아름다운 거사에 참여할 수 있는가의 여부 자체이다. 그 파티에 초대를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은 이제 갱년기에 접어든 우리들에겐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적어도 어젯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 속에서는 그랬다.


몸을 화두로 삼아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매우 미묘하며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생리적인 자극과 유희 정도의 수준에서 흐르게 된다면, 그날의 대화는 농도 짙은 연애 경험담으로 끝나버리게 된다. 하지만 51세 갱년기 여성의 연애세포의 이야기는 단순한 연애담이기보다는 노년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새로운 인생 이야기로 전개된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할 때 성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며, 그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서로에 대한 위장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회적 페르소나가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페르소나가 필요 없는 친구관계를 많이 형성하고 있을수록 그의 삶은 풍요롭다.


단순히 연애를 목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생명을 더욱 생명답게 하기 위해, 연애세포 몇 개 정도는 활성화시키는 게 옳지 않을까에 대한 논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큐피드의 화살도 연금술사의 사랑의 묘약도 아니다. 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믿음을 단지 연애세포 몇 개에서 찾아보고 싶은 것뿐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여성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이 내가 인간임을 잊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에서다.


나이가 들수록 세포를 활성화시키려면 노력이 더 필요한 것처럼,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연애세포 증식 영양제를 개발하면 사업이 될 수 있을까? 또 허무맹랑한 고민을 해 보는 밤이다. 내 속엔 연애세포가 아니라 장사꾼 세포가 증식되고 있나 보다.


(2020년 7월 22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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