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의 비뇨기과 의원보다 종합병원 수술실 업무가 빨리 끝나기 때문에, 조은진은 김현경과 민재 병원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스시를 좋아하는 조은진은 저녁 약속 장소를 민재의 병원 근처 스시집으로 정하고 민재를 그리로 초대했다. 은진과 현경이 있는 룸으로 민재가 들어서면서, 현경과 동시에 눈빛을 마주치고는 이내 은진에게 인사를 건넨다. 음식 먹는 걸 좋아하는 은진이 그래도 민재 앞이라고 젓가락질 속도를 늦추며 누나처럼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오원장님, 아버님 증세가 요즘 어떠세요? 많이 좋아지셨어야 우리 병원도 책임을 다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요."
민재 아버지 오상준은 신화병원 치매전문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치료 중이다. 은진은 이미 오상준의 담당의와 전화로 상준의 상태를 재차 확인하고 오는 길이었다.
"치매가 어디 좋아지는 병이어야 말이죠. 더 악화만 안돼도 좋을 텐데, 요즘 들어 부쩍 상태가 나빠지신 거 같아 걱정입니다."
"집안에 아버님 돌볼 가족분이 계신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간병인에게 의존할 수만도 없지 않겠어요? 차라리 전문 요양병원에서 커리큘럼대로 치료받으시고 다른 분들과 어울리며 지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오원장님이 제 동생 같아서 걱정돼서 드리는 말씀이니 다른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을 건네는 은진의 이야기에 민재는 동의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을 했다.
"저도 지금 알아보고 있기는 한데, 혹시 팀장님께서 추천하고 싶은 병원이 있을까요?"
민재의 긍정적인 반응에 은진과 현경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걱정했던 불안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원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퇴사한 정세현 전 팀장님께서 다음 주에 요양병원을 크게 개원하실 거라고 해요. 정세현 팀장님 오빠도 내과의원 그만 접으시고 거기로 합류하신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일반 환자들보다는 조금 퀄리티 있는 분들만 환자로 모시는 특급호텔로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수술실에 근무했던 정세현 팀장은 오드아이 닉네임을 창시한 오민재의 열혈팬 1호라고 보면 된다. 어찌나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지 민재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민재를 각별히 챙겼던 정세현이라면, 아무리 사업이라지만 민재 아버지를 특별히 보살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믿음이 가기도 한다.
식사를 마친 뒤 세 명이 함께 스크린 골프장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은진이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다. 휴대폰에서 보여주는 시간은 밤 열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현경과 민재는 같은 택시를 타고 두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로 향하면서 서로 말하지 않아도 공통된 고민을 하고 있다.
생각이 조금 더 복잡한 쪽은 현경이었다. 구태여 오늘 밤에 모텔로 들어가지 않아도 다음 주면 민재의 시간은 훨씬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민재 아버지를 돌보는 야간 간병인도 퇴근할 시간이라서, 오늘 밤 안으로 민재를 손에 넣으려는 계획은 무리일 수도 있다. 현경은 공연히 민재의 짧은 시간에 쫓겨가며 민재와의 첫날밤을 속도전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젯밤 이후로 민재는 현경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택시 뒷자리에 민재와 나란히 앉은 현경이 상황 정리를 대략 끝내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민재의 오른손이 살그머니 현경의 왼손등을 덮는다. 민재의 길쭉한 손가락들이 현경의 기다란 다섯 개의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파고 들어왔다.
아직 민재와 키스를 나눈 적도 없는데, 현경은 민재의 손길이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애무하는 것처럼 나른해지고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현경은 깊은 황홀경으로 아찔하게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스르르 눈이 감겨버렸다. 몸을 돌려 민재의 남성을 만지고 입안 가득 빨아먹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