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몇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준영이가 먼저 물었다.
"서은아, 너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 같으니?"
"응,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우리 집은 크게 부잣집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4남매의 대학 등록금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가톨릭 신앙생활을 매우 열성적으로 하실 수 있을 만큼,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여유롭게 지내셨다.
게다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너무 재밌는 친구들과 사건들의 연속이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문자 그대로 가장 빛나는 시절이 틀림없었다. 거기에 준영이까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라가 정치를 어떻게 하든, 여고생인 내겐 특별히 나쁠 것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민주주의 정치라는 것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럼 넌, 우리나라가 나쁘다고 생각해? 정치쪽, 아니면 교육쪽에서?"
"음, 나는 우리나라 정치도 교육도 다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내가 작년에 학교를 자퇴한 것도 학교 교육이 싫어서 그랬어. 물론 몸도 안 좋기도 했지만."
아, 그래서 그리스 조각상 같은 준영이가 자퇴를 했던 거구나~
"너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뭐라고 그러시던?"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셔. 처음엔 펄쩍 뛰셨다가, 내 얘기를 들으시고 며칠 후에 허락하셨어."
낮에 잠시 봤던 준영이 아버지의 근엄하고 기백 있어 보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정하고 수더분한 인상의 어머니가, 다소 근엄해 보이는 아버지와 조화를 이루고 사시는 모습이 한눈에 그려졌다.
골목길의 모퉁이 하나를 돌 때쯤, 준영이가 다시 킁킁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준영이는 한 번도 킁킁거리지 않았다. 나는 생리현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무심하게 물었다.
"너 비염인 거지?"
"응. 알레르기 비염이래."
"다른 데 아픈 데는 없는 거지?"
"없어~ 작년에 학교가 싫을 때는 이상하게 몸이 아팠는데, 학교 그만두고 나서 아픈 게 없어졌어."
학교 얘기가 나오자, 준영이는 마치 떠올리기 싫은 기억에 다가서기라도 한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우리나라 정치가 잘못돼서 교육 현장까지 폭력적인 거라고 말하는 준영이의 표정이 날카로웠다.
내가 다니는 여학교와 남자 고등학교는 사뭇 다른가 보았다. 이유도 없이 교사의 기분에 따라, 억울한 학급 친구가 매질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준영이는 어떤 식으로든 발생하는 폭력이 끔찍하게 싫다고 덧붙였다.
나는 준영이에게 너도 억울한 일을 당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준영이와 관련해선 그 어떤 나쁜 상황도 상상하기가 싫었다. 준영이가 또 이상한 말을 했다.
"서은아, 혹시 서울대 다니던 형이 고문당하다가 죽었다는 뉴스 들어봤니?"
"아니, 야자 때문에 텔레비전 볼 시간도 없는 걸~"
비슷한 얘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쇼크로 처리된 사고사냐 폭력에 의한 사망이냐를 따지느라, 세상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1987년이었다. 준영이가 더 이상 서울대 오빠 얘기는 하지 않았다.
내가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어두운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삶에 대한 고민 같은 걸 전혀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니었다. 삶과 죽음, 죄와 벌, 영혼과 구원 등 주로 문학적 상상과 기독교적 교리가 버무려진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수정이와 나누는 비밀 일기장에 적곤 했다.
"준규 오빠는 미술과 학생인가 봐~"
"응, 꽤 실력이 좋은가 봐. 입시생들 가르치는 알바도 해, 수입도 꽤 되는 거 같던데~"
준영이가 다른 집 형 얘기하듯이, 또 특유의 시큰둥한 태도로 대답을 했다.
"준삼이는 너무 귀엽더라~ 나도 그런 남동생 있으면 재밌을 거 같아."
"귀엽다고? 글쎄, 절대 그렇지 않을 걸~ 그 녀석이 얼마나 응큼한데.. 우리 셋 중에 제일 성장 속도도 빠를 거야."
성장 속도? 키는 준규 오빠가 제일 커 보였다. 준규 오빠는 180이 넘을 거 같았다. 준삼이는 준영이보다 키가 더 큰 것도 아니었다. 대신 준삼이가 준영이보다 체격은 조금 더 있는 편이었다. 준영이가 무언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를 눈치채고 친절하게 설명을 한다.
"남자애들은 야한 영화 같은 걸 특히 좋아하지~ 그런 쪽에서 준삼이가 우리 셋 중에 일등이란 뜻이야."
나는 속으로 '너도 그러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내뱉지 않았다. 어느새 우리 집 대문이 보였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바래다줘서 고마워~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보자, 잘 가~"
준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저쪽으로 걸어갔다. 우리 집 대문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서, 킁킁거리는 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2021년 10월 14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