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11
“밥해먹고 빨래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럼 집에서 밥도 해 먹으면 안 되고, 빨래도 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층간소음으로부터 도망쳐 온 두 번째 집에서 ‘결로’를 발견하였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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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집으로 이사온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영하 1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진 추운 겨울이었지만, 오랜만에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오니 확실히 기분전환이 되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여행 전에는 없었던 물자국을 발견했다. 옷장 옆 벽면에 있는 벽지가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옷장을 옮기기 전에 이 물자국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좁고 어두운 틈에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세상에… 이게 뭐야?”
검고 푸른 점들이 보였다.
장을 옮겨서 보니 상태가 더 처참하였다. (사진은 있으나 차마 올릴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곰팡이가 허리 높이까지 벽을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위층(주인집)에서 누수가 있어서 벽이 저렇게 젖어버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천장이나 벽 윗부분은 깨끗하다.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이 가장 심각한 것을 보니 거기서 시작된 모양이었다.
건물 외벽이 있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건물 내부 계단이 있는 부분이었다. 다른 세대와 맞닿아 있는 벽면들과 달리, 벽을 기준으로 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결로이다!
이 집을 지어서 아래층 세대들은 세를 주고 가장 꼭대기층에 살고 있던 집주인을 불렀다. 이 끔찍한 사태를 보여주니 집주인이 한 첫마디가 바로 저것이었다. 우리가 밥을 하고 빨래를 해서 그렇단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찾아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다른 세대에서 빨래를 방안에 넣어놓은 것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집도 빨래를 널어놔서 벽에 습기가 찬 거라며.
목소리가 큰 집주인은 우리말은 전혀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이 집은 아무런 결함이나 하자 없이 잘 지어진 집이고, 결로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우리 언성도 점점 높아졌다. 밥을 하면서, 빨래를 하면서 내부에 습기가 찼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다른 벽이 아닌 꼭 저 벽 모서리에만 습기가 모였겠냐고 물어도 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집주인은 계속 집은 문제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근처에 사는 시아버님이 오셔서 벽지를 뜯어서 상태를 보자고 해도 나중에 원상복구 해놓을 것이냐며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생활을 해야 하니 곰팡이로 물든 벽부터 해결을 해야 했다. 결국 우리가 해결하겠다고 말하고 집주인을 돌려보냈다. 아마도 다른 집 사진도 보여주고 큰소리 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겠지(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 사실 리모델링 글을 쓰기 전에 결로에 관한 글부터 쓰고 싶었지만 생각도 하기 싫어서 쓰지 못했다…).
처음 집을 지을 때부터 단열 공사를 잘했다면 결로를 방지할 수 있으나, 이미 다 지어진 집에서 결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로를 전문적으로 해결해주는 업체들도 있었으나 우리는 (특히 우리 아버님과 남편이) 셀프로 해결했다.
1. 결로로 벽지 등에 곰팡이가 생겼다면 벽지를 모두 뜯어내고 벽에 있는 곰팡이를 깨끗하게 닦아내야 한다.
벽지를 뜯어내면서 집주인이 이미 결로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 문제의 벽만 벽지 안에 단열벽지가 한 겹 더 겹쳐져 있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도배를 새로 했다던데, 집주인도 모르게 단열벽지를 시공했을까?
곰팡이는 호흡기 질환이나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고, 아토피가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피부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곰팡이를 제거하지 않은 채 그 위에 새로운 벽지를 덮어버리면 절대로 안 된다.
시중에 곰팡이 제거제가 많이 있으니 벽에 뿌려두고 솔이나 수세미, 헝겊 등으로 박박 문질러서 지워야 한다.
2. 다시 벽에 습기가 차면 안 되므로 벽을 건조하게 말려준다. 우리는 제습기와 열풍기를 가동하고 창문도 하루 종일 열어두었다.
3. 단열재를 보강한다. 스티로폼 단열재를 벽에 부착한 후에 그 위에 도배를 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단열벽지가 따로 있어서 별도의 단열재 시공 없이 단열벽지로 바로 도배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소핑크보다 저렴한 스티로폼을 썼다(사실 그 마저도 아까웠다.).
4. 최대한 습기가 들어갈만한 틈을 없애고 밀착해서 벽지를 도배한다. 때마침 집주인이 갑자기 집에 있다며 단열벽지를 들고 왔다. 왜 단열벽지가 집에 있었을까?
전문가가 아니라서 벽에 꼭 맞게 재단을 하거나 완벽하게 밀착하기는 어려웠지만, 눈에 보이는 틈은 일단 실리콘과 테이프를 이용해서 막아주었다.
벽지가 조각조각 지저분하게 뜯겨서 벽지를 뜯어내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렸고, 곰팡이를 제거하고 벽을 건조하는 데에 이틀이 걸렸다. 단열재를 붙이고 도배를 하는 것도 하루가 걸렸다.
하필 결로가 생긴 곳이 바로 침대가 있는 안방이었다. 벽을 건조하고 곰팡이 제거제나 접착제 등의 냄새를 빼려면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놓아야 했으므로, 비좁은 다른 방에서 3일 동안 쪽잠을 잤다.
그 3일 중에는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해가 떠 있을 때 시아버님과 남편이 작업을 하면, 나는 옆에서 칼이나 물티슈 등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드리고 주변을 정리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눈물 젖은(?) 피자를 먹고, 밤늦게 크리스마스 기분을 낸다고 오르골을 조립했다.
그 집에서 다시 들고나갈 수 없는 벽지 등에 돈을 쓰는 게 너무 아까워서(특히 이곳이 집주인의 집이라서) 우리가 직접 했지만, 찬 바람을 맞으며 며칠을 고생할 줄 알았다면 업체를 불렀을 것이다.
그 집에 사는 동안 기침과 아토피가 몹시 심해졌고,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건물 바로 옆에 높은 축대가 있어 한쪽면이 막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집이었다.
2년의 계약기간을 채워 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계약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월세를 계속 부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집에서 나오기로 하였다. 결국 그 집에서 6개월 정도만 살다가 이 집으로 이사 왔다.
그 집에 살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집 위치가 좋고 겉보기에 깔끔해 보여도, 환기가 잘 되는지를 꼭 확인할 것.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근처에 마트가 있었으며, 대로변에서 골목길 하나를 더 들어가야 집이 있어서 조용했다. 도배도 새로 했고, 화장실도 타일과 도기를 모두 교체해서 새집 같았다.
하지만 해가 잘 들기는 했으나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집이었다. 만약 벽지 상태를 잘 보았다면 어땠을까? 단열벽지가 시공되어 있다던지, 벽지가 여러 번 덧 대어 도배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면 결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았을 것이다.
둘째,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가 꽤 중요하다.
첫 신혼집은 40대 부부가 집주인이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계셨지만, 우리가 그 집에서 살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을 해주었다.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고 말하면 업자를 알아봐 주었다. 우리가 비용을 지불하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칼같이 영수증 금액 그대로 입금을 해주었다.
두 번째 집은 집주인이 바로 윗집에 살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더 잘 신경 써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계약서를 쓰는 날에 계약기간을 두고 언성을 높였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6개월 동안 지내면서 다른 세입자와 언성을 높이는 것을 수차례 들었고, 우리가 나간 후에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과도 부동산에서 한바탕 실랑이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단열에 신경 쓰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단열재가 들어가는 목공 단계에서 직접 현장에 가보지 못하였으나, 살고 있는 집에서 결로로 고생을 했다는 말씀을 드리니 업체에서 우리가 걱정하지 않도록 실시간 사진을 보내주셨다.
특히 거실 발코니를 확장하면 단열에 문제가 있다는 후기를 많아봐서 마지막까지 확장 여부를 고민했으나, 업체에서는 단열재를 시공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 거실을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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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댁을 가는 길에 그 집을 지나친다.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