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

아버지와 구급차를 타고 하염없이

by 웃자

월요일 새벽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때도 믿기지 않았고 지금도 실감나지 않는다. 새벽 3시에 어머니가 전화해서 다급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새벽 5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천천히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 아침에 부산의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기려고 의사를 만나서 예약을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나실지 예상하지 못했다. 유언대로 항암치료를 받으셨던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려고 영안실에서 아버지를 뵈었다. 어머니가 오열했다. 어머니를 달래고 눈물을 닦으면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모습으로 누워서 아무런 말씀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셨는데 어제도 집으로 가자고 하셨는데 더이상 아버지를 볼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믿을 수 없었다.

고모가 부산에서 장례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평소에 아버지는 아산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해서 집근처 산에 뿌려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임종 전에 고모에게 기독교 장례식을 부탁했고 형제분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려면 부산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죽은 후에 소원대로 병원을 떠났다. 영정사진이 없었다. 아버지는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프시기 전에 전시회에서 찍었던 사진을 찾았다.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서 웃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미남이었다고 말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집에 오지 않았고 가끔씩 집에 오면 어머니와 다투고 집을 나갔다. 나중에 아버지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간병인을 견디지 못했고 아들이 교대로 병수발을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고통스러워 하셨던 모습만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동생과 둘이서 밤을 샜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장례식장 지하에서 입관을 했다.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가웠다. 지금도 냉기가 느껴진다. 언젠가 나도 차갑게 식을 것이다. 빠르면 이십년 늦으면 삼십년 정도 아이들을 키우고 나서 죽으면 좋겠다. 그때 아버지와 만나서 꼭 껴안고 수고했다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발인 예배를 드린 후에 화장터로 향했다. 아버지는 두 시간에 걸쳐서 연기가 되어 하늘로 가셨다. 유골함을 들고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데 눈이 아프고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눈물과 눈꼽이 범벅이 되었다. 실눈을 뜨고 비틀비틀 걸었다. 근처 묘원에서 수목장을 했다. 나무 앞에 흙을 파고 유골함을 넣은 후 흙을 뿌렸다. 수목장은 테레비에서 봤던 것과 달랐다. 테레비에서는 커다란 나무들이 넓은 곳에 듬성듬성 있었는데 묘원에는 작은 나무들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었다. 아버지가 답답해 하실 것 같았다.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었다. 언젠가 시골에 땅을 장만하면 옮겨 모시고 싶다. 하루라도 젊을 때 미리 자연 속에 내 손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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