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응급실

아버지와 구급차를 타고 하염없이

by 웃자

퇴원 후에 아버지는 집에서 식사도 잘 드셨고 재활도 열심히 하셨다. 끼니때마다 한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재활치료사와 꾸준하게 재활운동을 했다. 병원에서 아들의 도움이 없으면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는데 이제는 혼자서 앉을 수 있었고 의자를 잡고 일어나서 천천히 걸을 수 있었다. 의식을 잃은채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들어갔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맸는데 기적이었다. 아버지는 몸상태가 조금씩 좋아지자 하루빨리 방사선 치료를 받고 싶었다. 의사는 지금 체력으로 견딜 수 없으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말했다. 퇴원하고 열흘 정도 지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계속 심하게 사레가 들려서 빨대로 물을 마시는 것조차 힘들었고 급속히 쇠약해졌다. 아버지는 동네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겠다고 말씀하셨다. 저번에 영양제와 해열제를 맞다가 의식을 잃은채 구급차를 타고 서울에 갔는데 그냥 바로 서울에 가자고 아들이 대답했다. 아버지는 그때와 상태가 다르고 종양내과 진료를 예약했으니 지인이 소개해준 요양병원에서 며칠만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아버지는 요양병원을 거부했다. 멀쩡한 사람도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두 발로 걸어서 나오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들도 요양병원이 싫었지만 요양병원에 가겠다는 아버지의 결정을 반대할 수 없었다. 막상 가보니 시설도 깔끔하고 의사도 친절해서 마음이 놓였다. 의사는 면담을 하면서 호스피스를 언급했다. 아버지는 일단 서울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나중에 고려하겠다고 대답했다. 병동에는 웰다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병실이 깨끗하고 시설이 편리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들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언제든지 퇴원해서 집에 가자고 말했다. 다음날 면회를 갔는데 간병인은 세면대에 있는 칫솔을 찾지 못할 정도로 경솔하고 간호사는 몇 번 호출했더니 불친절하다고 불평하셨다. 바로 집에 가자고 말했지만 집에서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고 요양병원에서 영양제를 맞다가 진료를 예약한 날에 바로 서울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원무과에서 면회시간이 끝났다고 통보했다. 병실을 나서는데 아버지 뒷모습이 계속 눈에 들어와서 아버지를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몸상태가 많이 악화되었다. 예약한 날짜보다 빨리 주치의를 만나고 싶어하셨다. 다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 이번에는 의식이 또렷해서 검사가 끝나면 금방 퇴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다고 또다시 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을 해야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아버지는 기도삽관을 거부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결정을 따랐다. 중환자실 트라우마와 섬망 때문에 두 번 다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중환자실에 가더라도 기도삽관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스스로 수액을 뽑았고 피가 흘렀다. 죽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입원실이 없어서 2차병원으로 옮겼다. 아버지는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의사는 집에 갈 수 있지만 구급차로 이동하는 도중에 사망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입원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어머니가 보호자로 교대했고 아들은 부산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상담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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