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치른 후에 영정사진을 들고 집으로 갔다. 병원에서 아버지는 집에 가고 싶어하셨다. 며칠후 영정사진을 조수석에 모시고 바닷가를 돌아다녔다. 어릴 때 아버지와 같이 봤던 풍경들이 남아있었다. 아버지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아버지 사진 앞에 커피를 두었다. 따뜻한 커피의 온기를 느끼며 마지막으로 쓰다듬었던 아버지의 냉기를 떠올렸다. 혼잣말을 하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병수발을 들면서 아버지와 화해했다. 이제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수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겠지만 아버지가 용기를 주실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죽을 때 마음 속에서 아버지가 손을 잡아 주실 것 같다. 저세상이 있다면 다시 한번 아버지와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이삼십년 정도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나서 나의 죽음을 맞으면 좋겠다.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좋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가끔씩 손수 고기를 다지고 채소를 넣어서 함박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신기했고 적어도 그때는 행복한 가족의 분위기가 풍겨서 좋았다. 서너번 만들어 주셨는데 맛있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여행을 다녔다. 부모님이 차에서 다투실 때가 많았지만 여행은 언제나 행복했다. 한여름 계곡에서 수영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혼자서 신나게 맨발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햇빛에 달구어진 바위 위에서 발바닥이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고 울었다. 어디선가 아버지가 나타나서 나를 품에 안고 그늘로 데리고 갔다. 그 순간 아버지는 나를 평생 구원해 주셨다. 수능시험 일주일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시험을 포기할까 고민했다. 아버지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말씀하셨다. 둘이서 렌트카로 드라이브를 하고 회를 먹었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마음 속에서 아버지가 나를 품에 안고 용기를 주실 것 같다. 나 역시 아이들이 아빠를 기억하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을 남겨주고 싶다.
아버지는 일본을 좋아했다. 젊은 시절 동경에 출장가서 먹었던 도시락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몇번이나 말씀하셨다. 오년 전에 큐슈에서 비싼 패키지 여행을 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항암 치료를 하셨을 때 좋은 기운을 드리고 싶어서 적금을 해지했다. 가이드를 따라서 관광지를 구경했고 특급 호텔에서 숙식했다.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대마도에서 렌트카로 자유롭게 다녔던 여행이 더 좋았다. 삼사년 전에 아버지와 동생과 셋이서 대마도로 여행을 떠났다. 대마도는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바다도 산도 조용하고 운치가 있었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우동을 먹었다. 작은 온천에서 목욕하고 덮밥을 먹었다. 한적한 풍경을 보면서 천천히 드라이브를 했고 소바를 먹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멀미를 심하게 하셔서 다시는 대마도에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후에 아버지는 혼자서 대마도에 가서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녔다. 코로나가 끝나면 그곳에서 아버지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언젠가 대마도에 가면 조용한 해변에서 맥주 한캔 마시며 아버지와 보냈던 추억을 회상하고 싶다.